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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평전 표지
▲ <장준하 평전>, 김삼웅 저, 시대의 창 장준하 평전 표지
ⓒ 시대의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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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은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희귀병 환자다.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인 주인공은 잠에서 깰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전의 시간은 온데간데 없어진 듯하다. 마치 하늘로부터 '툭'하고 떨어진 듯한 시공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만 같을지라도 주인공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기억을 잃기 전 상황과 연결된다. 기억을 잃기 전 써놓은 자신의 '메모'가 새롭게 맞이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근거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과거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듯해도 과거와 상관없는 현재는 없다. 현재의 상황은 다 이유가 있고 맥락이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인물들에 대한 재조명의 일환으로 '평전'을 꾸준히 세상에 내놓는 출판 흐름이 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재의 문제 앞에서 이를 진단하고 나아갈 바를 알기 위해 역사의 맥락을 짚어보고자 하는 의도와 노력이 현대사 인물 재조명, 즉 '평전'이라는 결실로 맺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평전 출간의 중심에 김삼웅씨가 있다. 가장 최근 출간한 <장준하 평전> 말고도 9권이나 되는 평전을 이미 써냈고 <조봉암 평전>을 올해 안에 출간할 것을 <장준하 평전> 책머리에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오마이뉴스>에 '김대중 평전'을 연재하고 있기도 하다.

김삼웅씨가 펴낸 평전들의 인물들은 책이나 역사 교과서 등을 통해 잘 알려져 있는 인물들이 있고, 여러 매체나 역사 교과서 등에서 소외 되거나 왜곡되어 대중들에게 잘 혹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장준하 평전>은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일제강점기에는 광복군으로 왜적에 저항하고, 해방 뒤에는 귀국하여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헌신하고, 이후 <사상계>를 창간하여 4.19혁명을 추동하는 민주주의 교육과 민권투쟁에 나섰으며, 박정희 독재 시절에는 거리로 나아가 치열하게 한 판 싸움을 벌인 장준하 선생.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준 삶을 살다간 그였지만 장준하 선생의 일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장준하,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 독립운동과 반독재 투쟁과 통일운동의 기념비적인 존재다. <장준하 평전>에는 그러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알리고 의문사의 진상을 조금이나마 밝히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책의 시작은 장준하 선생의 출생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음'이 책의 시작이다. 이러한 책 내용의 배치는 어쩌면 권위주의적 정부로 회귀하고 있는 현재가, 권력을 향해 정조준하고 있는 언론의 욕망이 아직도 기세등등한 현재가 장준하 정신이 죽어서도 다시금 '시작' 앞에 놓일 수밖에 없는 우리 역사의 형국을 보여주는 듯하다.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장준하 선생의 삶에서 그가 만들었던 잡지 <사상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광복군 시절이나, 한국전쟁 시절이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여러 사람들의 글을 모아 잡지를 만들었으며, 이러한 노력은 1950년대, 전쟁이 남긴 폐허와 이승만 독재의 척박한 땅에서 한국인들에게 민주주의와 민권의식을 일깨워준 지성지 <사상계思想界> 출간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한 치의 주저함 없이 곧은 소리를 냈던 시대의 양심이 훗날 4.19혁명의 바탕이 되었고, 이러한 정신은 훗날 권력에 대항하는 장준하 선생의 삶으로 꽃 피운다.

"풀브라이트는 <지상혁명론紙上革命論>에서 "일체의 혁명은 이론서 위에서 출발했다"고 썼다...(중략)...과거의 모든 혁명의 씨앗은 혁명서라는 종이 위에서 출발한다. 세계사를 바꾼 혁며의 배경에는 반드시 혁명의 이론과 당위성을 제시하는 이론서나 이를 촉발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혁명서가 있었다." - <장준하 평전>, 김삼웅, 시대의 창, p.306 중에서

장준하 선생은 '일주명창一注明窓'이란 말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히고 있다'는 뜻이다. 불의한 정권에 맞서 하나의 심지, 하나의 불꽃이 되었던 삶을 살았던 장준하 선생의 혁명적 삶과 정신. 장준하 선생의 죽음이 있은 지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같지도 않지만 여전히 그의 삶이 우리 시대의 큰 도전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진보'하기 위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장준하 선생의 삶을 재조명하고 우리 시대의 과제를 바로 설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장준하 평전> 읽기의 큰 유익이다. '일주명창一注明窓'이란 말을 다시금 새기게 되는 요즈음이다.

"혁명가는 막힌 길을 뚫는다. 암흑으로, 청창으로, 율법으로, 계엄으로, 법제로, 비상조치로 묶이고 막힌 상황을 타파하고자 한다. 그것이 혁명가의 일이다. 낡은 가죽革을 벗기고 새로운 생명命을 불어넣는 일이다." - <장준하 평전>, 김삼웅, 시대의 창, p.42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장준하 평전> / 김삼웅 지음 / 시대의 창 / 1만6900원



장준하 평전 - 개정판

김삼웅 지음, 시대의창(2012)


태그:#장준하, #김삼웅, #장준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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