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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많은 분들이 아파트 생활하시고, 사는 곳도 도시라서 일출 구경하기 쉽지 않으실 겝니다. 높은 건물들이 줄줄이 솟아 있으니, 햇님이 아침 기지개라도 마음 놓고 키실 수 있을까요?

그래서 바닷가로 여행 가면, 해 뜨는 거 보려고 새벽잠 설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기껏 일찍 일어나 보았더니, "구름이 잔뜩 끼어 해는 안뜨더라", 이런 비극도 있구. 또 "아침 잠이 많아서 1분만 더 1분만 더 그러다가 타이밍 놓쳤다" 그러는 늦잠꾸러기도 있구.

그런 분들을 위하여 내가 멋진 일출 광경을 모셔 왔나이다. 호주 남쪽 해변에 위치한 캠핑장에서 찍은 일출이지요, 그런데 그 때 일출 구경하는 사람은 나 뿐이었어요. 바닷가에서 캠핑하면서 늦잠 자는 사람들을 나는 통 이해를 못하겠습디다. 뭣땀시 늦잠을 자는기여? 요로코롬 멋진 광경이 있는데 말씨! 

 


요건 해뜨기 바로 직전의 풍경이라오. 우땋습니까? 햇님 맞이하느라 사위가 쥐죽은듯 고요한 것이 경건함도 느껴집디다. 생명의 근원인 태양, 그 태양을 맞이하려면, 이 정도 분위기는 되어야 하지 않남유?  


"거룩한 붉은 기운이 하늘을 가르더니, 그 붉은 구름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리 같은 기이한 기운이 솟아올라, 점차 손바닥 너비의 그믐밤 숯불빛 차럼 되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琥珀) 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하기는 호박보다 더 곱더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문구 같지요? 의유당 김씨 ('남씨' 라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가 쓴 관북 유람일기 중 해 뜨는 광경을 묘사한 글이우. 의유당은 영조 때의 부인이라고 하지 않더이까. 고전 읽기 시간에 깜빡 졸은 사람은 까먹었겠지만, '동명일기' (東溟日記) 란 제목으로 교과서에 실려 있었수. 아니 모르재, 요새는 그런 거 안 배우는지도.

그 당시 우리 반 인원이 60명이 넘었었지요. 빼곡히 들어앉은 교실 안에서 무슨 그리 일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겠소? 까만 것은 글자요, 하얀 것은 종이일 뿐이었고, 국어 선생님의 무서운 눈처리가 혹시 내게 꽂힐까, 두려움에 떠는 것이 그 분위기이었구만요. 이런 일출 사진이라도 보여주면서, 수업을 했으면 얼매나 흥이 났을꼬.
 

햇님이 드디어 고개를 삐죽 내밀기 시작했구만요. 용트림을 하면서 기지개를 켭디다. 동명일기를 좀 더 볼까요? 이번에는 고어체로 보는 것이 어떨른지요.

"...처엄 낫던 붉은 긔운이 백지 반 장 너비만치 반드시 비최며 밤같던 긔운이 해 되야 차차 커가며 큰 쟁반만하여 傀읏붉읏 번듯번듯뛰놀며 적색이 왼 바다희 끼치며 몬져 붉은 기운이 차차 가새며 해 흔들며 뛰놀기 더욱 자로하며 항 같고 독 같은 것이 좌우로뛰놀며 번득여 냥목이 어즐하며 붉은 긔운이 명낭하야 첫 홍색을 헤앗고 텬듕의 쟁반같은 것이 수레박회 같아야 물속으로셔 치미러밧치드시 올라 붙으며 항 독같은 기운이 스러디고 ..."



고어체에서 다시 현대체로 바꾸어, 동명일기를 마저 읽어 봅세다.

"처음 붉게 겉을 비추던 것은 모여 소의 혀처럼 드리워 물 속에 풍덩 빠지는 듯싶더라. 일색(日色)이조요(照耀)하며 물결에 붉은 기운이 차차 없어지며, 일광(日光)이 청랑(晴朗)하니,만고천하(萬古天下)에 이런 장관은 견줄 데 없을듯 하더라."
 


의유당은 해뜨는 것을 꼭 봐야 성이 차는 그런 분이셨나 보우다. 여러차례 남편을 졸라 여행에 나섰으나 구름 때문에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고 하지요. 그래서 이듬해 다시 일출 구경에 나섰고, 그래서 이 글을 지었다고 합디다. 자연의 경이에 무척 애착이 많은 분이었던 모양입니다. 나도 그러하니, 과연 내 조상님 아니시겠수,

해가 거의 다 떠서 사위가 좀 밝아졌다오. 그 때, 내 앞으로 어느 부부가 개를 데리고 산책 나왔더이다.


혹시, 의유당 김씨 부인과 그 남편되시는 분이 환생하신 것은 아닐까? 일출에 감격하는 자손을 어여삐 여기시어, 이 머나먼 호주 까정 오셨단 말인가?  아이구. 그냥 농이우. 일출 장관 보니 마음이 푸근해져서 그냥 농담 한 번 해 보았어라.

아무튼, 일출 구경들 잘 하셨는지요? 그렇다면, 다들, 일출 구경 경험담 한마디씩 하고 가이소. 

덧붙이는 글 | 호주 남쪽 해변에서 찍은 사진들이우다.


태그:#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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