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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오피전이 열리는 소격동 국제갤러리신관 입구. 동그라미와 선만으로 인체를 그리고 그래픽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줄리안 오피전이 열리는 소격동 국제갤러리신관 입구. 동그라미와 선만으로 인체를 그리고 그래픽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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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오피(Julian Ophie 1958~)는 젊은 영국 작가(YBA) 회원으로 데미안 허스트 등을 배출한 골드스미스대학 출신이다. 국내 처음으로 국제갤러리신관에서 근작 30점을 6월 14일까지 선보인다. 올 강남 PKM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 등의 영향도 컸다. 국제아트페어에 가보면 그는 단골출품작가로 인기가 높다.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미니멀한 요소와 함께 경쾌한 리듬감과 밝고 우아한 색채가 참으로 멋지다. 무엇보다 그의 매력은 그림에서 운동감을 최대로 살린다는 점이다. 그래서 몸보다 동작이 강조되고 작품에서 생생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그가 평소에 몸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모델촬영한 후 드로잉이나 컴퓨터로 변형

▲ '진 입고 걷는 루스(Ruth walking in jeans)' 52인치 LCD스크린 125×75×12cm 2008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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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0여 년 전부터 학생, 주부, 발레리나, 컬렉터, 화랑대표, 아트  딜러 등 주변인물을 모델로 작업을 해왔다. 위 작품은 스위스의 컬렉터 '루스(Ruth)'를 모델로 한 것이다. 수십 장의 장면을 잡아낸 뒤 무릎 등 꺾이는 부분은 점으로 찍어 선으로 연결해 여러 컷을 합성하여 5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스크린을 통해 움직이는 그림(mobile art)으로 보여준다.

작업 과정을 더 살펴보면 작가가 우선 모델을 촬영한 후 드로잉이나 컴퓨터 작업을 통해 변형하고 수정한다. 몸과 얼굴에서 신체적 최소한의 형태만 남기고 모든 것을 생략하거나 단순화한다. 그림의 결과물이 쉽게 나오는 것 같아도 그 과정은 예상 밖일 수 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형상화하는데 많은 시간과 모색도 필요했으리라.

그림에 활력을 주는 춤 동작 선호

'나신으로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naked)' 알루미늄에 유화 200×163×29cm 2009.  '진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jeans)' 나무판에 비닐 260×202cm 2009
 '나신으로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naked)' 알루미늄에 유화 200×163×29cm 2009. '진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jeans)' 나무판에 비닐 260×202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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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지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black trousers)' 나무판에 비닐 216×228cm 2009
 '검은 바지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black trousers)' 나무판에 비닐 216×228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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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두 작품은 스페인 현대무용가 카테리나(Caterina)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일자세골의 몸매로 섹시하고 날씬하고 날렵하다. 작품에 리듬과 활력을 살리고 생기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요소로 춤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하여간 1층 전시실 소제는 온통 댄스다. 이를 바탕으로 조각, 동영상, 프린팅 등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특유의 단순함이 율동의 아름다움이 더해져 더 빛난다. 팝아트작가답게 대중적 취향을 예리하게 읽어낸다. 나신으로 춤을 추는 카테리나도 있고 블루진이나 검은 바지를 입힌 카테리나도 있다. 작가의 시선에 따라 인물의 분위기가 바뀐다. 이렇게 단순화되기까지의 과정은 복잡할 수도 있다.

선과 동구라미 그래픽으로만 율동미 극대화

'줄무늬 톱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stripy top)' 나무판에 비닐 227×96cm 2009. '발은 든 사라(Sarah attitude hold)' 나무판에 실크스크린 82×34cm 2008 '데님스커트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denim shirt)' 나무판에 비닐 128×207cm 2009
 '줄무늬 톱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stripy top)' 나무판에 비닐 227×96cm 2009. '발은 든 사라(Sarah attitude hold)' 나무판에 실크스크린 82×34cm 2008 '데님스커트 입고 춤추는 카테리나(Caterina dancing in denim shirt)' 나무판에 비닐 128×207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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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렇듯 간편과 간략과 간소가 바로 그의 키워드다. 선과 원형 그래픽(pictographic)만으로 작품을 합성한다. 그래서 사진그래픽(photographic)과는 조금 다르다. 굵은 선과 신선한 원색으로 그만의 개성을 살린다. 몸의 선이 이렇게 유려하고 경쾌할 수가 없다. 칠보바지, 비키니, 미니스커트 등 다양한 패션을 그림에 활용하여 분위기를 바꾼다. 

미술과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문다. 거기서 관객들이 요즘 다이어트라는 시대현상에 부응하는 몸매를 선보여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하여간 최소의 선으로 최대의 효과를 가져와 그림에서도 경제성을 발휘한다.

일상의 흔한 이미지 창조적으로 재구성

흰 옷 입고 춤추는 샤흐노자(Shahnoza dancing in white dress) 이중LED 전광판 238×133×62cm 2007. 공공건물에 설치하면 멋진 공공미술이 된다.
 흰 옷 입고 춤추는 샤흐노자(Shahnoza dancing in white dress) 이중LED 전광판 238×133×62cm 2007. 공공건물에 설치하면 멋진 공공미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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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는 것처럼 야외정원에는 석판에 이중 LED 전광판을 더한 설치작업으로 그의 회화를 고정된 조각이 아니라 움직이는 설치작품이 된다. 이런 작품은 공공미술로 활용되면 생명력을 잃어가는 도시의 거리를 활기차게 살려주는 역할도 한다.

이런 작품은 잡지표지에서 본 것 거리광고나 표지에서 본 것과 별단 다르지 않다. 우리가 흔히 보는 버스, 지하철, 공항의 윈도우 숍에서 보는 것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린다.

그는 영국 팝그룹 '블러(Blur)'의 앨범표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활동영역이 대중적이고 주변에서 흔히 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영국현대미술의 주제가 '일상성(down to earth)'인 것을 감안할 때 자연스럽다. 다만 문제는 그런 하찮은 것들을 어떻게 작가가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느냐가 문제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없다

'빨간 숄 거친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with red shawl)' 52인치 LCD스크린 125×75×12cm 2008
 '빨간 숄 거친 마리아 테레사(Maria Teresa with red shawl)' 52인치 LCD스크린 125×75×12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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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올라가면 분위기가 다르다. 플랑드르(벨기에) 화가 반 다이크(1599~1641)의 화풍이다. 그는 영국으로 가 궁정화가가 된 사람으로 17세기 루벤스와 함께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다. 이 작품은 그런 포즈와 구도에 팝아트를 혼합했다. 여기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없다. 다만 작품에서 숭고한 고전미를 덜고 발랄한 대중문화를 더할 뿐이다. 

19세기까지는 예쁜 것이 아름다움이었다면 20세기부터는 예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이 작가는 이 두 요소를 융합한다. 영국은 왕조와 비틀즈가 공존하는 나라가 아닌가. 영국식 절충주의라고 할까. 팝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 회화언어인 색채와 과학언어인 IT기술, 보편적인 것(generic)과 개별적인 것(specific)이 뒤섞여있다.

그림의 의미보다는 유희적 감각으로 느끼게

'클래어(Clare with lace blouse)' 52인치 LCD스크린 125×72×15cm 2008'. 로렌조(Lorenzo with hand on chest)' 52인치 LCD스크린 125×72×15cm 2008. 눈동자가 수시로 움직인다.
 '클래어(Clare with lace blouse)' 52인치 LCD스크린 125×72×15cm 2008'. 로렌조(Lorenzo with hand on chest)' 52인치 LCD스크린 125×72×15cm 2008. 눈동자가 수시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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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역시 사치한 고전풍을 풍기면서도 고아한 천연원료와 세련된 패션 감각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두 남녀의 모습이 그 어떤 것에도 기울어지지 않고 고전적 균형감도 엿보인다. 동시에 LCD스크린을 통해 그림 속 주인공의 눈동자가 깜빡거림을 보여줘 그림의 의미를 무겁게 전하기보다는 유희적 감각으로 느끼게 한다.

날렵한 몸매의 그림은 날씬해지고 싶은 현대인의 요구도 은근히 해소시킨다. 그리고 경쟁사회에서 머리 아프고 복잡하게 꼬인 삶을 확 풀어준다. 그는 또한 여자의 마음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처럼 여성적 취향과 감수성을 감지하여 이를 작품에 반영한다.

'화룡정점' 같은 효과 주는 작가의 재치

'잭, 프린터 프로필(Jack, printer Profile right)' 비닐 빛 알루미늄 207×177×21cm 2007 그림은 팝적이고 액자는 고전적이다
 '잭, 프린터 프로필(Jack, printer Profile right)' 비닐 빛 알루미늄 207×177×21cm 2007 그림은 팝적이고 액자는 고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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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보통남자 잭의 옆모습을 보자. 정면보다 그 특징과 인품이 더 잘 드러난다. 여기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눈이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래픽 하나로 그는 동양에서 말하는 화룡정점의 효과를 십분 발휘한다. 관객을 즐겁게 하면서 이 작가의 재치가 빛나는 순간이다.

그밖에도 일본목판화(우키오에) 등의 영향을 받은 애니메이션 풍의 작품 등도 선보인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그림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눈에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하여간 전율과 쇼크가치를 일으키는 선정주의(sensationalism)로 영국미술은 세계미술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실 영국성(Britishness)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진 않으나 영국은 세계를 포맷시킬 정도로 세계화의 첨병이다. 그런데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만큼 미술전통이 없는 영국미술이 앞으로 어떻게 평가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소격동 국제갤러리 02)735-8449 관람무료 http://www.kukje.org에 다른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음



태그:#줄리안 오피, #미디어아트,서울역앞서울스퀘어, #데미안 허스트, #골드스미스대학, #영국미술, #DOWN TO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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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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