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와 <조선>이 난데없이 진보언론과 방송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전 보도와 서거 이후 보도가 너무 다르다는 것 때문이다. <동아>가 시작하고 <조선>이 가세한 이번 공격은 <한겨레> <경향>은 물론 공중파 3사 방송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아>는 6월 3일자 기사에서, 노무현의 비리를 혹독하게 비판했던 <한겨레>와 <경향>이 서거 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정치적 타살" 때문에 빚어졌다고 씀으로써 자가당착적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동아>의 지적을 틀렸다고 할 수만은 없다. <한겨레>는 4월 9일자 사설에서 '검찰에 앞서 국민에게 고해성사하라'와 5월 24일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함'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고, <경향>의 사설은 4월 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백, 국민은 답답하다"와 5월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며'에서 다른 이야기를 했다.
<조선>은 주로 방송사를 공격했다. <조선>은 "방송사들은 서거 전날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비리 의혹에 대해 엄정한 수사와 해명을 요구했다가 서거 이후에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고 노 전 대통령을 원칙과 도덕을 지킨 깨끗한 정치인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고 비판했는데 이것 역시 사실에 근거한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조선과 동아 등이 진보언론을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들은 광우병 문제를 제기한 MBC <피디수첩>이나 조중동 광고불매운동과 관련한 <한겨레>의 기사, 그리고 미디어법 관련 기사 등을 문제 삼아 진보언론을 노골적으로 공격했었다.
노무현 서거 이전과 이후 진보언론 보도 달라져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번 공격은 이전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언론 책임론을 제기한다면 진보언론들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동아> <조선>의 말대로 진보언론들의 서거 이후 보도 태도가 서거 이전과는 180도 달라진 것도 사실이다. <오마이뉴스>의 경우도 <한겨레> <경향>보다 덜 했을지 몰라도 검찰이 흘리는 피의 사실을 받아쓰기에 바빴다. 서거 이후에야 '노무현은 정치 보복에 의해 죽었다'는 요지의 기사를 대거 메인에 올렸다.
어쩌면 조중동의 비판은 노 전 대통령에게 그다지 큰 상처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지난 5년 동안 그들의 비판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의 비판은 그의 폐부를 날카롭게 찔렀으리라고 본다. 이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르는 언론 책임은 오히려 진보언론이 더 무겁게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 세상에 없는데 그를 부각시키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서거 후 진보언론들의 노무현 관련 기사가 공허해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의 인터뷰는 검찰조사가 정치보복 차원에서 이루어졌다는 최초의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언론은 필자의 발언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 후 몇몇 정치인들이 정치보복 주장을 이어 나갔기에 필자의 수고가 무위로 끝나지는 않았지만, 이 일로 필자는 우리 사회에 진보언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진보언론에게는 당시 최초로 제기된 '정치보복' 주장이 기사화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었는지, 수구언론의 왜곡보도를 잡아줄 의무가 진보언론에는 없다고 생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이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진보언론은 진보의 시각으로 무장한 정론지로 다시 태어나기 바란다."
- 조기숙 참여정부 홍보수석, 5월 30일자 <오마이뉴스>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이 땅에 진보언론이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보의 시각으로 무장한 정론지로 다시 태어나기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언론들은 겉으로는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피의자의 인권보호보다는 대세에 추종하는 경향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멀리 신정아 사건에서 가까이는 연쇄살인범 강아무개, 장자연 사건의 '유력신문사' 사장, 노 전 대통령 사건에 이르기까지. 언제는 피의자의 신상을 다 까발리고 언제는 이름까지도 보호해 주는 등 피의자에 대한 보도 태도에 기준이나 일관성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이런 점에서 진보언론들은 이번 <동아>와 <조선>의 공격을 뼈아프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동아> <조선>, 노무현 보도 공격할 자격 없다
사실 서거 이전의 조선과 동아는 검찰이 발표하는 노 전 대통령 관련 내용을 경쟁적으로 주요하게 보도했다. 노 전 대통령 부부가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게 선물로 1억 원 시계를 받았다는 내용이나 노 전 대통령이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검찰의 발표를 거의 중계방송 하듯이 주요하게 보도했다. 특히 조선은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조사 이후 딸인 노정연씨 주택 구입 자금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서거 이후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온정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보도 태도가 서거를 전후하며 바뀐 것은 진보언론만이 아니라 조선과 동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조선과 동아는 진보언론을 공격하고 있으니, '오십 보 백 보'다.
영국 속담에서 이르기를 "누가 말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제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자격이 없는 자가 하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의 속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보도에 관한 한 조중동은 그 내용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동아>와 <조선>은 왜 생뚱맞게 진보언론을 걸고넘어지는 것일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언론 책임론이 의외로 큰 반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들은 오래 전부터 노 전 대통령 관련 흠집내기 보도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왔다. 언론 책임론이 확산되자 진보언론도 노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것을 알림으로써 자기들에게 닥칠 책임론을 일정부분 분산·희석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서거 정국을 모면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서거 후 노무현에 대해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을 튼 진보언론을 대신 공격하기로 했던 것은 아닌지. 요컨대 진보언론에 대한 공격은 노무현에 대한 간접공격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동아>와 <조선>의 진보언론 공격은 더할 수 없이 저열한 공세에 불과하다.
보수언론 뛰어넘는 의제와 대안 만들어야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건재하는 한 한국의 진보언론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진보언론에 필요한 것은 보수언론이 만들어내는 의제를 뛰어넘어 새로운 의제를 만들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검찰이 확실하지도 않은 피의사실을 혹시 흘리지 않았는지 되짚어봤었야 했다. 최소한 양식있는 언론이라면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이 이루어진 직후에라도 검찰이 범죄 구성의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는지 검증했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조사를 받기 전 "도덕적 책임은 지겠으나 법적 책임까지는 질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적어도 균향잡힌 언론이라면 검찰이 브리핑을 통해 읽어내리는 이야기만 받아쓰기 보다는 왜 전직 대통령이 이런 주장을 했는지 입체적으로 취재해 보도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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