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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발가락 양말을 즐겨 신으신 것 같다. 여기서 애매하게  같다라고 하는 표현을 쓰는 건 옛날에 노대통령이 발가락 양말을 신었다는 사실이 한 중앙일간지의 사설에서 언급되었다는 것, 그리고 최근 '노간지'라 불리는 사진들 중에 발가락 양말에 슬리퍼를 신은 사진이 있다는 것 때문이다. 사실 나는 그가 매일 발가락 양말만 신는 버릇이 있는지 그냥 몇 번 신은 건지 알지 못한다. 확인할 길도 없고.

 

그런데 그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떠오른 게 옷장 구석에 처박아 놓은 '발가락 양말'이다. 끝까지 남아있는 ''진성 노빠'이고 싶어 했지만 한없이 소극적이었던 내가, 한때는 그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걸 하고 싶어서 온 동네를 휘젖고 다니던 내가, 한없이 먹먹해지는 가슴에 갑자기 올라오는 가슴 속의 통곡소리를 주저 앉혀 놓고 겨우 생각나는게 왜 '발가락 양말'일까?

 

내 작은 옷장 속의 '발가락 양말'은 본가에 들어온 선물을 아버지가 신지 않아 보낸 것이다. 양말과 속옷이 엉켜있는 작은 옷장에 넣어 두었을 뿐 별 신경을 쓰진 않았는데 왜 하필 그때 '발가락 양말'이 생각났던 것인지 난 알 수가 없다.

 

한번은 회사 동료가 예의 그 '발가락 양말'을 신은 걸 본 적이 있는데 특이하다고 언급하며 그냥 넘어갔다. 아니 그냥 넘어가는 것보다는 약간 불편한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격 때문일까? 아님 남의 눈에 특이하게 보일 걸 알며 굳이 신고 다니는 이유를 이해 못해서일까? 아마 내 인생에 '발가락 양말'을 따위를 신는 일은 평생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무현과 '발가락 양말'이라. 이제 좀 연관이 지어지는 것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적같이 집권한 지 얼마 안 되어 유시민 의원과 중앙일간지 논설위원이 백분토론에서 나눈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때 한참 기세가 오른 유시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끊임 없는 주류 언론의 비하와 공격 사례를 들며 그 논설위원이 쓴 '노무현과 발가락 양말'이라는 사설을 예로 들었다.

 

그러자 그는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지며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붉어진 얼굴은 거짓말을 들킨 어린아이와 같은 초라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그 때 난 노무현 대통령이 발가락 양말이란 걸 신는다는 걸 알았던 것 같다.

 

아마  그 논설위원은 노무현 후보의 특이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가 즐겨 신는 발가락양말을 예로 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낮선 것들을 싫어한다. 특이한 것도 싫어 한다. 그게 자신의 안정성을 해치리라고 여겨질 때는 더 그러하다. 이러한 심리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한 게 발가락 양말이고.

 

그 후로 난 발가락 양말을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걸 보아도 특별히 노무현 대통령과 연관시키지는 않았다. 노무현도 그저 그런 대통령이 되었고 또 은퇴한 대통령이 된 후 발가락 양말을 상기하게 된 게 요즘  떠도는 '노간지'사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사진이 찍혔을 즈음에 내가 바로 그 사진을 본 건지, 요즘에서야 본 건지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 요즘 그 사진을 봤을 때 익숙했던 걸 보면 그 전에 무의식적으로 그 사진과 사진속의 양말을 봤을는 모른다.

 

옷장 구석의 발가락 양말을 꺼내 신어 보았다. 발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옷감들이 낮설다.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따로 따로 움직이는 발가락들이 신기하다. 이런 느낌이 좋아 그는 이 양말을 신었을 것이다. 이제서야 내가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덕수궁으로 향하는 마음은 조급했지만 발가락 양말의 느낌은 여전했다. 난 앞으로 발가락 양말만 신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먼저 간 그에게 바칩니다. 


태그:#노무현,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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