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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청원, 김노식, 양정례 의원 등 3명의 친박연대 소속 국회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일부 당직자들은 이에 반발, '정치재판 원천무효'라고 외치며 삭발했다.
ⓒ 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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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대는 한국 정치의 아픈 자화상이다."

정치평론가의 논평이 아니다. 다름 아닌 서청원 친박연대 공동대표가 한 말이다. 지난 3월 20일, 하루 앞당겨 한 창당 1주년 기념식에서 서청원 대표가 한 말이다.

서 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한나라당의 잘못된 공천은 정치권의 아픈 자화상으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면서 "재판이 끝난 뒤 (당원들과) 허심탄회하게 의논해 진로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언제까지나 친박연대 명칭을 가지고 안고 갈 수는 없다"고도 했다. 이규택 공동대표는 "우리는 '박근혜'라는 꿈이 있기 때문에 가시밭길을 버텨왔다"면서 단합을 호소했다.

그러나 박근혜라는 꿈은 현실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친박연대는 당장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나라당에 있다. 그리고 대법원은 14일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서청원 대표와 김노식·양정례 의원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친박연대는 원내 8석 중 3석을 잃었다.

친박연대의 전신(前身)은 박근혜와 무관

친박연대(親朴連帶)의 영문 약칭은 PPA(Pro-Park Geun-hye Alliance)다. 영문을 해석하면 친박연대보다 찬박(贊朴)연대 쪽에 더 가깝다. 이름까지 넣어 PPGA(Pro-Park Geun-hye Alliance)로 하면 LPGA(Ladies Professional Golf Association,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를 연상시킨다.

친박이든 찬박이든, 친박연대는 박근혜 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렇지만 이 친박연대라는 정치 결사체의 전신(前身)은 뜻밖에도 친박과는 관계가 없다.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07년 9월 28일 정근모 전 과학기술처 장관이 '참주인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순전히 자신의 대선 출마를 위한 프로젝트 정당인데, 뜻밖에도 김선미 의원이 멀쩡한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해 당 대표를 맡았다. 그런데 정 전 장관은 정작 대선 하루 전날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여기까지도 정치사에 보기 드문 한 편의 코미디다. 그런데 코미디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몇 차례의 극적 전변을 거쳐 옴니버스 코미디로 진화했다.

'주인 없는 참주인연합'은 2008년 3월 18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그런데 당시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근혜 인사들은 한나라당을 집단 탈당해 총선에 출마하기로 합의했으나 신당을 창당하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서청원, 홍사덕 등 한나라당을 탈당한 정치인들은 일단 대선 이후 방치된 미래한국당에 입주해 둥지를 틀었다.

이왕 벗은 김에 '빤쓰' 벗고 뛰자?

이들은 이왕 나선 김에 시쳇말로 '빤쓰' 벗고 뛰기로 했다. 당의 정체성을 확실히 드러내기 위해 당명을 아예 친박연대로 변경했다. 한국 정당사에서 자연인의 이름을 그대로 당명으로 사용한 최초의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가수들이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앨범을 내고 해체하는 경우는 있지만, 해체(복당)를 전제로 한 총선용 프로젝트 정당은 처음이었다. 또 아무리 한국 정치가 이념과 정책보다는 인물중심의 계파정치이긴 하지만 이런 노골적인 '매명(賣名) 정당'은 처음이었다.

한나라당은 당황스럽고 황당했다. 자기 당의 정치인을 지칭하는 표현을 다른 당에서 당명으로 쓸 수 있느냐고 따졌다. 남의 당의 인기상품을 연상시키는 표현을 회사명으로 쓰는 꼴이니 상도의에 어긋나는 처사였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특정인을 연상시키는 당명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정당법상 관련 조항이 없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했다.

이 즈음에 나온 박근혜의 한마디는 이 급조된 1회용 프로젝트 정당에 날개를 달아줬다.

"약속과 신뢰가 지켜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는 속았습니다. 국민도 속았습니다."

친박연대 후보들의 선거구에는 예외 없이 박근혜 전 대표의 사진과 이름, 그리고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걸렸다.

2008년 4월 총선 당시 대구 달서갑 지역에 출마했던 친박연대 박종근 의원 선거사무소 사진. 박근혜 전 대표를 앞세운 사진과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는 문구가 있는 홍보물이 내걸려 눈길을 끌었다.
▲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2008년 4월 총선 당시 대구 달서갑 지역에 출마했던 친박연대 박종근 의원 선거사무소 사진. 박근혜 전 대표를 앞세운 사진과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라는 문구가 있는 홍보물이 내걸려 눈길을 끌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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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한마디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의석수 3석으로 기호 6번을 부여받은 친박연대는 총선 결과, 예상을 뒤엎고 한국 정치사의 일대 사건으로 기록될 파란을 일으켰다.

4.9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친박연대는 정당지지율 13.2%를 기록하며 지지율 3위 정당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6석과 비례대표에서 8석을 보태 총 14석의 의석을 확보해 원내 4당이 되었다. 이밖에 친박연대의 측면 지원을 받은 친박 성향의 무소속 의원도 12명이나 당선했다. 이들과 합치면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도 6석이 남았다.

그러나 친박 프로젝트 정당의 기록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들은 박근혜가 지배하는 현실 정치에서는 살아서 돌아왔지만, MB(이명박)가 지배하는 법의 현실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친박연대는 이후 후보 공천 과정에서 헌금을 받았다는 혐의가 포착되어 수사를 받았다. 이미 김일윤 의원(경북 경주)이 금품 살포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한 데 이어, 비례대표 1, 2, 3번인 양정례-서청원-김노식 의원이 공천헌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친박연대는 창당 4개월만에 복당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해 7월 친박연대는 제명한 김일윤 의원을 제외한 13명 가운데 지역구 의원 5명은 복당 신청을 하고 비례대표 8명은 기소된 3인의 재판결과에 따라 당을 해산하고 복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3명이 유죄판결을 받음에 따라 사정이 달라졌다. 해산을 하고 싶어도 해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5월 14일 대법원은 서청원 공동대표 등 3인의 의원직을 상실케 하는 징역형을 최종 확정했다. 공천헌금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47조의2 규정을 적용해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2월 신설된 이 조항은 누구든 정당이 특정인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일과 관련해 금품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주고받거나 약속하는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친박연대'의 반대말은 'MB고대'

하필이면 처음이라니 그들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친박연대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 전 이들의 탈당계나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함으로써 비례대표 다음 순위에 의원직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사퇴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친박연대 의석수는 8석에서 5석으로 감소했다. 그뿐이 아니다. 국회의원 재적수도 299석에서 296석으로 3석 줄어드는 보기 드문 사태가 빚어졌다. 비례대표 의원이 선거관련 범죄로 당선이 무효로 될 경우 다른 사람이 의원직을 승계할 수 없다는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제18대 남은 기간에 의원직 승계자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친박연대처럼 급조한 정당이 단기간에 흥한 것도 기록이지만 단기간에 망한 것도 기록이라면 기록이다. 흥망성쇠가 다 급조인 셈이다. 결국 한국 정치사에서 기형적으로 탄생한 프로젝트 매명 정당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결과론이지만 친박연대는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서는 감히 손댈 수 없는 국회 재적의원 수까지 줄였다. 그런데 더 기형적인 것은 해산하고 싶어도 해산할 수 없는 정당이라는 점이다. 한국 정치의 슬픈 자화상이다. 친박연대가 잘 나가던 시절에 정치권에선 한때 이런 우스갯소리 문답이 유행했다.

'친박연대'의 반대말은? 정답은 'MB고대'란다.

'친박+연세대'의 조합에 '이명박+고려대'의 조합을 대비시킨 것이다. 지금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친박연대보다 MB고대가 훨씬 더 센 모양이다. 친박연대 3인도 자신들의 의원직 상실을 '박근혜 죽이기'라고 하는 것을 보니….

친박연대가 14일 서청원 대표 등 3명의 의원직 상실로 창당 1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서 대표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진을 내건 당사 복도를 당직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친박연대가 14일 서청원 대표 등 3명의 의원직 상실로 창당 1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한 가운데 서 대표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사진을 내건 당사 복도를 당직자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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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친박연대, #MB고대, #서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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