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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제 낮,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가 잠깐 집에 들러 낮밥을 먹은 다음 다시 도서관으로 가려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동네 골목마실을 살짝 했습니다. 따사로운 여름볕이 내리쬐는데, 그예 일터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살짝이나마 여름볕을 온몸으로 받아먹고 싶었습니다.

 

 한참 골목마실을 한 다음 너무 미적거리지 않았나 싶어 부리나케 자전거 페달을 밟습니다. 그러다가 금곡동 안쪽 동네 텃밭에 보라빛으로 꽃송이를 올린 도라지를 봅니다. '어? 도라지네?' 페달질을 멈추고 0.1초쯤 생각을 하다가 브레이크를 살살 잡으며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자전거를 세우고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도라지 맞습니다. "도라지가 피었구나! 그러면 그냥 갈 수 없지!" 사뿐걸음으로 텃밭가에 섭니다. 사진기를 들어 한 장 두 장 찍습니다. 텃밭 옆 그늘자리에서 쉬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던 아주머니들 가운데 한 분이 일어서서 다가오더니, "도라지꽃 예뻐서 찍을려구요?" "네, 예뻐서요."

 

 아주머니는 그늘자리로 돌아가면서 옆에 앉은 아주머니들한테 말합니다. "도라지꽃이 예뻐서 사진으로 찍는댜." "그려."

 

 이튿날.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가 낮밥을 먹으러 집에 다녀오는 길에 율목동 골목집 앞마당 쪽으로 지나갑니다. 일터와 집 사이를 오갈 때면 늘 다 다른 길로 오가곤 하는데, 오늘은 율목동과 경동 사이 골목으로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곳 율목동 꽃잔치집 한켠에서 자라는 도라지를 봅니다. 도라지 옆에는 옥수수도 자라고 있고, 이 꽃잔치집에는 고추며 가지며 오이며 토마토며 수수꽃다리며 장미며 호박이며 … 수십 가지 꽃과 푸성귀가 자라고 있습니다.

 

 여름볕이 뜨거워 흐르는 땀을 훔치며 사진기를 쥐고 도라지꽃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동네에서 헌 종이 모으는 할매가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꽃 예쁘죠? 거, 도라지꽃이라는 거예요." 하고 한 마디.

 

 

 응? 내가 도라지꽃도 모르는 줄 아셨나? 풋. 어쩌면 그럴 만도 하지. 도시 젊은이들 가운데 도라지꽃을 제대로 본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도라지꽃을 구경하겠다면서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으며, 도라지꽃을 안다 할지라도 '그래 참 예쁘네' 하면서 방긋 웃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이 동네 저 동네에 조용히 자라면서 보라빛 맑은 꽃망을 틔운 도라지꽃을 사진으로 담는 동안, 동네에 있는 어린이와 젊은이 가운데 도라지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즐기는 사람은 하나도 못 보았습니다.

 

 꽃 사진을 담은 다음 살그머니 꽃잎을 어루만지며, '너를 좀 캐다가 뿌리를 먹으면 좋겠지만, 내가 심은 도라지도 아니니 이렇게 눈으로만 즐겁게 너를 바라보다가 가는구나.' 하는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섭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골목마실, #골목여행, #인천골목길, #골목길, #도라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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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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