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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날고양이들

- 글 : 어슐러 K.르귄

- 그림 : S.D.쉰들러

- 옮긴이 : 김정아

- 펴낸곳 : 봄나무 (2009.4.15.)

- 책값 : 1만 원

 

 

 (1) 잘 쓴 작품이면서 '가슴에는 안 남는' 작품

 

 지난날 《날개 달린 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나왔으나 모두 나오지는 못했다고 하는 '어슐러 K.르귄' 님 책이 《날고양이들》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옮겨졌습니다. 판이 끊어진 예전 책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린 분이 많았을 테며, 르귄 님 작품은 널리 사랑받고 있는 터라, 이 책 《날고양이들》 또한 두루 사랑받는 작품으로 우리 품에 안깁니다.

 

.. 뭔가 생각하던 셀마가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는 좋은 손을 만나면 다시는 사냥 나갈 필요가 없다고 그랬어. 하지만 나쁜 손은 개보다도 못하다고 했어." … 해리엇이 오빠 제임스에게 속삭였습니다. "야아, 아이들 손길이 따뜻하고 기분 좋아." ..  (38, 49쪽)

 

 어린이책(판타지 동화)으로 갈래를 나눌 《날고양이들》은 책날개에 적힌 소개글을 살피면, '르귄은 호기심을 자아내면서도 설득력 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보석 같은 책을 썼다(퍼블리셔스 위클리)'라든지 '이 시대의 것이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 타인과의 차이에서 오는 자긍심과 소외감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부드럽게 일깨워 주는 책(뉴욕타임즈 북리뷰)'이라든지 '간결하고 유려한 문체로 쓰여진 매력적인 책이다. 쉰들러는 섬세한 펜선과 수채화 기법으로 아름답고 진지한 판타지 속의 날고양이들을 보여 준다(북리스트)'라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이렇게 짤막하게 적힌 추천글이 아니더라도 《날고양이들》은 금세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이야기흐름이 빠릅니다. 글은 단출하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고양이'를 내세워 우리 삶터를 구석구석 살피거나 훑는 눈매가 따뜻하고 부드럽습니다. 나와 남이 어떻게 다른가를 돌아보는 한편, 서로 오붓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삶터를 어떻게 이루면 좋을까 하는 생각을 살며시 느끼게 합니다. 사람 스스로도 사람 삶터인 도시에서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는 가운데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얕고 안타까운 발자국을 걱정하는 가운데, 우리가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는 길은 누가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펼쳐 보입니다.

 

 

.. 하늘을 나는 얼룩고양이들을 처음 본 순간,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이 알게 되면 철창에 가두거나, 서커스나 애완동물 쇼에 내보내거나, 실험실로 보내거나, 돈벌이에 이용하거나, 아예 팔아넘길까 봐 겁이 났거든요 ..  (55쪽)

 

 틀림없이 《날고양이들》은 우리한테 빛줄기 가득 담긴 구슬 같은 책이 아닌가 느낍니다. 우리 모습을 곰곰이 돌아보면서 우리 앞날을 찬찬히 헤아리도록 이끄는 책이라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홀딱 읽고 난 이 책을 다시 펼쳐서 살피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어, 벌써 이야기가 다 끝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뒤끝이 없는 깔끔한 작품이기는 한데 왜 이리 허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르귄이라고 하는 분이 굳이 '날고양이'라는 판타지로 이 작품을 써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판타지를 쓴다 하여 달라질 대목이 없으리라 느끼고, '날아다니는 사람'이 아닌 그예 '걷기만 하는 사람' 이야기를 펼친다 하여도 《날고양이들》하고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느낍니다.

 

.. "아아, 우리 아기 고양이는 떠나야 한단다. 아기 고양이가 무사하다는 것도 알았고, 너희들이 잘 돌봐 주리라는 것도 알았으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아기 고양이의 안전뿐이란다. 날개 달린 고양이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이 도시에는 없어. 얘들아, 그건 너희도 알지?" … 하늘 높이 날던 제인이 개들 가까이로 내려가면, 개들은 펄쩍펄쩍 뛰면서 사팔눈이 될 때까지 짖어댔습니다. 꽤 재미있었습니다만, 제인은 아무 데서도 친구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인은 생각했습니다. '날개가 있으면 외톨이로 지내야 하는 걸까?' 날개 달린 고양이 제인은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새들은 날개가 있었지만, 날개 달린 고양이를 보고는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올빼미와 매는 위험했어요 ..  (94, 163∼164쪽)

 

 문득, 만화책 《기생수》가 생각납니다. 만화책 《기생수》나 동화책 《날고양이들》이나 빼어난 생각힘으로 놀랍게 펼쳐내는 줄거리가 돋보이는 작품이라 손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만화 《기생수》는 내 둘레 고마운 분한테 여덟 권 한 질(44000원)을 선물한 적이 있고, 앞으로도 그처럼 선물하고프다'는 쪽이지만, '동화 《날고양이들》(1권 마무리, 책값은 1만 원)은 굳이 선물해 주고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쪽입니다.

 

 무엇이 두 작품을 이처럼 다르게 느끼게 하는지, 왜 두 작품을 이렇게 다르게 받아들이는지 스스로 궁금합니다. 내 눈길이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작품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외곬로 기울지는 않았는지 곰곰이 되씹습니다.

 

 다른 이들은 '더없이 좋다'거나 '더없이 훌륭하다'고 느끼는 책을 나 혼자 '그리 시덥잖은데?' 하고 느끼는 마음그릇은 아닌가 곱씹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다음에 마음 한구석을 쩌렁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는 책이었는걸요. 크게 쩌렁 울리지 않더라도 살짝 통통 울리지도 못한 책이었는걸요.

 

.. 제인이 말했습니다. "나는 왜 있는지 알아!" 셀마가 물었습니다. "왜 있는데?" 제인이 소리쳤습니다. "하늘을 날라고 있지요!" 제인은 곧장 하늘 위로 날아올라 두 번 옆으로 구르고, 한 번 앞으로 구른 다음, 잠시 날갯짓을 멈추었습니다. 그러고는 알렉산더의 잔등 위로 털썩 내려앉았습니다 … 제인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왜 아무 데도 가지 않지? 어디로든 날아가서 무엇이든 볼 수 있을 텐데?" 오빠 로저가 말했습니다. "에이, 제인, 너도 왜 그런지 알잖아." 언니 해리엇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날개 달린 고양이를 발견하면, 동물원 철창에 가둘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오바 제임스가 말했습니다. "아니면 실험실 철창에 가둘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맏언니 셀마가 말했습니다. "남과 다르면 살기 어려워. 남과 다르면, 아주 위험할 때도 있어." ..  (156∼157쪽)

 

 그러고 보면, 만화 《20세기 소년》을 보다가 뒷권으로 갈수록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짙게 느끼던 때하고 비슷합니다. 좀 묵은 작품이지만 《Z 마징가》를 보던 때에는 참 재미있다고 느끼며 여러 번 다시 보았고, 《초인 로크》나 《바벨 2세》 같은 작품 또한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보았습니다. 모두들 '터무니없다'고 말할 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놀랍다'고 느낄 만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나 글감이나 만화감을 '터무니없거나 놀랄 만한 데'에서 잡아챘다고 해서 '훌륭하거나 가슴 찡하거나 아름답거나 재미있거나 멋지거나 좋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를테면, 뛰어난 붓솜씨를 보여준다고 해서 뛰어난 그림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뛰어난 짜임새며 눈길로 잡아챈 사진이라고 해서 뛰어난 사진이라 할 수 없는 셈입니다. 글씨를 곱게 잘 쓴 글이라고 해서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없는 셈이고요.

 

 

 (2) 가슴에는 안 남으나 '되새기는' 이야기

 

 그렇지만 글쓴이 르귄 님은 우리한테 아낌없는 사랑과 믿음으로 '우리 스스로 쉽게 놓치거나 언제나 잃고 있는' 삶자락이 무엇인가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사이사이 톡톡 건드리듯 슬그머니 보여줍니다.

 

.. 모두 곱게 잘 커 준 아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인 부인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남몰래 속을 태웠습니다. 이 동네의 환경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자동차 바퀴와 트럭 바퀴가 온종일 지나다녔습니다. 온갖 쓰레기가 널려 있었습니다. 굶주린 개들이 어슬렁거렸습니다. 신발과 장화가 끝도 없이 걸어가고, 뛰어가고, 짓밟고, 걷어찼습니다. 안전하고 조용한 곳은 점점 사라졌고, 먹을 것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참새들은 오래 전에 다른 데로 이사갔습니다. 시궁쥐는 난폭한 데다 위험했고, 새앙쥐는 비쩍 마른 데다 좀처럼 잡히지 않았습니다 … 도시 비둘기 한 쌍이 먼지 구름을 보고 날아왔다가 한 마디씩 하고 날아갔습니다. "빈민가를 또 철거하는구나." "이게 발전이란 거야." ..  (12, 67쪽)

 

 우리 스스로 우리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이고, 우리 손으로 우리 터전을 가꿀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를 밝힙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다움을 지키는 길이란 아주 쉽습니다. 우리 손으로 우리 터전을 가꾸는 길 또한 참으로 수월합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알고 있기도 합니다. 다만, 쉬워도 안 하는 일이요, 수월하여도 껴안으려 하지 않는 일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다 하여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다 함께 뜻을 모아 할 수 있는데, 혼자서도 안 하고 다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할 마음조차 없는 일이기조차 합니다.

 

.. 보드라운 땅, 이상야릇한 땅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사 남매가 알던 땅은 포장도로, 아스팔트, 시멘트뿐이었습니다. 마른 흙, 젖은 흙, 죽은 나뭇잎들, 풀, 나뭇가지들, 버섯들, 벌레들, …… 이런 땅은 처음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너무너무 재미있는 냄새가 났습니다. 작은 샛강도 있었습니다 ..  (23쪽)

 

 어쩌면, 아무래도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르귄 님 작품은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더없이 낯익으면서 쉽게 받아들여 읽을 수 있었는데, 언제나 이와 같은 매무새로 살아가고 있는 터라 굳이 이런 작품을 읽지 않아도 제 마음은 한결같습니다. 또한, 우리 둘레 여느 사람들은 이런저런 일을 알고 있으나 '먹고살기 바쁜데 어떻게?'라고 핑계를 둘러대기에 바쁩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런 작품조차 눈여겨보지 않고 가슴에 새기지 않습니다. 아예 읽을 마음조차 없어요.

 

 그러니, 이 작품이 널리 사랑받고 있다 하여도 허전합니다. 두루 읽히고 팔린다 하여도 씁쓸합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새책방 책시렁에서 새로운 책손을 만날 수 있다 하여도 허거픕니다.

 

.. 사라 (할머니)는 제인의 목에 감겨 있던 자주색 리본을 풀어 휴지통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저런 거 없어도 예쁘단다." ..  (195쪽)

 

 출판사에서는 애써 펴내 주었고, 글쓴이 르귄 님 마음도 가없이 푸근하다고 느낍니다만, '판타지 옷'을 안 입어도 괜찮고 '이름난 작가 작품'을 우리한테 나누어 주지 않아도 괜찮으며 '깔끔하고 예쁘장한 작품'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투박한 글이어도 괜찮고 어설픈 그림이어도 괜찮습니다. 조금 모자라거나 어설픈 작품이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아직 어리숙하거나 얕은 눈길이라도 재미가 없지 않아요.

 

 길은 지름길로만 가야 하지 않으며, 반드시 가장 빨리 거쳐가야 하지 않습니다. 100미터를 10초에 끊어야만 하겠습니까. 초중고등학교를 차근차근 밟아 대학교를 네 해 만에 마무리해야만 하겠습니까. 무슨 자격증이 있고, 어떤 예쁜 얼굴과 몸매가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우리 스스로한테든 우리 어버이한테든 넉넉한 돈이 있어야만 하겠습니까.

 

 없어도 괜찮고, 외려 없으니 즐겁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지없이 깔끔하고 아름답다 할 만한 《날고양이들》가 아닌, 수수하고 곱지 않은 '길고양이들'이어도 반갑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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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양이들

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봄나무(2009)


태그:#어린이책, #동화책, #판타지, #책읽기,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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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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