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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입추가 지났습니다. 올해 여름은 작년에 비해 무더위가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입추를 지나면서 되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가을 냄새가 조금씩 스며들 것 같습니다.

 

가을이 되면 전어(錢魚)이야기를 먼저 해야 합니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말'이라는 말은 널리 회자되는 말이죠. 아마도 전어를 드셔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입니다. 구워 먹어도, 뼈째 썰어낸 회를 먹어도 고소한 맛이야말로 전어의 맛입니다. 전어의 이름에 전(錢)이 들어간 것도 맛에 취해 값도 생각하지 않고 사들였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니 가을에 전어맛을 보지 못한다면 섭섭한 일입니다.

 

이제 가을, 전어의 계절이 왔습니다. 들과 밭이 수확으로 흥겨울 때 바다에서도 제철 만난 고기들이 무진장 쏟아지는 계절이 바로 가을입니다.

 

 

전어는 우리나라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많이 잡힙니다. 산란기는 3~6월인데 대부분의 물고기가 산란기를 지나면 맛이 없어지지만 전어만은 예외입니다. 오히려 맛이 좋아집니다. 여름철보다 가을철에 지질 함량이 3배나 높아지면서 고소한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청어과의 물고기로 몸길이는 15~30cm까지 자라며 옆으로 납작한 모습입니다. 몸 옆면 중앙에 검은 점이 띠처럼 배열되어 있는 것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가슴 지느러미 부분에도 뚜렷한 검은 반점이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전어에 대한 속담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어는 예로부터 널리 알려진 물고기였던 것 같습니다.

 

실학자 서유구가 1820년 집대성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 실린 전어 관련 기록입니다.

 

서남해에서 난다. 몸이 납작하고 배와 등이 불룩하게 튀어나온 것이 붕어를 닮았다. 비늘은 푸른색이다. 가느다란 털이 등에서 나와 꼬리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해마다 입하 전후에 물가에 와서 진흙을 먹는데, 어부들은 그물을 쳐서 이를 잡는다. 살에는 잔가시가 있지만 부드럽고 약해서 씹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살이 통통하고 기름져서 맛이 좋다. 상인들은 절여서 서울에 팔아넘기는데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진기하게 여긴다. 맛이 좋아서 사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돈을 따지지 않으므로 전어(錢魚)라고 한다.

 

한편 정약전의 현산어보 (玆山魚譜)에도 전어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전어(箭魚) : 속명을 그대로 따름. 큰 놈은 한 자 정도이다. 몸이 높고 좁으며 검푸른색을 띠고 있다. 기름이 많으며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난다. 흑산에도 간혹 나타나지만 맛이 육지 가까운데 것만은 못하다.

 

현산어보에 실린 전어는 맛있지만 흑산도에서는 귀한 생선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뻘의 유기물을 먹이로 좋아하는 전어의 특성 때문에 강 하구 기수역이나 갯벌이 발달한 지역의 전어를 더 높게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전어가 유명한 지방은 대개 저니토가 발달했거나, 갯벌이 좋다든가, 아니면 강 하구의 기수역이 발달한 곳입니다. 삼천포, 하동, 광양 망덕포구, 보성 율포, 안면도, 강화도 등입니다.

 

한편 이태원의 "현산어보를 찾아서"에 따르면 전어의 이름에 錢이 들어간 것은 가슴지느러미 부분에 뚜렷한 검은 반점이 마치 동전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는데 설득력이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현산어보에 기록된 전어는 箭(화살 전)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살치"라는 이름을 그대로 옮겼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마치 화살 같은 모양새와 빠르게 움직이는 물고기라는 뜻이 이름에 남았다는 해석입니다.

 

전어에 대한 기록이 많은 것이 방증하듯 전어는 예로부터 중요한 어종이었고 지금도 가을철 가장 이름난 어종 중에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가을이 시작된다 싶으면 TV와 같은 언론매체에서 전어를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정형화된 내용이지만 식욕을 자극하는 내용에 연속적으로 노출되면 당연히 전어 수요가 많아질 것입니다. 전어를 취급하는 횟집이 본격적인 장사를 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을이면 늘 전어가 올라올 것 같지만 이제는 과거와 달리 전어 구경을 하기 어려워진 곳도 있습니다. 예로부터 광양만 망덕포구의 전어는 조정에 진상되는 귀한 상품이었습니다. 망덕포구의 어부들은 노랗게 기름이 오른 전어로 만선의 기쁨을 누리곤 했습니다.

섬진강 기수역인 망덕포구는 전어가 좋아하는 천혜의 지역입니다. 전어는 내만성으로 연안의 기수역으로 회유하여 산란하는 습성이 있으며 뻘 바닥의 유기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광양에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망덕포구의 전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매년 가을에 치러지는 광양 전어축제는 전어가 잡히지 않는 축제로 존폐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2008년까지 10회나 치러진 축제이지만 망덕포구의 전어 어획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철소 인근에서의 어로활동은 규제를 받고 있으며, 망덕포구로 회유하는 전어도 줄었습니다. 다만 포구에 늘어선 50여개의 횟집에서 전어를 맛볼 수 있을 뿐입니다.

 

망덕포구는 올해 초 강굴(벗굴, 벚굴)을 보기 위해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망덕포구의 정확한 주소지는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입니다. 배알도가 바로 앞에 보이고 멀리 광양제철소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섬진강은 대형 하천 중 유일하게 하구둑이 존재하지 않아 기수역이 온전하게 보존된 곳이지만 바다와 합쳐지는 두 갈래 중 한 갈래인 광양만의 망덕포구는 제철소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이곳의 어부들은 횟집을 운영하거나 외지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전어는 나고 자란 곳을 몸으로 기억하여 회유해 돌아오지만 어로활동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망덕 전어를 구경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얼마 전 기사를 보니 광양시에서는 전어 축제의 지속 여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비록 전어의 어획량은 감소했지만 전통적인 전어의 명소에서 전어의 맛을 볼 수 있는 것도 축제의 한 모습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섬진강과 바다가 만나는 망덕포구는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여행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광양 망덕포구의 전어축제가 더 다양한 형태로 진일보하여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망덕포구의 상황과는 달리 최근 몇 년 사이에 전어의 어획량은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적극적인 어로활동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전어 양식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전어의 물량은 늘 남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전어의 가격은 kg당 5,000원 내외의 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활어상태이며 kg당 약 10~12마리, 즉 마리당 약 100g내외의 전어를 기준으로 한 가격입니다). 늦더위가 계속되어 수요가 많지 않은 결과, 가격은 낮게 형성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서늘한 바람이 불어 가을을 알리는 때가 오고 전어 굽는 냄새를 몸이 먼저 기억하게 되면, 어느새 가격이 크게 뛰어 오를 것입니다. 한창 비쌀 때는 kg당 20,000원을 넘기도 합니다.

 

 

가을비가 한차례 오고 나면, 비로 인한 담수가 바다로 유입되어 전어의 어획량이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이미 입추도 지났으니 담수를 좋아하는 전어가 내만으로 몰려드는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노량진어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어, #망덕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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