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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로 가다
▲ 맥주병 바다로 가다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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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냥 궁금하기도 하고, 한번 가보고 싶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입대 일자가 이틀이 남았을 때, 마침 주말이라 부산에서 가까운 가덕도 나들이 점심을 하면서 내가 아들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어, 이눔 봐라?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군대를, 남들은 가기 싫어 어떻게 하면 면제 받을까 갖은 노력을 다한다는데…….'

속으로 다행이다 싶으면서 솔직히 대견스러웠다.

"니 군대에서 하는 훈련이 얼마나 힘든 줄 알기나 하나? 그것도 요즘처럼 뜨거운 땡볕에서 받으면 아마 까무라칠 거다."

"뭘? 남들도 다 받는 훈련이고 어차피 군대는 갔다 와야 할 거면 큰 맘 먹고 갔다 와야지."

제 누나가 걱정이 되어 한마디 하자 또 의젓하게(?) 대답한다.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어도 그래도 군대다. 옛날보다 근무환경은 좋아졌지만, 고도화된 전술로 실전과 같은 훈련은 오늘날이 오히려 강도가 더 높다. 각오 단디해라!"

저렇게 마음이 태평일까 싶어 내가 마지막으로 단단히 일러두었다.

군에 가기 전 참고하라고 군대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약간 과장된 만화로 엮은 책을 사주자 재미있다고 보더니 군대를 소꿉놀이(?)쯤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고.

입대 전 모처럼 가족이 다함께
▲ 어느날 오후 입대 전 모처럼 가족이 다함께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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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아들이 해군을 지원한 후 5월에 합격자 발표와 함께 입대일자가 정해지면서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그새 시간이 흘러 입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제대 후 2학기 복학 일자를 맞추다 보니 1학기를 마치자마자 입대를 해야 하고, 입대 직전이 학기 마지막 시험기간이라 학교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니 얼굴 본 날도 며칠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군을 가게 되니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아들이 수영을 못한다.

부산은 겨울에도 따뜻해서 눈은 물론이고 얼음도 얼지 않는데 아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스케이트 선수다. 그런 이곳도 집만 나서면 강이고 바다다. 그런데 스케이트는 타면서 수영을 못하다니. (스케이트선수(?)가 된 사연은 다음 기회가 있을 때 쓰겠습니다^^)

명색이 해군인데, 그 때부터 아내가 바빠졌다.

시험이 끝나고 남은시간은 일주일. 아내는 가까운 수영장을 찾아가 수영 코치를 만나고 왔다. 최단기 족집게(?) 수영과외를 신청하고 수영복과 물안경을 챙겨주었다.

그러나 군대를 간다고 선배를 만나네, 친구와 술 한잔하네 하면서 수영장에는 오늘 간다, 내일 간다 하는 녀석이 애간장 타는 제 엄마에게 등 떠밀려 하루를 갔다 오더니, 헤엄은커녕 물에 뜨지도 않고 귀에 물만 잔뜩 들어갔다며 투덜거렸다.

그러곤 저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러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한밤중에 출사를 나가더니 새벽에 돌아와 겨우 점심을 같이 하고는 또 어디론지 가버렸다. 그리고 입대 전날 겨우 수영장을 한 번 더 다녀오고 드디어 입소를 했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달려 부대 주변에서 점심을 하고 조금 일찍 도착한 부대는 연병장의 파아란 잔디가 인상적이었다.

여름 날씨가 무척 더웠다. 뙤약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오후 3시 입영시간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아들 휴대폰은 계속 울렸다. 아쉬운 시간이다.

30여년전 내가 군에 입대하던 날이 생각났다.

부대 연병장에서 마지막 모습
▲ 입소 부대 연병장에서 마지막 모습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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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입영시간이 가까워지자 옆의 또 다른 연병장이 차량으로 가득차고 배웅하러 온 가족들로 왁자지껄하다. 긴장된 시간이지만 마침 같은 학교 친구와, 그동안 전화로 통화만 하였지 오늘 처음 만난다는 사진동호회 회원도 같이 입대를 해 이들과 함께한 아들은 편안해 보였다. 사람들은 헤어지는 아쉬움을 기념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촬영을 한다. 나도 두어장 사진을 찍었다.

잠시 후 입영식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연병장에 줄을 맞춰선 아들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식이 끝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된다며 그늘로 들어오라 해도 바로 헤어질지도 모른다며 땡볕도 아랑곳않고 식장으로 바짝 다가가 있다.

부대장의 인사와 훈련을 맡은 교관들의 소개를 끝으로 입영식이 끝나고 가족과 마지막 만나는 시간, 아내가 아들을 붙잡고 엉엉 운다. 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당황한 아들이 오히려 제 엄마를 달래기 바빴다.

"걱정 마세요! 훈련 잘 받을게요. 그러고, 누나는 또 왜 우는데?"
"아니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엄마 때문에……."

어느새 딸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도 마음이 찡했다.

부대서 온 소포
▲ 아들의 편지 부대서 온 소포
ⓒ 정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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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아들이 입영 때 입고 간 옷이며 여벌의 내의와 가방이 소포로 왔다. 그 안에는 낯선 환경이지만 이제 막 시작된 군생활의 긴장된 느낌과 앞으로 열심히 훈련에 임하겠다며 정성들여 쓴 편지와 애써 키운 자식을 군으로 보내주어 고맙다며 훌륭한 군인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 할테니 안심하라는 부대장의 서신이 동봉되어 있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짠한 마음은 그 옛날 나도 군에서 집으로 옷을 보내는 봤지만 이렇게 자식의 소포를 받고 보니 그때의 부모님의 마음도 헤아려지는 듯하다. 잘 지낸다니 다행이다.

이제는 군도 좋아져서 입영 후 다시 한 번 더 실시한 신체검사에 합격함과 소대배치를 받았다는 소식을 실시간 휴대폰 문자로 보내오고, 장병들의 훈련모습을 인터넷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여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오늘은 훈련 2주차 전투수영에 대한 훈련 모습이 동영상으로 올랐다.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구명조끼를 입은 장병들이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수영을 잘 하는데 그 중 수영이 서툴러서 잔뜩 긴장하거나 엉성한 헤엄동작을 하는 몇몇 장병들을 모니터로 지켜보던 아내가 또 애가 타서 한마디 한다.

"일주일, 아니 며칠만이라도 수영을 더 배우고 갔더라면……."

그래서 내가 말했다. "못하면 군에서 가르치겠지."


태그:#군대, #해군, #수영, #편지,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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