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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뱀 이야기를 하면서 뱀 사진을 적나라하게 블러그에 공개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심장 약한 이나 노약자, 임산부는 이번 글도 읽지 말아야 합니다. 존재의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한 이야기입니다. - 기자 주

▲ 연가시 연가시가 귀뚜라미 뱃속에서 나오는 모습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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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시라는 유선형동물이 있습니다. 이 녀석은 청정한 물, 즉 1급수 이상의 물에서만 살아갑니다. 연가시라는 이름은 사랑스럽고 아름답습니다. 연애 소설에 나올 법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니 어쩌면 연애소설보다 더한 사랑이야기가 나올 법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가시의 생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귀뚜라미 몸에서 나오는 괴물 "이게 뭐지?"

연가시를 만났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다보니 요즘은 자주 만납니다. 그러기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녀석이기도 합니다. 녀석이 암놈인지 숫놈인지도 모릅니다. 그걸 확인할 재주는 내게 없습니다. 그걸 연구한 자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냥 녀석이라고 부릅니다.

녀석을 처음 본 것은 얼마 전 집 안에서였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오는 날이었고, 어둠이 막 깔린 초저녁이었습니다. 창문 방충망에 붙은 반딧불이가 번쩍… 번쩍하고 언제 들어왔는지 박쥐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무섭게 날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괴기한 날이었습니다. 스스스,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도 부족해 검은 박쥐에다 반딧불이, 그리곤 낮에 본 뱀들이 한꺼번에 머리를 스쳐가는 그 밤… 인근에 사람이라고 없는 산중고독의 신세에 놓인 나. 귀곡산장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 귀뚜라미 한 마리가 거실 바닥을 폴짝폴짝 뛰어갑니다. 크기가 거짓말 조금 보태면 황소만 해 보입니다. 그렇게 크다는 것입니다. 모든 두려움은 한 번에 밀려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귀뚜라미, 가을을 부르는 울음소리는 정겹지만 집안에 그냥 두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 놈입니다. 귀뚜라미도 가끔은 사람을 물기 때문입니다.

귀뚜라미를 산 채로 잡아 창 밖으로 던져야 했습니다. 그러니 파리채나 책 등의 흉기를 사용할 수도 없습니다. 이리저리 뛰는 놈을 살려서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결국 놈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더 이상 뛸 수도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귀뚜라미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귀뚜라미 몸에서 이상한 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흠칫 놀라며 "저게 뭐지?" 하고 지켜 보았더니 귀뚜라미 몸에서 작은 실뱀 같은 녀석들이 두 마리나 나왔습니다. 순간 기겁했습니다. 놀라지 않을 방법이 없는 밤이었습니다. 귀뚜라미 몸에서 뭔가가 나오는 것도 무서운 일인데, 그것이 내가 무서워 하는 뱀을 닮았습니다.

내 몸에도 연가시가 있을까...
 내 몸에도 연가시가 있을까...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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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상상 속 외계동물인 에이리언?

귀뚜라미 몸에서 빠져나온 녀석들, 거실 바닥을 제멋대로 헤치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는 부실부실 내리지요. 바람은 불지요. 그뿐입니까. 박쥐는 머리 위를 휭휭 돌고 반딧불이는 번쩍거리고… 아, 눈 앞에 펼쳐진 이 괴기한 일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더구나 그 순간 오래 전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의 몸 속에서 자라다 끈적한 액체를 몸에 잔뜩 묻히고는 괴기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몸 밖으로 나오는 상상 속의 외계동물인 에이리언… 그 끔찍한 장면이 겹치면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극심한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서운 저 녀석들, 대체 저 녀석들은 뭐고 그 정체는 또 뭘까… 에이리언이 실제로 있다는 말인가? 하도 흉측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켬퓨터를 서둘러 켜고는 인터넷 검색창에 '에이리언'을 쳤습니다.

휴, 다행이었습니다. 나를 놀라게 만든 괴물의 정체는 에이리언이 아니고 '연가시'라는 동물이었습니다. 귀뚜라미나 사마귀 같은 곤충의 몸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연가시는 네마토모프(Nematomorph)라고 불리기도 하는 선충이며 일종의 기생충이었던 것입니다. 성충이 되면 그 길이가 2m나 된다고 하니 절대로 귀여운 놈이 아닙니다.

그러나 연가시의 일생은 가히 자연 속의 에이리언이라 할만 했습니다. 녀석은 깨끗한 물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개울에서 실뱀이라며 잡아서 놀던 것이 이제보니 연가시였던 것입니다.

연가시는 물에서 태어나 귀뚜라미나 사마귀 등의 곤충에서 자라다 다시 물로 돌아와 생을 마감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 일련의 과정, 즉 연가시가 어떻게 곤충의 몸으로 들어가고 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연구는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유충이었던 연가시가 강도래나 날도래 등의 수서 곤충에게 먹혔고, 그것을 다시 귀뚜라미나 메뚜기, 사마귀 등이 먹어 곤충의 몸에 기생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하나가 있고요.

연가시가 귀뚜라미의 몸에서 나오고 있다
 연가시가 귀뚜라미의 몸에서 나오고 있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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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의 몸에서 기생하던 연가시가 물로 돌아가는 방법은?

물 속에서 부화된 알이 뭍으로 올라와 풀에 달라 붙었고, 그 유충은 풀을 먹이로 하는 작은 초식곤충의 몸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가 귀뚜라미 같은 육식곤충이 그 초식성 곤충을 잡아 먹는 과정에서 연가시가 그들의 체내로 유입되면서 기생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귀뚜라미나 사마귀의 몸에 들어간 연가시의 이후 행적을 살펴보면 녀석을 현실 속의 에이리언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귀뚜라미 몸에 기생하기 시작한 연가시는 우선 귀뚜라미의 내장부터 먹어 치웁니다. 내장을 말끔하게 먹어도 귀뚜라미는 죽지 않는데요. 그것은 아마 연가시가 배출하는 분비물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체내에서 몸을 키운 연가시의 크기는 굵은 철사만 하고 그 길이는 40cm가 넘습니다. 연가시가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귀뚜라미가 끊임없이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귀뚜라미가 먹는 먹이를 연가시가 고스란히 먹는 것이지요. 그러하니 배가 불룩한 귀뚜라미나 사마귀, 메뚜기가 있다면 모두 연가시가 들어 있다고 보아도 됩니다.

한때 인간의 몸에도 기생충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 정도 상황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연가시가 다시 태어난 물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귀뚜라미 몸에 기생하던 연가시는 성장이 끝나면 스스로 몸을 빠져나와 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마음 착한 귀뚜라미가 "이제 너를 다 키웠으니 내가 물까지 데려다 주마"하며 물로 첨벙 뛰어 들어 새끼를 낳듯 연가시를 낳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연가시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물로 돌아갈까요? 수분이 없으면 단 몇 분도 살아남을 수 없는 연가시가 물을 찾아 가는 여정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물론 이 또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연구 또한 되어 있지 않고요.

지금까지 알려진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성충이 된 연가시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귀뚜라미나 사마귀 등의 체내에서 연가시만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신경전달물질을 배출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귀뚜라미는 그 신경물질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물을 찾아 이동하게 되고 결국 물에 뛰어 든다고 합니다. 물을 만난 연가시는 그 틈을 이용해 귀뚜라미의 몸을 열고 유유히 물로 돌아가 교미를 하고 수십만 개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귀뚜라미의 몸에서 나오는 것, 이게 뭘까?
 귀뚜라미의 몸에서 나오는 것, 이게 뭘까?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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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당신의 몸에 사악함을 추구하는 연가시 없나요?

그러니까 귀뚜라미는 연가시의 조종에 의해 물로 뛰어 드는 셈입니다. 섬뜩하기도 하고 기가 막힌 일이기도 합니다. 귀뚜라미로서는 더 억울한 일입니다. 귀뚜라미가 죽어가면서 "연가시 이 놈… 지금까지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며 애써 키워 놓았더니 자살을 유도해?" 이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자연은 냉혹합니다. 귀뚜라미가 죽어가는 시간 연가시는 멋진 몸을 휘날리며 자신의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눕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말이 생각나는 순간입니다.

이틀 전 마당에서 귀뚜라미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매미소리 가득하고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이 펼쳐진 그런 날이었습니다. 이번에도 귀뚜라미의 몸에서 연가시가 몸을 뚫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귀뚜라미 몸에서 나온 연가시는 세 마리, 색깔도 각자 다릅니다. 검은색, 고동색, 흰색까지. 연가시 세 마리가 빠져 나온 귀뚜라미의 몸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내장을 다 비워내며 연가시를 키운 귀뚜라미의 생이 그렇게 끝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담으며 또 전율했습니다.

내 몸에도 이성을 마비시키는 연가시가 몇 마리쯤 들어 있을지 모르겠다는… 그리하여 나도 언젠가는 연가시의 조종에 의해 물로 뛰어 들지 모르겠다는… 물의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게 만드는 연가시를 낳은 후 내 몸이 두둥실 떠오를 수 있다는 그런 끔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여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몸엔 귀뚜라미를 물로 뛰어 들게 만드는 연가시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연가시 몇 마리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부나비처럼 쾌락의 늪에 빠져 들고 있지 않습니까.

혹여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몸에 사악한 물질을 배출하는 연가시 몇 마리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사람을 죽이고도 미안해 하지 않고, 칼로 몸을 난도질 하고도 후회하지 않고,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간 이들을 불 태워 죽이고도 눈물 흘리지 않는 것입니까….

귀뚜라미 몸에서 나온 연가시는 모두 세 마리. 귀뚜라미는 내장을 다 내어주면서 연가시를 키웠다
 귀뚜라미 몸에서 나온 연가시는 모두 세 마리. 귀뚜라미는 내장을 다 내어주면서 연가시를 키웠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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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에이리언, #연가시, #귀뚜라미, #사마귀, #단임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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