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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녀, 초식남, 토이남, 그루밍족, 홈대디, 골드미스.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의 남녀의 모습은 다양하다. 남녀의 역할이 변했을 뿐 아니라 기성세대의 문화나 윤리적인 틀을 거부하면서 개성을 추구하는 신(新)인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일부의 색안경을 낀 시선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사는 모습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말]
올해 서른 아홉 김종신씨는 '당당한' 주부다.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전업주부를 괄시하겠는가마는, '당당한'이라는 수식어를 단 건 김씨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 통계청이 2008년 남성 전업주부가 15만1000명으로 2003년의 10만6000명에 비해 42% 증가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만 봐도, 살림하는 남자, 홈대디의 등장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종신씨는 "내가 특이하다거나 기사 거리가 될 만한 소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나와 가족이 원해서 하는 일일 뿐"이라고 말한다.

남편이 안주인을 자처한 이유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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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씨는 올해부터 안주인을 자처했다. 지금은 용돈벌이를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지만 살림을 맡기 전에는 학원에서 전임강사로 일했다. 그러나 아내가 1년간의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면서부터 종신씨의 고민은 시작됐다.

지난해 9월 당시 12개월 된 딸 민애를 맡길 데가 어린이집 외에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아토피가 심해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면서 또 아침에 출근해 저녁 6시쯤 집에 돌아오는 아내와 오후 2시쯤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종신씨의 엇갈리는 생활패턴을 보면서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는 종신씨.

"애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정서적으로 불안해했고 아토피 피부염도 심해졌다. 그리고 아내와 나의 생활패턴이 달라 하루에 말 한 마디 못하고, 밥 한 끼도 같이 못 먹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서 함께 사는 식구라 할 수 있겠나 싶어, 가족을 돌보는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아내의 도움도 컸다."

이렇게 시작된 김씨의 하루일과는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새벽 6시쯤 일어나 출근하는 아내를 위해 아침을 차리고, 아내가 나간 뒤에는 23개월 된 딸 민애를 전담해서 돌본다. 산책도 가고, 놀이터에서 놀고, 간식도 챙기고. 그리고 집안 일 몇 가지 하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살림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집안 일이란 게 대개 그렇다.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 여기까지 마무리 하고, 아내가 돌아오면 해방과 구속이 겹쳐진다. 집안 일에서는 잠시 해방될 수 있겠지만,  밤9시부터 12시까지 있는 학원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김씨의 귀가는 새벽 2시께가 되어서다.

그나마 지금은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 김광선(35)씨가 방학이라 집안 일을 돕고 있어 좀 나은 형편이란다. 그래도 여전히 살림의 7할 이상은 자신이 맡아하지만 종신씨는 "지금은 천국 같다"고 했다.

사실 종신씨에게 육아와 살림은 비교적 익숙한 일이었다. 전업주부가 되기 이전부터 아내와 분담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살림의 주체가 되자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 주는 피곤과 스트레스가 컸다.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나을 틈도 없으니, 어쩌면 살림처럼 힘든 일은 남자에게 더 어울리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종신씨는 이런 체험으로 얻은 값진 깨달음을 <오마이뉴스>에 '주부(主夫) , 몸살에 걸리다- 아픈 배우자에게 신경쓰세요'라는 기사로 올리기도 했다).

살림하겠다는 남편, 평생 눌러앉으면 어쩌지?

남성주부도 수다 떠나요?
6개월차 살림하는 남자 종신씨가 이웃과 잘 지내고는 있지만, 현역 주부들 만큼의 정보는 따라갈 수가 없다. 살림하는 사람 대부분이 여자이기에 다가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육아나 살림에 대한 정보교환이 수월하지 않은 종신씨가 주로 애용하는 방법은 TV에서 하는 육아정보프로그램 정도다.

<매일 아침 밥상 차리는 남자>, <헬로 아빠 육아> 등을 출간하며 올해로 11년 차인 베테랑 남성 주부 오성근씨는 "여성들은 수다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육아와 가사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지만 남자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서로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선 절감하면서 그럴 공간은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최근 남성 주부가 15만 명이라는 통계가 나왔는데 실제론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어디 갔나? 다 숨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부가 된다는 것이 창피해 할 일이 아니다. 고된 노동을 하면서 죄인처럼 숨어 있지 말고, 15만 명이 아니라 단 150명이라고 해도 용기를 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면 힘든 일도 함께 풀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살림을 맡아 하겠다는 남편의 선언을 아내 광선씨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광선씨는 "복직하고 나서 아이 문제로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이 아이를 돌보겠다는 말을 듣고 너무 좋았다"고 당시 심정을 말해 주었다.

남편이 살림을 맡으면서 광선씨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고. 힘들고 벅차기만 한 줄 알았던 집안일이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과 돈에 쫓기기보다 아이를 키우며 사는 과정이 더 만족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자가 살림하는 것에 대한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남편이 자격지심을 느낄까봐 두려웠고, 살림만 하다 사회 일원으로서의 생활에 소홀해질까봐 염려됐다. 또 평생 집안에 눌러 앉을까봐 걱정도 됐다.

종신씨는 아내의 이 모든 걱정들을 불식시켰다. 홈대디가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라는 종신씨. 어른들은 "그래도 네가 가장인데 일을 해야지"라고 타박하고, 지인들은 "그래도 네가 벌어야지 않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나 종신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편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래야만 했다. 종신씨는 매일같이 딸 민애의 손을 잡고 도서관, 놀이터 등을 당당히 누빈다. 살림과 육아를 하겠다고 호언장담해놓고 딸 앞에서 부끄러워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종신씨는 "처음에는 남자가 동네에서 애 데리고 다닌다고 이상하게 봤는데 지금은 애 잘 보는 아빠로 소문이 나있다"면서 "남성 주부가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고 직장을 잃은 현실의 도피처로만 생각한다면 가족들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내 역시 지원해 주었다. 주변에서 "애는 누가 봐?"라고 물어보면, 당당히 "남편이 본다"고 말한다. 광선씨는 "일 하는 여성들의 최대 고민이 육아문제이기 때문에 주위 여성 동료들은 다 부러워한다"고 자랑했다.

종신씨는 사회 활동과의 균형도 잘 맞추고 있다. 주말에는 사회인 야구에 참여하는 등 여러 모임에 나가고 학원에서 일도 한다. 아이가 더 크면 자신의 꿈을 보여주겠다는 선언도 해 이미 놓은 상태다.

살림하면서 잃은 거보다 얻은 게 더 많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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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신씨가 전업주부로 지낸 지도 벌써 반년. 그간 민애네 가족이 되찾은 건 23개월 된 딸 민애의 '미소'였다. 아토피가 굉장히 심했었는데 어린이 집에 보내지 않고 아버지가 맡아 돌보면서 많이 줄어 들었다. 또 민애가 아빠를 믿고 따르게 된 것도 변화된 점이다. 종신씨는 "하루 종일 아빠와 같이 있으니 민애가 정서적으로 안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인터뷰하는 데 방해된다며 잠시 아빠에게 가지 못하게 해도, 어느샌가 아빠 품에 안기는 민애는 물총을 쏘아대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광선씨는 "아빠가 애를 직접 챙기니 버릇도 좋아졌다"며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함께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에서 큰 부담을 준 거 같아 미안하다"고 고백하기도.

그러나 남편 종신씨는 얻은 게 더 많다고 말한다.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전에 하던 학원강사 일은 아무런 성취감이 없었다. 단지 돈 버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인간적인 교류를 중요시하는 종신씨에게 지식의 교류만 있는 학원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상사와 부딪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만 두고 나니 이제껏 뒤 켠에 두었던 꿈을 꺼내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꿈이 있는데 지금은 이 꿈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나를 찾아가는 것 같다. 집안일과 파트타임 학원 수업까지 하면 몸은 더 힘들지만 마음이 편하니깐 훨씬 행복하다."

그러면서 종신씨는 "결정을 흔쾌히 받아준 아내에게 너무 고맙고 내 이름으로 된 소설책을 낼 때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랬다. 이 부부는 늘 서로에게 고맙고 미안해했다. 남편이 살림을 맡으면서 겪었을 부부간의 갈등 내역을 파헤쳐보려는 못된 시도는 모두 헛수고였다. 종신씨가 살림을 맡으면서 가족의 수입은 줄었고, 아파트 대출금도 아직 다 갚지 못했다. 대신 웃음이 늘었고, 각자의 삶에 더 충실해졌다. 가족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살림을 누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족이 조화를 이룬다면 누가 살림하든 상관 없지 않나."

종신씨의 말을 뒤로 하고 그가 다시 바빠지는 저녁 식사 시간 전, 서둘러 집을 나왔다.

덧붙이는 글 | 최재혁 기자는 오마이뉴스 10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홈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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