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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앗 깜짝이야!"

집에 놀러온 친구가 계단을 내려오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놀라 발아래를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문 사이로 살며시 강아지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살짝 보아도 비싸 보여 당연히 주인 있는 개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개가 우리를 따라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들고 있는 비첸향(중국에 있는 유명한 육포 체인점) 육포 때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차를 타러 가는 곳까지갈 때까지 개가 계속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굉장히 귀엽고 순하게 생겼지만 워낙 몸집이 큰지라 개가 뒤따라올수록 우리들의 발걸음은 빨라졌고, 급기야는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차에 재빨리 올라탔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우습게도 큰 개가 뒤쫓아 오는 것에 겁에 질려 뛰어 놓고도, 어쩐지 개가 눈에 밟혀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개, 참 착하게 생겼다. 그지? 우리 때문에 운명이 바뀌거나 한 것은 아니겠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에 들어오려면 반드시 열쇠나 비밀 번호를 이용해 들어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출입하지 않는 이상 개는 혼자서 밖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우리 때문에 밖으로 나온데다가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게 생겼으니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한 것입니다.

"설마."

그렇게 대답을 해 놓고도 자꾸 마음 속 한 편에 무언가 무거운 것이 가라앉은 듯 했습니다.

"저기, 그래도 집에서 키우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잘 키울 수 있겠어? 밥 줘야지, 청소해야지, 목욕 시켜야지...."

개가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친구는 아파트에서 그 개를 기르는 것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저 역시 사실 그렇게 큰 개를 키우는 것은 자신이 없는지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몸집을 컸지만 정말 선한 눈빛을 한 강아지였다.
▲ 하룻밤을 같이 보낸 강아지 몸집을 컸지만 정말 선한 눈빛을 한 강아지였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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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친구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걸렸는데도 여전히 제가 살고 있는 문 앞에 서 있는 그 개를 보니 마음이 자꾸만 아파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으로 들이기로 했습니다. 여름이지만,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바닷가가 가까워 밤이면 제법 쌀쌀하기 때문입니다.

그 개는 졸래졸래 따라오더니 엘리베이터 앞에서 딱 하니 앉았습니다. 아마도 원래 주인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닌 모양입니다. 그 모습을 보니 또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역시 기를 자신은 없어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제 집은 2층이기에 엘리베이터를 굳이 이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본 그 개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같더니 펄쩍펄쩍 저를 뒤따라오는 것입니다.

가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쩐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 말이 차마 입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개가 제 집 문 앞에서 다른 개들처럼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그 개를 집 안으로 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 지 고민이 되어 문을 닫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열지도 못했습니다. 그 사이 그 개가 슬쩍슬쩍 눈치를 보더니 큰 몸을 어느새 집 안으로 다 들여놓았습니다.

이왕 둘까 하다가 이 큰 개를 집 안에 두면 더러워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손짓으로 나가라고 했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개는 그 말을 알아듣고 문 밖으로 나가 앉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좀 아파 "미안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걸어 잠그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한 10분쯤 흘렀을까요? 개가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1층으로 가 보니 여전히 얌전히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몇 번 쓰다듬어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이 녀석이 먼저 뛰어올라 제 집 앞에 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과 달리 문을 열자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실 이 큰 개가 대소변을 집 안에 보고 이것저것 물어 뜯을까봐 엄청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제 옆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대소변도 보지 않고,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어지럽히지도 않는 것입니다. 원래 주인이 훈련을 아주 잘 시킨 모양이었습니다.

꼭두새벽부터 왔다 갔다 거려서 잠을 못 자게 한 것만 뺀다면, 정말 갖고 싶은 생각이 드는 개였습니다. 결국 개가 하도 새벽부터 왔다갔다 거려서 새벽에 개와 함께 산책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개와 비슷하게 생긴 개를 가진 동네 주민을 만났습니다.

"이름이 뭐예요?"
"몰라요. 어제 밤에 집 앞에 있길래 불쌍해보여서 재웠어요."
"아, 주운 거군요. 이 개 자주 봤는데."
"주인을 아세요?"
"네. 어디 사는..."

다행스럽게도 그 동네 주민은 가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 이 개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집에서 그렇게 얌전하던 개가 집 밖에 나오니 풀밭에서 뒹굴고 심지어는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호수에 들어가서 헤엄까지 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산책 중에 만난 친구 개에게 정신이 팔려 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고작 하루 같이 잤을 뿐이지만 어찌나 배신감을 느꼈던지.

플래쉬를 터뜨렸더니 눈을 감았다.
▲ 하룻밤을 같이 보낸 강아지 플래쉬를 터뜨렸더니 눈을 감았다.
ⓒ 양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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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온갖 장난을 치는 것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얗던 털이 금세 누런색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니 역시 스스로도 잘 챙기지 못하는 제가 기르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산책길에 만난 동네 주민에게 제 전화번호를 가르쳐주고 개 주인을 만나면 연락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목욕을 시키려 했는데 욕실에 들어오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결국 드라이기로 털만 말렸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온갖 진이 다 빠져 잠시 자고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녀석이 나가는 줄 알고 자기도 나가겠다며 온갖 기를 다 쓰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두려다가 아무래도 주인을 찾아주어야 할 것 같아 관리사무소에 데려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를 데려가는 동안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다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 개가 아니다, 불쌍해서 하루 재웠다, 집 주인 어디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눈빛이 바뀌면서 잘 안다면서 그 개를 그 개 주인이 사는 아파트 동까지 데려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개가 그 동까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는 출근을 했습니다. 그렇게 그 개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하룻밤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었지만, 막상 다시 집에 들어와보니 왜 이리도 그 녀석이 눈에 밟히는지 모를 일입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외로움 때문일까요? 아니면 하룻밤만에 정이 들어버린 것일까요. 가끔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라오는 유기견을 데려다 키우는 애견인들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하루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하얀 색이었는데, 저랑 하루 놀더니 저렇게 누렇게 변해버렸네요^^



태그:#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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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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