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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낙안읍성 민속마을. 시간은 조선시대로 맞춰져 있지만 그 시간은 낙안군을 향하고 있다. 없던 것이 새롭게 생긴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고 그 시대에 멈춰졌기에 낙안읍성은 낙안군의 그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보면서 이제는 낙안읍성이 옛 낙안군의 치소(治所: 행정기관)로서의 낙안읍성으로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리적으로는 담장내의 낙안읍성이지만 개념적으로는 옛 낙안군 지역 모든 사람들의 낙안읍성으로 변화시키고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낙안읍성

 

낙안읍성은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문화재 보호법에 따라 관리하는 가옥이 모두 120여 채가 된다. 이는 성안에 있는 관아와 초가집은 물론 성 밖 주변에 있는 초가집까지 포함한 숫자다. 그런데 좀 의아한 것은 관리하는 가옥들 중 국가소유가 있는 반면 개인소유도 상당수가 된다는 점이다.

 

즉, 120여 채의 가옥 중에서 대략 55%는 국가소유이고 45%는 개인소유인데 국가가 소유하는 집들은 시에서 관리·운영하면서 전시가옥이라는 이름으로 외부의 기능인들을 수용하는 형태로 관람객들에게 전통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개인소유의 집들은 직접 주민이 살도록 하고 보조금만을 지급해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가옥의 소유주와 생활하는 사람이 각기 다르고 관리·운영 방법이 다른 이런 운영방식은 지난 25년 동안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양산했다. 특히, 주민과 기능인의 마찰, 주민과 관람객의 마찰, 주민과 국가(관리소)와의 마찰, 읍성내 주민과 읍성밖 주민과의 마찰 등이 계속된 것은 낙안읍성의 구조적 모순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이 모든 문제에는 공통으로 읍성내 주민이 끼어있다. 불협화음의 중심에 읍성내 주민이 항상 있다는 말이다. 읍성내 주민들이 기능인과도, 관람객과도, 관리소(국가)와도, 성 밖의 주민들과도 대립하는 양상.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읍성내 주민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그 속엔 불합리한 정책들이 숨어있고 근본 원인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낙안읍성 국민 세금으로 만들고 또 국민에게 관람료 받아

 

낙안읍성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종종 '돈 내고 들어와서 출입금지라니' 하는 관광객들의 불만의 문구가 뜬다. 그것은 입장료를 내고 성내에 들어와 구경하려는데 상당수의 집들이 어김없이 대문엔 '개인사유다. 주인의 허락 없이는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문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뭔가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낙안읍성을 따져보면 낙안읍성은 예전 우리가 흔히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낙안읍성이 한 고을의 치소였으며 성곽으로 둘러싸여있다는 것뿐이다. 치소란 행정의 중심지로서 관할 고을민들이 거의 매일 드나들다시피 한 곳으로 교류와 소통이 이뤄지던 곳이다.

 

그런데 어느 날 성곽 문을 닫고 고을주민들과 국민에게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통행세를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내부시설을 새로 꾸몄다는 것이지만 새로 꾸민 낙안읍성도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란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는 지역민들 모두가 자유롭게 드나들며 서로 소통이 되어야 할 공간을 주민들의 돈으로 폐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동네로 생각하면 동네 주민들에게 돈을 걷어 자신의 집을 멋지게 꾸며놓고 철문을 달고 자신은 옆에 지켜 서서 주민들이 들어올 때 돈을 내도록 하게하고 들어온 주민들에게 자신의 가족들이 팔고 있는 음식을 사먹고 기념품이나 과자 등을 사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적어도 국민의 세금으로 마을을 꾸몄으면 그것은 국민의 것이며 국민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즐기고 관람할 수 있어야 원칙이다. 더구나 이곳은 한 고을의 치소로 수백 년 동안 고을민들의 교류와 소통의 공간이었기에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광장을 지역민들이 잃어버린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이 지역이 좁아지고 분열되고 발전하지 못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지역민 모두의 낙안읍성, 더 나아가 국민 모두의 낙안읍성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을 걸어 잠가놓아 분열시킨 채 그 안에서 국가와 특정 개인들이 절반씩 소유하고 혜택을 나눠 갖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다.

 

낙안읍성에 대한 국가정책 바뀌어야 지역이 산다

 

그럼 현재 낙안읍성 안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의 불만부터 살펴보자. 그들은 "내 맘대로 뭘 못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집안인데도 성곽보다 낮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여 관람객들에게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되기 때문에 여름이면 방문을 못 열어놓는다거나 함부로 옷도 못 입고 심지어 빨랫줄에 속옷 널기도 민망하다는 것이다.

 

겨울철에는 방풍창이나 유리문 등을 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초가지붕 위로 비닐 등을 덮어 보온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것도 할 수 없고 더구나 보일러 등 온방 기구 등을 사용하면서 외부로 노출되면 현대적 모습이라면서 그것도 지적사항이 된다는 것이다. 집 마당으로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와도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이런 실정이기에 집을 뜯어 고친다거나 마당을 변경한다거나 축사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가 동물원의 원숭이냐"는 말이 주민들에게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을 보면 그들이 읍성내 생활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25년 전인 1983년경 사적지로 복원을 시작할 때 국가는 향후 읍성내에서 거주하게 될 주민들의 불편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거나 등한시 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더구나 낙안읍성이라는 공간은 한 고을의 치소로서 오랜 세월 인근 지역 주민들이 내 집처럼 왕래하면서 소통과 교류의 광장이었는데 이를 무시하거나 감안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정책 실패로 밖에 볼 수 없다.

 

이주시키고 개방했다면 이 지역의 미래는 어떻게 변했을까?

 

만약 1983년 당시, 국가가 주민들과 협의하고 타협해 토지와 가옥을 수용하고 민속마을 형태로 개발을 시작했다면 그리고 읍성 내부에 국가 지정 식당, 기념품, 가게 등을 세워 직영하고 낙안읍성의 성문은 개방했다면 낙안읍성의 본래의 의미도 찾으면서 동시에 그 혜택이 지역 전체로 확산됐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옛 낙안군 주민들은 조상들이 해 오던 모습과 습속대로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모두 함께 공동체의 삶이 이어졌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각종 문화, 예술 단체나 상권도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해서 방사형으로 뻗어 나갔을 것이다. 보이는 외형적인 모습만 복원한 것이 아닌 조상들의 생활 형태와 동선, 습속까지도 그대로 복원하게 되고 지역의 분열과 단절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눈감고 5분만 상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올 그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예로 들어 역사적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인 마을 공회당을 사적지적 가치 있는 장소로 꾸민다고 가정할 경우, 현재 살고 있는 주민은 이주시키고 동네에서 그 안에 식당과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문을 상시 개방해 놓고 운영하는 경우와 현재의 낙안읍성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 특정 주민이 식당이나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게 한다면 어느 것이 동네에 바람직한 것인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수백 년 동안 계속된 일상적인 일이었을 공회당에서의 소통과 교류가 사라져 마을 주민들의 동선과 습속이 달라지고 잃어버린 공회당은 사적지가 돼 외부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여 그 안에 있는 주민만 잘 먹고 잘 살면서 동네는 주차된 차와 쓰레기로 몸살을 앓게 된다면 결국 그 동네 자체가 몰락할 수밖에 없다.

 

미래의 낙안읍성과 이 지역의 미래

 

결론은 '낙안읍성의 성곽을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허물자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허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관람료를 받고 있는 것 또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래야 본래의 낙안읍성의 의미도 되살아나고 지역 전체로 그 혜택이 뻗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의견 차이는 있지만 그동안 불편만 겪고 있다는 성내 주민들은 지금이라도 보상과 이주로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 현재, 성내 식당과 기념품점, 가게 등은 국가(시)에서 직영해야 하며 그 수익금(정부 보조금 포함)으로 낙안읍성을 유지하고 보수해야 한다. 낙안읍성은 관람료 없이 마을 드나들듯이 누구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성문을 개방해야 한다.

 

만일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 순천시나 문화재청으로부터 낙안읍성내에 있는 주민들의 개인 가옥을 매입할 의사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이미 성내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지쳐있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지도 모른다.

 

낙안군 이야기책을 펴내면서 첫머리에 낙안읍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현재 낙안읍성의 시간은 낙안군에 맞춰놓고도 역사적, 문화적으로 옛 낙안군을 수용하는 것이 아닌 반쪽짜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낙안군의 치소였으면 옛 낙안군 지역 주민들 모두가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소통과 교류가 이뤄져야 하는데 문을 걸어 잠그고 불신과 불만, 분열과 축소를 잉태하며 지역민들의 공동의 광장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옛 낙안군의 치소였던 낙안읍성에 대한 개념을 바로 잡는 것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역적으로, 미래를 여는데 가장 기본적이며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될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끊어진 지역민들간의 소통과 교류의 다리를 연결해 가치를 확장시키고자 하는 의미가 있기에 책자 첫머리에 싣게 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낙안군, #남도TV, #낙안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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