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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처음으로 광역단체장 주민소환 투표를 앞두고 있는 제주도. 이번 주민투표와 관련 이규배 탐라대 교수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교수는 일본 와세다대에서 일본정치사를 전공했으며, 제주4.3연구소 소장과 제주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역임하고 이번 '김태환지사 소환운동본부 100인 대표'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지난 7월 26일 저녁 8시 어둠이 깃든 제주시 탑동 해변공연장. 거기서는 CM송의 대부이며 블루스의 맏형 가수 김도향의 여름밤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들른 그곳에서 필자는 한가로이 김도향의 콘서트를 즐기게 되었다. 관중은 노천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도민은 물론이고 상당수의 국내외 관광객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김도향의 멋과 맛에 모든 관중은 제주의 여름밤과 함께 흠뻑 취하고 있었다.

 

제주의 여름밤과 평화

 

문득 해변공연장의 북쪽 상공 위로 한 대의 비행기가 육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콘서트와 바다와 관객과 비행기, 필자는 이를 바라보며 평화와 제주의 우울한 미래가 떠올랐다. 바쁜 일상을 뒤로 한 채, 모든 관중이 참으로 평화롭고 안락한 휴식을 제주에서 맛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그렇구나! 제주는 만인의 휴식처, 보배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교차하기도 했다. 그리고 필자의 고향이 이처럼 평화로운 제주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에 목젖이 뜨거워졌다.

 

이와 동시에 도지사 소환운동도 떠올랐다. 제주도정을 생각했다. 거대한 조직력과 예산을 가지고 행정이 만들어낸 제주는 과연 무엇일까? 홍보 효과는 대단한 것으로 평가되곤 하지만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각종 대회와 국제행사, 그리고 세계자연유산등재와 각종 개발사업 등등. 분명히 도지사라면 마땅히 할 수밖에 없는 사업들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최근 제주의 유명세를 국내외로 톡톡히 홍보한 올레길이 떠올랐다. 국내와 해외에서 줄줄이 제주를 찾는 올레길 탐방객들, 이들은 김태환이라는 도지사의 이름은 몰라도 올레길을 발견한 한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서명숙은 안다.

 

거대한 조직과 예산, 자연파괴도 없는 올레길 발견, 서명숙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찾아낼 줄 알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원하는 것을 할 줄 알았다. 이 덕분에 올레길에서 평화와 휴식을 즐기던 사람들은 다시 제주를 재구매하며 제주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제주사회의 그 누구도 올레길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지도 분열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제주의 개발과 경제, 정부의 지원을 끌어낸다는 명분과 목적으로 끊임없이 도민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유발하는 도지사를 보며 도민들은 어쩔 수 없는 그의 비전과 역량의 한계를 눈치채 버렸다. 인간적으로 도지사가 지닌 '부지런한' 장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도민이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이다. 개인 상갓집까지 바지런하게 넘나드는 그의 부지런함은 도지사의 덕목이 아닌 염증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아는 도민들은 이렇게 말한다.

 

"개인 경조사까지 이렇게 쫓아다니다니…… 지사가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그 시간에 제주 미래를 토론하고 설계하며, 갈등 치유와 해소를 위해 참으로 아파하는 사람들과 머리와 가슴을 맞댔다면 도지사는 소환이 아닌 존경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이 '몹쓸' 도지사의 정치공학적·파벌적 행태 때문에 제주사회와 행정공무원 사회 일각에는 높은 사람 '눈 밖에 나지 않고' '눈도장'을 찍기 위한 패덕한 줄서기와 눈치보기 문화가 만연되어 있다는 비난이다. 사람들 눈에 도지사는 '높은' 사람이기도 하면서 '무서운' 사람이 되어 있는 셈이다.

 

합법 투표가 불법행위로 낙인찍히는 현실

 

그런 참에 소환대상자가 된 도지사는 소환투표율(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을 떨어뜨림으로써 투표함 개봉을 무산시킨다는 '투표 불참' 전략을 노골화했다. 신성한 참정권 행사를 위해 투표장에 가는 것이 도지사를 향한 '반역'으로 선포된 셈이다. 여기에 더하여 주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주관 토론회에도 불참하겠다는 것이다. 제주를 위해서도, 헌법 정신을 위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아닌 '도지사 김태환'을 위해서 투표에 신경 끄고 불참해 달라는 셈이다.

 

소환은 헌법상 보장된 주민의 권리이며, 이에 따른 소환투표 참여는 당연한 참정권의 발로이다. 개인과 국가 간에 있어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합법적이냐 불법적이냐' 단 한 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소환과 소환투표는 매우 자연스런 합법적인 행위일 따름이다.

 

그러나 '높고' '무서운' 도지사의 '투표 불참'전략으로 인해 일부의 유권자, 기관, 단체들은 합법적 참정권 행사를 누군가의 눈초리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찬반을 떠나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합법적 투표가 마치 불법스런 행위로 낙인찍히고, 투표불참이라는 반교육적, 반사회적 불법 선동이 합법한 행위로 치부되는 기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 정도면 도지사의 '보신'만을 위해 헌법정신과 법질서를 문란케 하는 반국가적 배임행위가 아닌가?

 

소환대상자로서는 이 또한 투표전술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누가 봐도 '내가 정당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틈타 이기게 되는' 비열한 뒷골목의 승리 방정식이다. 사무라이는 등 뒤에서 칼을 휘두르지 않으며, 서부의 총잡이는 등 뒤에다 총을 쏘지 않는다. 지금 도지사가 취하는 승부 방정식은 마치 등 뒤에서 칼과 총을 겨누는 뒷골목의 삼류 승부사나 하는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역사의 화강암에 새겨질 이름

 

이제 제주의 유권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소환투표정국을 마주하고 있다. 소환운동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 루비콘강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만일 제주도민이 도지사의 '투표 불참' 장단에 놀아나며 '공포 정국'에 굴복한다면, 역사 앞에 당당했던 제주의 자존심은 씻을 수 없는 수치와 오욕으로 기록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일 도지사의 권력과 그 하수인들의 눈초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귀한 참정권을 행사하여 투표함을 개봉하게 된다면, 제주도민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역사의 화강암에 그 이름이 깊이 새겨지게 될 것이다.


태그:#김태환, #주민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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