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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만하는 엘리트 체육 대신 예를 갖추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체육부로 이끈다.
▲ 신곡중 강재관 교사 운동만하는 엘리트 체육 대신 예를 갖추고 성실하게 공부하는 체육부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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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구 인수동에 사는 강재관 교사(32·의정부 신곡중)는 자전거로 학교까지 출퇴근한다. 아침 7시에 출발하면 8시가 채 못 돼서 도착한다고 한다. 자동차나 대중교통보다 오히려 낫다. 다만, 몸이 조금 고단할 뿐.

강 교사는 오히려 건강해서 좋다고 말한다. 서울만 빠져나가면 제법 좋은 공기를 마시며 달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강 교사 몸은 조금 말랐지만 강단 있어 보였다.

강 교사는 출퇴근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건강하고 대안적인 삶을 만들어가려고 애쓰고 있다. 다들 학교가 무너져 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강 교사가 맡고 있는 체육은 더 뒷전이다. 체육은 입시를 위해 희생해야 할 과목 1순위 아니던가.

강 교사는 검도부 감독까지 맡고 있다. 운동부는 선량한(?)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교사들에게는 공부하는 분위기를 해치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있는 듯 없는 듯 있어주는 게 최상의 미덕. 강 교사는 검도부에서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그리고 건강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운동은 방과 후에만, 수업은 성실하게

검도부 학생들은 배운 걸 수업노트에 작성해 해당 과목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는다. 성실하게 배울 수 있고 선생님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 "참 잘했어요" 검도부 학생들은 배운 걸 수업노트에 작성해 해당 과목 선생님에게 검사를 받는다. 성실하게 배울 수 있고 선생님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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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부는 공부 안하기로 유명하다. 운동 실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박정희 시대부터 학교에서 운동하는 아이는 운동'만' 하도록 시켰다. 볼펜 1만 개를 파는 것보다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하나 딴 것이 더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것을 국가권력이 알아차린 순간 몸 좋은 청소년들이 책상 밖으로 내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엘리트 선수로 육성되었지만, 사회에서는 무능력한 생활인으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공부는 그야말로 흉내만 냈다. 오전에는 엎어져 자다가(사실 이게 가장 고맙다. 수업 방해 안 하니까.) 점심 이후에는 아예 운동부로 가버린다. 그러니 운동하다가 그만두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운동에 목숨을 건다. 저마다 이승엽·김연아를 꿈꾸지만, 성공할 확률은 1%도 안 된다.

"사회는 성공한 스타만 보여줘요. 뜨지 못한 선수들이 어떻게 평생을 보내는지 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아요. 성공하지 못한, 1등이 아닌 운동부들을 위해서라도 이 사회를 헤쳐나갈 수 있는 기본 정도는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어요. 운동으로 성공하면 좋죠. 하지만 로또 당첨만큼 어렵다는 경쟁에서 성공하기만을 주문하지 말고, 운동 외에도 가꿔가야 할 아름다운 삶이 많다는 걸 알려주어야지요."

강 교사는 우선 '껄렁한 운동부'라는 이미지부터 씻어냈다. 검도부 학생들에게 선생님을 만나면 정중하게 인사할 것, 복장을 똑바로 입을 것을 기본 가운데 기본으로 가르쳤다. '예'를 모르면 인간 구실을 할 수 없다고 강 교사는 확신한다.

여기에 수업노트를 작성해 수업 후 담당 선생님 사인을 받아오는 것은 필수다. 이 노트 하나면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다.

"미리 선생님들에게 편지를 썼어요. 왜 그렇게 하는지 알리고 동의를 구한 거죠. 수업 태도부터 못 따라오는 수업 내용까지 알려달라고 했죠. 작년, 꼬박 1년을 그렇게 했어요. 선생님들이 사인만 하는 게 아니라 정성껏 의견을 남겨주셨어요. 아이들도 선생님과 친하게 지내니까 공부에 흥미를 느끼고 학교생활을 즐기더라고요. 투명인간 아니라 학생이고 친구가 된 거죠."

더는 투명인간이 아니다

최소한 선생님들이 이름을 기억할 정도가 되니 아이들 몸가짐도 달라졌다. 어느 선생님은 "운동부는 학급에서 티가 나는데, 누가 검도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만큼 아이들과 잘 섞여 지내고 수업 태도도 좋다는 말이다. 강 교사도 아이들 수업노트를 꼼꼼히 확인하고 그에 맞게 지도한다.

통상 운동부들이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부터는 운동하지만, 신곡중 검도부는 오후 수업까지 모두 듣는다. 운동은 방과 후에만 한다. 야간훈련도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공부하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것이다. 당연히 학업 성적이 올랐다. 최하위권으로 처진 아이들도 조금씩 좋아졌다.

그래도 천생 선생님이다. 만족하지 않고 욕심을 낸다. 강 교사는 "여전히 20점대에 머물러 있는 친구들이 있다. 특히나 국·영·수는 노력해도 쉽게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다"고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검도 실력은?

"당연히 실력 차이가 나죠. 오전 수업만 하고 운동하는 학교들과 비교가 안 되죠. 운동에 쏟는 시간 만큼 시합 성적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도 코치가 동의해줘서 무리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침 조회로 건강한 하루 다짐

아침마다 모여 건강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루를 살자고 다짐한다.
▲ 검도부 아침 조회 아침마다 모여 건강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루를 살자고 다짐한다.
ⓒ 주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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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와 비교해 부족한 연습량은 방학 때 채운다. 한수 위 실력을 갖춘 학교를 찾아다니며 배운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모교를 위해 돌아온 코치가 열정을 보이는 것도 검도부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한다.

검도부는 수업 시작하기 전 아침에 조회한 뒤 교실로 흩어진다. 감독인 강 교사와 코치가 복장을 확인하고 하루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서로 다짐한다. 강 교사는 "운동하는 아이들은 기운이 넘쳐 잘 잡아주지 않으면 엉뚱하게 발산한다. 자기들끼리 패거리를 지어 다니거나 폭력을 쓰기도 하고 어른에게도 함부로 한다"고 아침 조회를 하는 이유를 밝힌다.

야구나 축구 같이 인기를 모으는 운동은 동기부여가 잘 되지만 검도는 그렇지 않다. 대학 진학은 그렇다 해도 이후에는 그리 진로가 넓지 않다. 게다가 평소에 사고 치는 아이들에게 운동을 권하는 경우가 흔하다. 일부 부모들은 공부로 안 될 것 같으면 쉽게 포기하고 운동으로 성공시켜 달라고 교사들에게 부탁한다.

공부하며 운동하는 학생을 길러낸다 해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운동만 하면서 공부를 소홀히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강 교사는 새로운 학풍, 학원 운동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맑은 물 한 방울을 혼탁한 세상에 흘려보내는 기분"으로.


태그:#교사, #마을, #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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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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