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제주 들녘과 우도
▲ 말미오름 정상에서 본 풍경 제주 들녘과 우도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낯선 동행 15km 길을 열며

가을이 익어가는 9월, 제주도 동쪽 시흥리 마을은 한적했다. 시흥초등학교 남쪽 길모퉁이에는 10여 명의 올레꾼들이 모여 있었다. 제주올레 1코스를 출발하려는 사람들이다. 나는 인터넷에서 만난 낯선 동무와 제주올레 1코스 길을 걷을 작정이었다. 길을 떠난다는 이유만으로 코드가 맞았던 우리는 제주올레 안내소에 들러 동정을 살폈다. 시흥리 새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안내소에는 나그네들을 위해 김밥과 초콜릿, 생수, 음료수들이 진열 돼 있었다.

출발지점을 알리는 표지판
▲ 올레 1코스 출발 출발지점을 알리는 표지판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아침 9시 40분, 제주올레 1코스는 우리에게 15km 길을 열어주었다. 출발 지점을 알리는 안내표지판 옆에 곱게 핀 칸나가 가을을 알렸다. 돌담을 끼고 이어지는 올레는 폭이 3m 정도쯤 될까. 시골길 치고 꽤나 넓은 길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제주 돌담길은 꼭 우리들의 인생길 같았다. 구부러져서 더욱 정겨운, 구부러져서 모나지 않은 길이 바로 제주만의 돌담길인 것 같다. 돌담너머에는 감자 이파리가 햇빛에 얼굴을 태운다. 당근 밭에서 김을 매는 농부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능선
▲ 말미오름 올레 능선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말미오름, '낭떠러지' 암반 퇴적층이 주는 남성미

15분쯤 걸었을까. 말미오름 허리가 눈에 들어왔다. 말미오름 화산체의 낭떠러지 같은 암반이 금방이라도 우르르 떨어질 것만 같았다. 태고의 퇴적작용에서 생긴 기생화산. 말미오름은 바다속에서 화산분출활동에 의해 응회환의 퇴적층이 형성된 후에 퇴적층 성장과 함께 융기활동에 의해 기생화산체로, 수중에서 육상으로 변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다. 남성미가 느껴지는 수중화산쇄설성퇴적층이 아닌가 싶었다.

휴일이라서 그런지 삼삼오오 길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만만하다. 낯선 동행자의 바람막이 웃옷(핑크빛)이 가을과 참 잘 어울렸다.

정상에서 본 풍경
▲ 일출봉 정상에서 본 풍경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말미오름 올레
▲ 말미오름 올레 말미오름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조각보' 올레, 신기루의 길 이어져

돌담 길 끝에서 말미오름 등반로가 이어졌다. 비스듬히 이어진 말미오름 등반로는 형형색색 가을 야생화가 지천을 이뤘다. 풀썩 주저앉으면 꽃방석이 될 것 같았다. 보랏빛 엉겅퀴와 양지꽃, 맥문동 등. 제주오름 속에 살아가는 생태계는 늘 경이로움 그 자체다.

출발 지점에서 30분 정도 걸었을까. 말미오름 능선을 오를수 있었다. 그야말로 가슴을 콩당 꽁당 뛰게 만드는 능선 올레길이었다. 처음 비행기를 탄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제주의 동쪽 풍경이 신기루처럼 펼쳐졌다. 오름, 바다, 섬, 그리고 검은 흙으로 범벅이 된 제주의 들녘. 이런 풍경을 두고 어떤이는 '색색의 천을 곱게 기워 붙인 한 장의 조각보'라 표현했다. 바다가 열리고 섬이 열리고 그리고 올레꾼들의 이야기가 열리는 시점이 바로 말미오름 정상인 것 같았다.

두 팔을 벌려 가을하늘을 보니 동요가 생각났다. 신화처럼 떠 있는 일출봉과 비스듬히 누워있는 우도(쇠머리오름)는 말미오름과 함께 수중화산체 삼박자 그 자체다.

정상 능선
▲ 정상 능선 정상 능선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분화구 화전밭
▲ 분화구 화전밭 분화구 화전밭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분화구에 화전밭과 방목 풍경, 제주만의 운치

내리막 길로 이어지는 길을 걷자니, 능선 위를 걷는 올레꾼들의 모습이 하늘 위를 나는 것 같았다. 원형화구를 가진 말미오름은 방목을 하기도 하고 묘지가 들어서기도 했다. 더욱이 화전 밭을 일구는 모습 또한 특별했다. 분화구 안에서 겨울 채소 씨를 뿌리는 농부들의 모습이 정겹다.

"고생햄수다! 무신 농작물을 심었수꽈?"

유창하진 못하지만 제주사투리로 인사를 건넸다.

" (무우) 심엄수다 게!"

올레꾼들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화답을 하는 농부는 검은 밭고랑 두둑에 빠른 손놀림으로 무 모종을 심었다.

알오름 중턱에 말들이 무리를 지어다닌다
▲ 알오름 말 알오름 중턱에 말들이 무리를 지어다닌다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야생화 지천에 핀 오솔길 올레
▲ 오솔길 올레 야생화 지천에 핀 오솔길 올레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좁은 오솔길 올레 알오름, 아! 가을

말미오름에서 알오름으로 이어지는 올레는 억새길이다. 오름 중턱에 자리잡은 묘지 그리고 산담은 제주만의 장묘문화다. 억새 길을 빠져 나오면 띠 숲이 이어지고 잔디와 흙이 알맞게 버무려진 올레길을 걸으니 울랄라-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지막한 동산 알오름은 노오란 야생화 천국이었다. 어느 백만장자의 정원이 이랬을까? 노오란 가을 야생화가 길을 여는 사잇길은 겨우 한사람 정도 올라 갈 오솔길 올레. 너무 좁아 아름다운 길이 바로 알오름 올레가 아닌가 싶었다.

알오름 중턱에 우두커니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는 알오름의 포인트다. 여백의 포인트가 주는 아름다움, 알오름 등성이는 밋밋하지만 많은 스토리가 숨어 있을 법한 무대 같았다. 소나무 아래애서 뒤돌아 보니 중년의 남자 한분이 올레길을 걷는다. 서울에서 혼자 왔다는 올레꾼에게도 알오름 올레는 길을 내주었다.

말미오름이 소가 사는 곳이라면 알오름은 말이 사는 곳이다. 등성이마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풀을 뜯는 말들을 보니 '천고마비'란 말이 바로 제주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올레꾼
▲ 알오름 올레꾼 올레꾼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하늘 위를 걷는 기분... 감탄사로 대화 나눠

낯선 동행와 걸었던 올레는 3.8km. 시흥초등학교-말미오름- 알오름까지 1시간 30분 정도. 하지만 우리는  말이 필요 없었다. 무리 지어 피어나는 야생화의 몸짓에 '우와!'하고 감탄을 했다. 신기루 같은 말미오름 정상에서 '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지막한 알오름의 여백에 빠져 '오메!'하고 함께 소리를 질렀다. 그 감탄사가 오로지 낯선 동행자와 내가 나눈 인사이며 언어, 그리고 대화였다.

밀미오름과 알오름으로 이어지는 제주올레 1코스, 그 길은 하늘 위를 걷는 기분었다.

말미오름
말미오름
▲ 말미오름 말미오름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말미오름(두산봉)은 서귀포시 시흥리 산 1-5번지에 있다. 말미오름은 표고 126.5m, 비고 101m이며, 알오름은 표고 145.9m, 비고 51m이다.

말미오름은 응회환으로 된 수중분화구 내부에 이차적으로 생성된 화구구인 분석구를 갖고 있는 전형적인 이중화산체이다. 화산체가 두 번에 걸친 화산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화산체 중심부에 2차적으로 형성된 알오름이 자리잡고 있다. 동사면에서 남사면에 이르는 화구륜은 침식되어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반대쪽인 북서쪽 사면에는 풀밭의 평지를 이루고 있다.

말미오름(두산봉)은 얕은 바다속에서의 화산분출활동에 의해 응회환의 퇴적층이 형성된 후에 퇴적층 자체의 성장과 함께 융기활동에 의해 기생화산체의 환경이 수중에서 육상으로 변하게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어서 계속된 분화활동은 화구가 직접적인 물과의 접촉이 차단된 육상환경으로서 소위 스트롬볼리식 분화활동에 의해 화구구인 스코리아(송이)로 이루어진 새로운 분석구를 만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 제주특별자치도청 관광 정보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제주올레 1코스는 시흥초등학교-말미오름(2.9km)-알오름(3.8km)-종달리회관(7.3km)-종달리 소금밭-성산갑문(12km)-광치기해변(15km)로 5시간정도 걸린다.

이기사는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태그:#제주올레1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