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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광주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뜨거웠습니다. 5.18 민주 항쟁은 벌써 오래 전 일이었지만,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반 민주적 행태들을 규탄하는 광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활기 차고, 사람 가슴을 뛰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하교 길에 버스를 타고 전남대, 조선대 앞을 지나가는 길이면 일상처럼 버스는 노선을 변경하여 먼 길을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시위하는 대학생들 때문이었습니다.

 

숨을 못 쉬게 하고, 눈물과 콧물이 나오게 하는 지독한 최루탄 가스가 버스 차창 사이로 스며 들어 오면 버스 안은 순식간에 화생방 훈련장이 돼 버립니다. 창문을 열면 더 많은 최루탄 가스가 들어 오고, 버스 밖으로 나가면 그 곳은 더 괴로우니, 창문을 열 수도, 버스를 뛰쳐 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광주는 거리의 시위대들이나, 버스 안의 학생들, 아주머니들, 할아버지들, 아이들까지 모두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당연한 곳이었습니다.

 

버스가 노선을 변경하여 내릴 곳에 내리지 못해도, 최루탄 가스 때문에 고통을 겪어도 누구 하나 시위대를 탓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거리의 시위대들의 고통을 우리는 온 몸으로 이해하고, 또한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전두환의 명령으로 시민 학살이 시작됐을 때, 우리네 어머니들은 밥을 지어 날랐고, 우리의 형들과 아버지들은 총칼 앞에 의연히 항거하며 죽음으로 맞섰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버스 안의 그 당연한 듯한 공감의 분위기는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 못 하는 우리들이 차창 밖 시위대들에게 보내는 이해와 지지의 함성이었습니다.

 

언젠가, 그 분이 부산의 어느 유세장에서 부산 국회의원 선거 유세 연설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듣던 사람들이 김대중 당이라며 야유를 보내고, 한나라당 후보가 전라도 당이라며 조롱하고, 결국에는 듣던 사람들이 일어나 우르르 나가 버리는 모습, 텅 빈 공터에서 10 여명의 사람들을 앞에 놓고 열변을 토하시는 그 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종로에서의 재선이 확실한 상황에서, 승리를 버리고 패배를 선택하며 부산에 민주당 후보, 전라도 당 후보로 출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외쳤던 지역 통합의 메시지, 경상도와 전라도가 편 가르지 말고 하나 되어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그 분의 메시지는, '정의감'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는 해석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경상도와 전라도민들에게 서로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서 국회의원에 당선하고, 대통령에 당선하고, 자신의 입지와 부를 쌓아갔던 자들이 주류 행세하던 그 야만의 시대에 우리를, 우리 광주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던 그 분을 봅니다. 보통 사람은 단 한 번도 겪어내기 힘들다는 낙선의 절망감, 경제적 부담 그리고 가족들의 안위까지 모두 버려두고 그렇게 우리 광주를 사랑해 준 분이 바로 그 분입니다.

 

나는 부산의 그 텅 빈 유세장에서 가슴 속의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당신의 진심을 이야기하는 당신을 봅니다. 경상도, 전라도 제발 편 가르지 말고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사랑하며 사람 사는 세상 만들자는 당신의 말씀을 이제서야 알아 듣습니다. 최루탄 가스 가득한 그 버스 안에 내 곁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당신을 봅니다. 나는 당신에게 그렇게 빚 진 사람입니다.

 

자주는 못 하더라도, 여사님에게 과일 한 상자라도 보내 드리며 그 은혜 갚겠습니다. 한나라당 소속의 후보가 광주에 나와도 무조건 제껴 놓지만은 않겠습니다.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당신과 같은 인격과 뜻을 가진 후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현 정권의 정책이라도 무조건 반대하지만은 않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그럴 일이 거의 없겠지만,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찬성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미 추진되고 있는 사이비 정책들에 대해서는 결코 반대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화인 맞은 양심, 저주 받은 영혼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도 살아나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꿈 꾸셨던 세상, 편 가르지 않고 모두가 서로를 아끼며 상생하는 행복한 세상에 대한 희망과 꿈 놓지 않겠습니다.

 

먼 훗날, 천국에서 당신을 만나면 존경과 사랑을 담아 큰 절 올리겠습니다.

그 날까지, 편히 잠드세요.

 

 

-광주의 아들 올림-


태그:#노무현, #광주,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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