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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 무서워서 애 못낳겠다'는 소리가 엄살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에 1년 보내는 돈이 국립대 등록금의 4배 수준이라지요? 정부에서는 사교육을 잡는다고 '학파라치'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교육비는 점점 부모의 재력에 비례해 극과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5회에 걸쳐 '사교육? 死교육!'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사교육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 풍경, 사교육비 극과 극 현장, 부모들이 체감하는 사교육비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성동구 마장동의 방과 후 공부방에서 초등학생들이 과학 수업을 받고 있다. 이 곳의 학생들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층 등 저소득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동구 마장동의 방과 후 공부방에서 초등학생들이 과학 수업을 받고 있다. 이 곳의 학생들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층 등 저소득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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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남 지역 일부 유치원의 교육비가 1800만 원이 넘는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20일 발표된 한국은행의 국민소득 통계를 보면, 교육비 지출의 양극화 현상도 뚜렷해 보인다. 올해 1분기 소득 상위 20%의 교육비 지출은 월평균 55만7455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53만9246원보다 늘었다. 그러나 소득 하위 20%의 교육비 지출은 11만7459원에서 10만9810원으로 줄었다.

사교육비의 가파른 증가세 역시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전체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은 18조7230억으로 2007년 대비 7% 상승했다. 이명박 정부 1년 6개월여 동안 강남지역 입시학원만 559개에서 1218개로 2배 늘었다니, 사교육비가 늘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할 노릇이다.

고소득층의 사교육비야 각종 학원과 고액 과외에 든다지만, 저소득층의 사교육비 평균 10만9810원은 무엇을 근거로 산출된 액수일까.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김성천 정책대안연구소 부소장에 따르면, 저소득층 가정의 사교육은 대부분 학교의 방과후 교실이나 지역 공부방 그리고 교육바우처를 이용해 학습지를 이용하는 경우라고 한다.

저소득층의 사교육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 21일 오후 4시, 성동구 마장동 주민센터가 운영하는 방과후 공부방을 찾아갔다. 이 공부방은 이 지역 저소득층 대상자 136명 중 40%가 이용하고 있으며 지난 2006년 12월 문을 열었다.

저소득층의 사교육 현장을 가다

현재 성동구에는 17개의 방과후 공부방이 있는데, 이곳에서 총 461명의 아이들이 지도를 받고 있다. 이들 공부방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저소득계층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지자체의 예산과 주민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부방 담당자 이정희 주임은 "성동구 특화사업인 공부방 개소 이래 서대문구, 마포구 등이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마장동 방과후 공부방 수업은 주말을 제외한 평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이뤄진다. 요즘 같은 방학에는 오전에 원어민 영어 수업, 난타교실 등 특별활동 수업이 추가된다.

공부방에 도착한 시간은 이른 시간대여서 그런지 두세 명의 아이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가로이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하는 모습이다. 오후 5시 반쯤 되니 아이들이 속속 공부방에 도착했다. 다들 낯선 나의 등장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하긴 수첩에 카메라까지 들고 있었으니 애들 눈에는 수상쩍어 보일 수밖에.

대학생 자원봉사자 관리를 담당하는 임정순 선생은 "아이들이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곳을 마음 편히 지내는 자신들의 공간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초등학생 아이들 대여섯 명 정도가 모이자 내 존재는 깃털 만큼 가벼워지고 교실은 금세 왁자지껄해졌다.   

"곱하기도 못했던 아이가 나눗셈 할 땐..."

방과 후 공부방에서 대학생 선생님에게 수학 수업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 이곳의 대학생 선생님들은 모두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채워져 있다.
 방과 후 공부방에서 대학생 선생님에게 수학 수업을 받고 있는 초등학생들. 이곳의 대학생 선생님들은 모두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채워져 있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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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여름(가명)이가 공부방에 들어왔다. 여름이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여고생이다. 이정희 주임은 "2006년도 공부방이 개소할 때부터 함께 했던 아이인데 학교에서 학생회장도 하며 공부를 잘 하는 아이"라고 소개했다.

오후 6시쯤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은 3층과 4층에 나뉘어서 진행됐다. 3층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의 국어 수업과 중학교 3학년의 영어 수업이, 4층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의 과학 수업과 4학년의 수학 수업이 진행됐다. 모두 30명 정도였다.

난 4학년 수학 수업에 일일 보조교사로 참여했다. 네 명뿐이었지만 장난기 넘치는 4학년 아이들인지라 제 자리에 앉히는 것이 쉽지 않다. 공부방 자원봉사자 최치원(28)씨는 익숙한지 담담하게 대처한다.

최씨는 한양대학교 산업공학과 대학원에 재학 중인데, 지난 2월부터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이곳 대부분의 교사들은 한양대학교 자원봉사자들이다. 최씨에게 공부방 선생님으로서의 소회를 물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다루기 힘들어 후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곱하기도 못했던 진혁(가명)이가 나눗셈까지 하게 됐을 때 굉장한 보람을 느꼈다. 저소득계층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스스럼 없이 지내다 보면 사실 일반 가정 아이들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방학에 할 것도 많은데, 학원엘 왜 가요?"

공부방 선생님이 아이의 과학실험보고서를 봐주고 있다. 마장동 방과후 공부방에서는 과학실험, 난타교실 등 다양한 체험 학습이 이루어진다.
 공부방 선생님이 아이의 과학실험보고서를 봐주고 있다. 마장동 방과후 공부방에서는 과학실험, 난타교실 등 다양한 체험 학습이 이루어진다.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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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 진혁이는 한눈에도 어수선한 아이였다. 낯선 눈초리로 상대방을 경계하던 1시간 전과 달리, 이젠 아예 내 어깨에 매달려 장난질이다. 대신 문제를 풀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한다.

"진혁이는 여기 말고 다른 학원 다니는 데 없어?"
"여기서 친구들이랑 삼척도 가고 할 것도 많은데 다른 델 왜 가요?"

방학 때는 노는 게 당연한데 학원에 안 가냐고 묻는 내가 이상하다는 듯, 되묻는 진혁이. 갑자기 할 말을 잃는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진혁이는 지난 20일 현장 체험학습으로 삼척에 다녀온 걸 자랑삼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나중에 이 주임에게 들으니 "가정 환경상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른 사교육은 받지 않는다"더라. 아차, 싶었다.

방과후 공부방은 일종의 지역공동체다. 지자체의 예산으로 시설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참여와 지역 대학, 원어민 교사의 봉사활동 등으로 질을 높인다. 뿐만 아니라, 원어민 교사가 참여하는 영어 수업에 일어, 현대문학, 미술, 수영, 태권도, 피아노 등을 가르치고 난타교실까지 연다니 강남의 고액 학원도 부럽지 않다. 1800만 원짜리 사교육도 가르쳐줄 수 없는 '정'까지 듬뿍 내어준다.

이처럼 공부방이 저소득층 아이들의 실질적 사교육을 자처하고 있지만,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는 시설을 기피하는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김아무개(18)군은 작년까지 다른 지역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대학생 선생님에게 학습지도를 받았다. 김군은 "원하는 만큼 물어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지만, 지금은 공부방에 드나들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가 자신을 알아본 뒤부터다.

저소득층 전문상담사 김수양씨는 "초등학교 6학년쯤만 되도 자신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부방에 다닌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면서 "아는 애라도 지나치면 주변을 한 바퀴 돌다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색깔을 낼 수 있게 하고,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공부방의 역할이지만, 민감하고 예민한 아이들인 만큼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부방에도 올 수 없는 계층에 대한 배려 있어야

물론 한계도 있다. 방과후 공부방이 지역 내 모든 소외 계층을 소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6세와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김아무개(39)씨의 월평균 가구 소득은 200만 원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차상위계층에 포함되지 않아 방과후 공부방을 이용할 수 없다. 차상위계층에 포함되려면 월평균 가구 소득이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인 132만6609원의 120%인 159만 원에 미치지 못해야 한다.

김씨는 방과후 공부방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다른 사교육을 선택했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아이들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어 비교적 저렴하게 교육시킬 수 있는 학습지 교육을 하고 있는 것. 둘째 아이는 독서, 첫째 아이는 논술·한자 과목의 방문 학습 지도를 받고 있다.

학습지 가격은 한 과목당 매월 3만~4만 원 정도인데, 보건복지부의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바우처)에서 2만7천 원을 지원 받는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매달 총 10만 원 정도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는 전국가구평균소득(337만 원) 이하 가정에서 2세 이상 6세 이하의 아동이 학습지 교육을 받을 때 최대 2만7천 원까지 지원하는 제도다. 그러나 김씨의 둘째는 올해 6세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대한민국 한쪽에서는 뛰는 사교육비 잡아달라고 아우성인데, 적어도 이곳에서 사교육은 먼나라 이야기 같다. 마장동 방과후 공부방 담당자 이정희 주임은 갈수록 더해지는 사교육비 양극화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학교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압박을 하는 것보다, 동기를 부여하고, 보다 많은 체험을 하게 하는 게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른다는 이 주임. 일견 일리 있는 말인 듯한데, 현실에선 이 또한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태그:#사교육, #저소득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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