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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용산학살, 쌍용차 같은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폭압적인 국가기구를 변화시키는 과거사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사청산은 국가폭력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토론자들은 이와 같이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노무현 정권 때의 과거사청산에 대해 "부족했지만 실패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앞으로 과거사청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모색했다.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이었던 김영수 경상대 교수는 '해외 사례를 통해서 본 한국의 과거사 정리'라는 발제에서 지난 과거사청산에 대한 문제점으로 인적 청산이 결여된 점을 꼽았다.

김 교수는 "지난 과거사정리가 보고서를 남기는 정도로 된 것이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구조적 문제의 원인"이라며 "가해자에게서 진실을 말하게 하기 위해서 처벌 중심의 인적 정리로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사청산 인적 청산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한홍구 교수, 김영수 교수 등 7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한홍구 교수, 김영수 교수 등 7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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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김 교수는 "국가가 과거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르완다의 사례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김 교수는 "르완다의 경우 국가가 임명한 판사가 아닌 국민이 직접 투표해서 뽑은 덕망 있는 사람이 과거사청산을 했다"며 "판결 내용이 강제됨은 물론이고 폭력적 국가기구에 대한 개혁 논의가 함께 나왔다"고 설명했다.

김명운 추모연대 의장도 김 교수의 지난 과거사청산에서 부족한 점은 인적 청산의 결여라는 지적에 대해 동의했다. 김 의장은 "인적 청산을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준 과거사 정리가 되었다"며 "새롭게 민주정부 들어설 때 과거사청산을 또 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명예회복 기념식이나 배상과 보상이나 하는 정도라고 생각하게 한 것이 기존의 과거사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과거사운동에 대해 김 의장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본격적인 민주화 투쟁과 함께 진행될 때 과거사가 정리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거사청산은 인권 회복 문제"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한홍구 교수, 김영수 교수 등 7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한홍구 교수, 김영수 교수 등 7명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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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청산을 정치적 문제가 아닌 인권의 회복이란 관점에서 바라본 견해도 있었다. 의문사한 고 최종길 교수의 아들 최광준 경희대 법대 교수는 "의문사의 문제는 인권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생명권에 대한 문제"라면서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밝혀야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 교수는 "이런 국가의 의무는 시간이 흐른다고 줄어들지 않는다"며 "계속적인 관리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의문사를 규명하는 기구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 최종길 교수는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간첩 혐의로 조사를 받다 전기 고문으로 숨졌고,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민주화 운동가로 명예가 회복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2000년 10월 17일에 출범해 2004년 6월 30일까지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법이 제정되기까지 422일간의 국회 앞 농성 같은 유가족들의 투쟁이 있었다. 위원회는 1981년 삼청교육대에서 사망한 전정배, 인민혁명당 사건 등 의문사의 실체를 밝힌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재야 지도자 장준하, 중앙대 총학생회 회장 이내창 의문사 사건 등 30여건을 '조사불능'으로 결정했다. 제한된 조사 권한과 활동 기간 만료가 이유였다.

과거사청산 공은 다시 시민사회로... 대중과의 소통 고민해야

김성희 이내창열사추모사업회 운영위원은 위원회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 운영위원은 "위원회의 운영주체들의 내부 갈등으로 효율적인 운영에 실패했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역시 이내창 사건에 대해 진정을 낸 지 4년이 다 돼 가지만 조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전 국정원과거사위원회 위원이었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일상적 보고 쪼가리 외에는 이내창 열사에 대한 자료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며 "유가족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제는 국가가 중심이 돼서 과거사를 규명하는 단계는 지나 공은 다시 시민사회로 넘어왔다"며 "대중에게 과거사 문제를 어떻게 알리고 소통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앞서 군대에서 의문사 한 허원근 일병 아버지 허영춘씨가 인사말을 건넸다. 그는 "의문의 죽음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상태에서 후손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냐"며 "좋은 세상 만들어서 후손은 우리와 같이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안성교정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이내창 열사가 거문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지 20년이 지났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다.
 중앙대 안성교정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이내창 열사가 거문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지 20년이 지났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장충동2가 만해NGO교육센터에서 열린 '이내창 열사 20주기 기념토론회' '과거사청산 어떻게 할 것인가' 포스터가 벽에 붙어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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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최재혁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과거사, #이내창, #과거사청산, #의문사,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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