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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하마을에 설치되어 있었던 노 전 대통령 분향소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김해 봉하마을에 설치되어 있었던 노 전 대통령 분향소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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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노무현님이 / 몸 던진 바위 // 김구를 죽이고 / 여운형을 죽이고 / 조봉암을 죽인 그들이 /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을 죽였다 / 아니 / 우리 모두가 죽였다 // 부엉이바위라 불리는 그 바위 /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있다" - 24쪽, 김규동 '바위'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그날, 한국문단은 경악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고향 봉하마을로 돌아가 농민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전직 대통령께서 실족사도 아닌 자살을 하다니. 한동안 문인들은 말문을 잃었다. 몇몇 문인은 소리 내어 엉엉 울었고, 몇몇 문인은 말없이 눈물만 훔쳤고, 몇몇 문인은 2MB와 검찰에게 악다구니 쓰며 술을 마셨다.

고 노 전 대통령 7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몇몇 문인들은 봉하마을을 다녀오고, 몇몇 문인들은 서울에 설치된 분향소를 찾아다니며 그렇게 넋 놓고 살았다. 그 사이 몇몇 문화예술인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와 추모글들이 여기저기 발표되기 시작했다. 고 노 전 대통령 영구차가 봉하마을로 떠나고 난 그날,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추모시집을 엮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한국문학평화포럼'(명예회장 고은, 회장 김영현)을 중심으로 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 발간위원회'가 꾸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행사위원회'도 꾸려졌다. '한국문학평화포럼' 이승철 사무총장이 추모시집 발간에 따른 책임을 맡았고, 추모시집을 낼 출판사도 정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 추모예술제 행사위원회는 '아람회' 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렀던 박해전(인터넷신문 <참말로> 대표) 시인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어 시인들에게 추모시 원고청탁과 함께 성금모금이 시작되었고, 추모예술제를 위한 행사준비도 서둘러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은 문화예술인들의 자발적인 참여였다.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시집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는 그렇게 나왔다. 한 달여를 남겨두고 원고청탁에 이어 발간까지, 출판 사상 초특급으로 나온 시집이 이 추모시집이다. 사실, 262명이 보낸 262편의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몇몇 발간위원들은 며칠 동안 밤샘을 해야 했다. 이는 추모예술제를 맡은 준비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인 262명이 가슴으로 쓴다, '고마워요 노무현'

시인 262명이 쓴 노 전 대통령 추모시집
▲ 노 전 대통령 추모시집 시인 262명이 쓴 노 전 대통령 추모시집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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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 직전에 절명시를 연상케 하는 짧은 유서를 남겼다. 죽음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가족들에게 당부하는 말로 쓴, 열네 줄의 이 유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그 어떤 시보다도 더 울림이 컸으며, 그만의 고결한 정신과 삶에의 순결한 진정성을 저절로 느끼게 해주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을 펴내면서' 몇 토막

지난 10일(금) 49재를 마친 뒤 봉화산 기슭에 '작은 비석'으로 서 있는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집이 나왔다. 한국문단에서 내노라 하는 시인 262명이 쓴 추모시집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도서출판 화남)가 그것. 이 시집 제목은 안도현 시인이 쓴 추모시 제목에서 땄다.    

이번 추모시집은 이 땅 시인 262명의 가슴 저 밑바닥에서 절로 우러나온 '인간 노무현, 바보 노무현'에 대한 속내 깊은 사랑이다. 그 사랑을 지켜내지 못한 데 따른 뼈저린 반성과 솔직한 고해성사이자 한국 민주주의 회생과 노무현 정신의 부활, 참다운 인간해방을 간절히 바라는 시인들 자기다짐이기도 하다.

262명이 쓴 신작 추모시 262편이 노란색과 까만색 만장처럼 나부끼고 있는 이 추모시집은 한 인간에 대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시 모음집으로서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사는 물론 세계문학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헌정시집이다. 따라서 머지않아 국내와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것으로 여겨진다.

이 추모시집 편집책임자 이승철 시인은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더구나 권력과 무관한 일국의 시인들이 전직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 이토록 많은 추모시를 자발적으로 썼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바보 노무현, 인간 노무현'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같은 바보들이 돌아오고 있다

"당신 떠난 그 자리에 / 사람들이 모여 듭니다 / 당신 떠난 그 자리에 / 사람들이 서성이며 울고 있습니다 / 당신 떠난 빈 자리에 / 사람들이 숲이 되어 서 있습니다"-17쪽, 정희성 '봉화산' 모두 

제1부 '노무현 살아오소서'(김진경 추모시 제목)에는 정희성, 문인수, 강은교, 유안진, 김규동, 김진경, 문병란, 이성부, 박남준, 이시영, 이원규, 이중기, 나해철, 고희림, 도종환, 김정란, 손택수, 안도현, 이정록, 박노해, 조기조, 이청화, 이진명, 김경주, 강민, 조용미, 박후기, 백무산, 김수우, 함민복, 공광규, 홍일선, 정수자, 나종영, 배창환, 이경림,양문규, 유용주, 이재무, 박영희, 노혜경, 김강진, 김해자, 정용국, 홍일표의 시가 '작은 비석'처럼 서 있다.

이 추모시집에 실려 있는 시인들은 우리 시단을 서울과 지역에서 이끌고 나가는 중심에 서 있는 분들이다. 또한 추모시집이라고 해서 이들 시인들이 하나 같이 축시나 조시처럼 엇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인은 슬픔 속의 승리를, 어떤 시인은 2MB를 향한 분노를, 어떤 시인은 새로운 부활을, 저마다 개성적인 목소리에 담고 있다.

'그때 저는 이끼 낀 쇼핑백을 들고 있었습니다'(강은교)라거나 '대통령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상식'(김진경), '5월의 묘비명은 자유와 사랑이다'(문병란), '아깝고 분하고 비통하다'(이성부), '이제 나는 봄날이 싫어졌습니다'(박남준), '단 하나의 노무현이 떠나고 / 노무현 같은 바보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이원규) 등이 그러하다. 

오른쪽이 사자 바위, 왼쪽이 부엉이바위
▲ 봉하마을 오른쪽이 사자 바위, 왼쪽이 부엉이바위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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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역행하는 이 시대 바로 잡는 촛불 같은 시

"노무현 대통령 고향마을 / 봉화산 부엉이바위야 / 너는 알고 있느냐 // 푸른 오월 신새벽 어찌하여 역사 속으로 / 홀연히 온몸 던져야 했던가 // 그것은 분명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 아득한 과거이고 태양이 찬란한 미래일 수 없어라"-113쪽, 박해전 '봉화산 부엉이 바위야 너는 알고 있느냐' 몇 토막 

제2부 '밀짚모자 대통령'(송진호 추모시 제목)에는 박해전, 고미경, 김영현, 강영환, 김준태, 이대흠, 성기완, 서정윤, 이홍섭, 정원도, 황명걸, 홍희표, 강상기, 손태연, 리명한, 임종철,김윤현, 임효림, 박관서, 백남천, 김영재, 김윤환, 송진호, 김태수, 이지담, 정대호, 이기인,서정홍, 장정임, 고증식, 김여옥, 우대식, 유강희, 고규태, 최현희, 표성배, 김영환, 정일관, 문창룡, 박상률, 전무용, 이용수, 김인호, 김진수, 김선자, 신용기, 김이하, 문창길의 시가 봉하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순서는 추모시가 들어온 순서이다. 시간이 많이 있었더라면 가나다순이나 등단 혹은 나이순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49재가 너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시집발간위에 따르면 이 추모시집 또한 인쇄소와 제본소에서 며칠 동안 발을 동동 구른 끝에 49재 앞날 밤에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나온 시집이니만큼 이 기사에서 여기에 실린 시인들 이름을 한 명이라도 뺀다는 것은 큰 실례가 될 것 같아 모두 실었다. 시인 한 사람 한 사람 시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바치는 조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나태했던 자기반성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이 시대를 바로 잡는 또 하나의 촛불이기 때문이다.

49재 때까지 노 전 대통령 유골을 모셨던 정토원
▲ 정토원 49재 때까지 노 전 대통령 유골을 모셨던 정토원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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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돋았다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린 님 / 활짝 웃으며 내 안으로 들어왔어요. / 그 자리에 / 아주 작은 비석 하나 돋았답니다. / 나는 거기에 속삭여요. / 님은 씩씩하게 살았고 / 그리고 멋지게 떠나셨지요. / 나는 님 덕분에 아주 행복하고 / 님에게 무척 미안하지만 / 더는 님 때문에 울지 않을 거예요."-270쪽, 유시민 '님을 보내며' 몇 토막

제3부 '그런 사람 한번 더 만날 수 있다면'(이성룡 추모시 제목)에는 박두규, 김희수, 김선태, 김선규, 맹문재, 이소리, 김동환, 김용락, 정민나, 이은봉, 이현채, 오인태, 김재균, 신현미, 이성룡, 차정미, 권혁소, 강기희, 이다빈, 윤영교, 정연수, 안상학, 이학영, 박설희, 신동원, 박몽구, 신보성, 용환신, 김창규, 유시민, 이승철, 박찬일, 박구경, 김수열, 김만수, 김주대, 박선욱, 이세방, 배재경, 최동현, 윤석홍, 박정수, 이정숙, 유명선, 박정모, 강경호, 백신종의 시가 봉화산 부엉이바위를 바라보고 있다.

사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시집발간위원회에서는 시인의 시작노트까지 싣고자 했다. 근데, 예상(150여명) 밖으로 너무 많은 추모시가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때 시집발간위원회에서도 "한 인간에 대한, 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시가 이렇게 많이 밀려들 줄 몰랐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단다. 

글쓴이도 제3부에 추모시를 한 편 실었다. 그때 글쓴이는 추모시를 쓰는 내내, 몇 해 전 봉화산 부엉이바위로 올라가는 오솔길에서 보았던 옆으로 누워 있는 마애불이 자꾸만 어른거렸었다. 마애불처럼 옆으로 누워 있는 세상, 그 세상을 똑바로 세우려 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시에, 가슴에 묻었다.

나는 노란 등불이 밝히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은 벼랑 끝에 선 천사였소. /상고밖에 못 나온 처지에도 / 당당히 법관이 되었을 때 / 법대를 나와 법관이 된 사람들은 당신을 애써 무시했지요. / 당신이 군부독재에 끌려간 사람들을 변호할 때도 / 한쪽에선 깔아뭉갰지요." - 319쪽, 김기홍 '벼랑 끝의 천사' 몇 토막

제4부 '한 편의 영상을 두고 떠난 님'(박희호 추모시 제목)에는 신 진, 박희호, 정공량, 김기홍, 권석창, 최기종, 조용숙, 지요하, 함순례, 안이희옥, 김규성, 임수생, 김창균, 최종천, 방남수, 정행균, 안명옥, 김윤호, 박정애, 문대남, 박경희, 강희근, 김시천, 이상익, 최창균, 채지원, 김윤곤, 이종수, 김경훈, 서정원, 김영곤, 권화빈, 이민숙, 안학수, 김희정, 박예분, 임강윤, 나문석, 손상렬, 임경자, 성군경, 정형택, 양강곡, 서태수, 정푸른, 조영옥, 김지희, 김성대 의 시가 노란 리본을 매달고 있다.

제5부 '바보 노무현꽃이여'(채상근 추모시 제목)에는 호인수, 양정자, 박제영, 박용수, 조정인, 정낙추, 정윤천, 정세훈, 이윤하, 서애숙, 차옥혜, 함진원, 김영춘, 임상모, 이응인, 이인범, 윤미나, 공정배, 김영곤, 이행자, 최영록, 성희직, 유진아, 박홍점, 김흥수, 조재도, 이기순, 장순향, 류명선, 오종문, 박남희, 오영호, 신영주, 정안면, 채상근, 정 토, 윤석주, 이순주, 최자웅의 시가 검은 리본을 나부끼고 있다.

제6부 '사람 사는 세상 꽃불 밝혔네'(김형효 추모시 제목)에는 권덕하, 김응교, 권선희, 김순남, 하재청, 정춘근, 강병철, 최승익, 손한옥, 권순자, 송은영, 박민규, 권혁재, 김영언, 최기순, 정선호, 이강산, 정종연, 이 선, 이규석, 이남순, 박우담, 신병구, 동길산, 서수찬, 송 진, 장헌권, 김광선, 이설영, 임성용, 이선미, 임희구, 박노정, 김형효, 김귀녀의 시가 눈물짓고 있다.

문학평론가 임우기는 "노무현 선생의 죽음은, 자신에겐 더없이 엄격했던 순수하고 양심적인 국가 지도자가 추한 권력의 음모 속에서 위기에 처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구원하고, 마침내는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려는 정신적 고뇌 끝에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이 시집에는 그분이 다시 살아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과 기도를 통해 시인 저마다의 초월적 영성이 익어가는, 전례 없는 시적 풍경들이 담겨 있다"고 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 발간위원회는 "차마 뉘라서 이 죽음 앞에서 떳떳할 수 있으랴"라며 "저마다의 얼굴 위로 흘러나오던 울음과 통곡의 말들, 수천 수만 개의 종이학들, 그리고 거리마다 만장되어 펄럭이던 애도의 글들은 노무현이라는 한 인간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 바로 그것이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제3부에 실린 맹문재 시인의 시 '리본을 지키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슴에 묻는다. 그리고 묘비명에 이렇게 쓴다. "노무현 대통령!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대를 영원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섬기겠습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노무현이 되겠습니다"라고.
  
유연복 판화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
▲ 노무현 전 대통령 유연복 판화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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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정색 리본을
초등학교 때 받은 개근상장을 보관하듯
책상 서랍에 넣고 있다
국민장 리본을 보관하기는 처음이지만
약속한 대로 지키려고 한다

나는 2099년 5월 26일 오후 1시쯤
안양역에 설치된 빈소에서
리본을 받아
지금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필요할 때는 기꺼이 펼치기 위해
품고 있는 것이다

리본을 요새처럼 지키고 있는 한
나는 책들을 경전처럼 읽을 것이다
밥을 공양미로 먹을 것이고
노란 등불이 밝히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 맹문재 '리본을 지키다' 모두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추모시집

정희성 외 261인 지음, 화남출판사(2009)


태그:#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집, #화남, #262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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