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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 고단하게 일한 사람이 읽는 책 :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일하고 난 뒤에 책을 펼치면 몇 쪽 못 읽고 눈이 감긴다. 그러다가 얼결에 눈이 번쩍 뜨이는데, 책에 침이 고여 있곤 하다. 그러나 그렇게 흐른 침조차 닦아내기 힘들어 책을 저리 밀치고 이불을 당겨 아예 드러누워 잠을 자 버리고 만다. 이튿날 일어나 어제 읽다가 만 책을 다시 집어들고 몇 쪽 넘겨 본다. 읽으며 생각한다. '으흠, 아무래도 이 책은 몸이 개운해진 다음에 봐도 따분하군.' 다시 책을 덮고 생각한다. '참으로 나한테 좋은 책이라면 고단하게 일하고 난 다음에도 졸린 눈을 비벼 가며 다문 몇 쪽이라도 읽어내도록 이끄는 책이 아닐까. 나한테 더없이 훌륭한 책이라면 흐리멍덩한 눈이 확 깨어나도록 하고 고단함을 싹 잊게 하는 책이 아닐까. 그러나 내 몸이 고단하지 않았을 때 책방에서 골라든 이 책은 나 스스로 읽으려고 골랐던 책인 만큼, 아직 나 스스로 나한테 즐겁고 좋은 책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못 알아보았다는 소리일 테지. 내 몸이 느긋할 때에만 읽을 수 있는 책, 또는 내 몸이 느긋할 때에 눈에 들어와 집어드는 책이 아니라, 느긋할 때이건 고단할 때이건 한결같이 집어들며 펼칠 만한 책, 내 눈과 머리를 맑게 깨도록 이끄는 책을 찾아내고 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불을 개고 옷을 챙겨 입으며 생각한다. '책이 얄궂거나 모자랄 수 있을 테지. 그러나 이처럼 얄궂거나 모자란 책을 고른 내 탓이 훨씬 크다. 나는 아직도 책을 제대로 고를 줄 모르는 바보이다.'

 

(086) 책만 읽었으니 재미없는 책소개글 :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는 '책소개글'은 늘 따분하거나 지루하곤 하다. 나는 이렇게 느낀다. 열 몇 해에 걸쳐 책소개글을 꾸준히 챙겨 읽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더는 책소개글을 챙겨 읽지 않게 되었는데, 몇 해 앞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문ㆍ잡지 책소개글이 왜 재미없는가 하면, 이런 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이나 무슨 도서평론가나 출판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책만 보기' 때문에 책소개글을 따분하거나 지루하거나 재미없게 쓴다고. 제 삶이 없이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늘 하는 말이야 책에 담긴 줄거리 간추림이고 글쓴이와 얽힌 얘기뿐이지, 이 책을 읽고 당신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거나 가슴 찡했거나 따분했거나 좋았거나 싫었거나 하는 말을 못하는구나 싶다. 스스로 어찌어찌 곰삭이며 올바르거나 잘못되었거나 알차거나 어설프거나 아름답거나 못났거나 착하거나 나쁘거나 즐겁거나 고리타분한가를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스스로도 이 책 하나와 함께 어떤 다른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지를 다루지 못한다. 게다가, '전문 서평꾼'이라는 분들마다 하는 말이 늘 '그 말이 그 말일 뿐'이다. 소개하는 책만 다르지, 소개하는 틀거리가 똑같다. 책이름을 바꾸어 놓으면 언제나 똑같은 책소개글이 되고 만다. 삶 없이 책만 죽어라 읽으니까, 또 그런 책 이야기만 되풀이하니까, 그리고 사람들이 '당신이 소개한 그 책'을 사서 읽기를 바란다기보다 '보도자료로 들어온 책을 기사 채우기 하려고 꾸역꾸역 쓰다' 보니까 더더욱 지루할 뿐이다.

 

 

(087) 더없이 훌륭한 책이라면 : 더없이 훌륭한 책이라면 꼭 이날 이 자리에서 읽지 않고 다음해에 읽어도 좋고 열 해 뒤에 읽어도 좋으리라 믿는다. 내가 읽지 못하더라도 백 해쯤 뒤에 누군가 읽어 주어도 좋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훌륭한 책이라면 나중에 읽거나 다른 사람이 읽을 때뿐 아니라 바로 이날 이 자리에서 우리들부터 스스로 읽는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믿는다.

 

(088) 책에 실리지 않는 이야기를 생각하며 : 누군가 한 사람이 제 삶을 책으로 담아낸다고 했을 때, 이 책에는 이이가 하고픈 말이 골고루 남김없이 담겼으리라 생각했다. 틀림없이 이와 같은 책도 세상에는 띄엄띄엄 나온다. 그러나, 웬만한 책은 출판사에서 편집자가 걸러내고 잘라내고 덜어낸다. "너무 길어요." "너무 딱딱해요." "같은 말이 되풀이돼요." "뜻은 좋은데 말투가 거칠어요."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힘들어요."

 

 출판사에서 영업자와 편집자로 일하는 동안, 글쓴이들 가운데 우리 말을 우리 말답도록 옳게 쓰지 못하는 분이 무척 많음을 보았다. 그렇다고 출판사 편집자는 우리 말을 우리 말답도록 잘 하느냐? 그렇지 못한 분도 어김없이 있다. 그런데 글쓴이들 말솜씨와 말그릇이 으레 더 낮은데 어찌하나.

 

 다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해요."라든지 "아직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않아요."라 하면서, 늘 어슷비슷한 읽을거리에 스스로 머물고 마는 책마을 눈높이는 안쓰럽다. 나는 책 만드는 사람이기 앞서 책을 읽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든 내 동무이든 좋은 책을 좋은 책이라고 알아보지 못한다 하여도 만들어낼 의무가 있는 한편, 좋은 책을 좋은 책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을 권리가 있다. 비록 "그런 좋은 책만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렇지만 그런 책만 만들면 독자들이 사 읽지 않아 출판사는 문을 닫아야 해요." 하는 씁쓸한 말을 책쟁이 스스로 뇌까릴 수밖에 없는 우리 삶터라지만, 이런 삶터이기 때문에 더더욱 '덜 팔리거나 안 팔리며 죽을 쑤고 마는 책'이라 하여도 '옳게 읽고 삭여낼 독자 하나'를 바라면서 책만들기에 땀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옳게 쓰고 옳게 만든 책을 출판사 영업자들은 두 주먹 불끈 쥐고 당차게 팔아내야 하지 않으랴 싶다. '책에 못 실리며 사라지는 옳은 이야기'가 웬만하면 없도록, '책에 안 실리며 잘리는 좋은 이야기'가 되도록 줄어들도록 애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하여 아예 '덜 팔리거나 안 팔려도 훌륭한 책'을 안 내고 만다면, 사람들 눈높이는 늘 그대로 머물면서 '앞으로는 좋은 책이 아닌 팔리는 책만 만드는 얼거리'로 단단히 굳어 버리지 않겠는가. '훌륭하거나 좋다는 책이 덜 팔리거나 안 팔리는' 어처구니없는 세상흐름을 고쳐 나가려는 움직임이 없으면 어찌 되겠는가.

 

 

(089) 책을 펴낼 때 :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이 책은 팔릴 수 있나?'라든지 '이 책은 얼마나 팔릴까?' 하면서 따졌을까 궁금하다.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때부터 '좋은 원고인지 아닌지'를 가리기보다 '이 원고를 책으로 묶을 때 얼마나 팔리겠는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090) 책 하나 만들어 줄어드는 숲이란 : 책 하나 만들자면 자연자원을 꽤 많이 써야 한다. 자연을 조금씩 망가뜨린다. 생태와 환경을 글감 삼아 자연 삶터를 아끼고 사랑하자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책을 만들 때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은 늘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틀림없이 옳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자연 삶터 수많은 목숨붙이들은 '좋은 책' 하나로 다시 태어나고자 제 목숨을 바치는 셈이 아닐까. 고기를 먹든 풀을 먹든 우리는 '목숨'을 먹는 일이요, 다른 목숨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서 우리 삶이 이어진다. 책이란 한낱 물건이 아니라 오래도록 다시 읽히고 거듭 읽히며 마음밭 일구는 슬기주머니가 되는 까닭이란, 수없이 많은 목숨과 넋이 종이뭉치에 스며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종이뭉치란 그저 물건이 아니라 수많은 자연 목숨이기 때문이 아니랴 싶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책 하나 만드는 일은 우리가 농사짓는 일과 마찬가지라고. 농사지은 곡식을 거두어 우리가 밥상을 차리는 일과 매한가지라고. 차린 밥상을 고맙게 받아들고 즐겁게 떠먹는 일과 같다고. 나무와 기름과 물을 비롯해, 우리 땀과 품과 세월이 바쳐지는 책은 돈 몇 천 원이나 몇 만 원으로 따지는 물건을 넘어, 사람이 사람다움을 드높이도록 이끄는 고운 이슬떨이라고.

 

 

(091) 밥집하는 마음과 출판사하는 마음 : 밥집이든 다른 가게이든 잘될 때 늘리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다만 한 가지, 가게를 늘리더라도 처음 문을 열 때 모습과 마음을 고스란히 간직한다면 된다고 한다. 가게를 늘리는 까닭이 돈 때문이 아니라면,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처음 가게였을 때 찾아온 그 느낌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늘려도 좋다고 한다.

 

 출판사 또한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처음 책을 내던 때 마음 그대로 이어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림을 늘려도 좋을 테지. 처음 책을 내던 때 마음을 잊거나 버리거나 놓아 버렸다면, 글쎄, 독자들은 이 출판사를 잊어버리거나 놓아버리거나 내버리지 않을까.

 

(092) 밥집 손님과 출판사 사랑이 : 밥집이든 술집이든 가게로 찾아와 밥을 먹고 술을 마셔 주는 손님이 있기에 돈을 벌 수 있고 살림을 꾸릴 수 있다. 출판사는 책을 기꺼이 사 주는 책손이 있어 돈을 벌고 살림을 꾸릴 수 있다.

 

 밥집이나 술집이 잘된다고 한다면, 이곳은 손님한테 받아 번 돈을 다시 손님한테 쓰기 때문이라고 느낀다. 값싸고 몸에 나쁜 먹을거리나 마실거리를 쓰지 않고 조금 비싸더라도 몸에 좋고 괜찮은 먹을거리나 마실거리를 쓰면, 처음 오던 손님이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첫 손님이 오래오래 이어지며 입소문을 내어주기 마련이다.

 

 출판사가 잘된다고 한다면 이곳에서 낸 책을 기꺼이 사 준 사람들이 많을 뿐 아니라, 이 출판사가 즐거이 번 돈을 다시 '더 좋은 책을 만드는 데에 썼기' 때문이라고 느낀다(요새는 돈 놓고 돈 먹기처럼 살림 불리는 출판사가 늘어났지만). 책 팔아 번 돈을 엉뚱한 곳에 쓰거나 대충대충 고만고만한 책을 낸다고 하면 어느 누가 그 출판사를 좋아할까. 어느 누가 그 출판사 책을 다시 사 주랴. 그러니까 출판사이든 밥집이든 술집이든, 당신들 스스로 번 돈이란 어떤 돈인가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당신들한테 고마움을 베푼 손길을 잊지 않는 가운데 당신들 스스로 꾸려 나갈 살림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늘 되뇔 수 있어야 할 노릇이 아닐까 싶다.

 

 

(093) '아름다운 가게'와 헌책방 : '아름다운 가게'가 처음 나왔을 때, 헌책방 일꾼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랐다. 왜 시민단체에서 다른 무엇도 아닌 '헌책'을 다루려 하는가 싶어서. 더구나 여태까지 헌책방 사람들은 조용히 '책이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온몸에 먼지 뒤집어쓰며 책을 캐내고 손질하면서 싼값에 팔아 오는 일을 해 왔는데.

 

 배운 것 없고 재주 없어 헌책방 일을 붙잡은 분이 많다지만, 웬만큼 배우기도 했고 책을 좋아하며 헌책방 일을 붙잡은 분도 많다. 어떻게 헌책방 일을 하게 되든, 처음에는 먹고사는 길로만 '버려진 책 건지기'를 했지만, 장사와 책에 눈을 뜨면서 '어떤 책을 어떻게 살려내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익혔고, 이와 같은 배움과 앎은 세상 어디에도 없이 헌책방에만 있었다. 대학교이든 도서관이든 '버려지는 책' 이야기란 한 마디도 없었고, 어느 교수도 학자도 지식인도 헌책방 얼거리와 책 문화('새책방-헌책방-도서관'이라는 세 꼭지) 얼거리를 말할 줄 몰랐다.

 

 요즈음은 어떠한 헌책방도 '아름다운 가게'가 무엇을 하건 마음을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사람들한테 '안 보는 책을 기부하는 겉멋과 겉이름'을 씌워 주었지만, '안 보는 책'이란 '헌책방에서조차 사들여 주지 않는 책'이기 일쑤이다. '읽힐 만한데 묵혀진 책'이라면 '헌책방에서 사들이는 책'이다. 헌책방 일꾼은 어떤 책이건 '돈을 치러 책을 사들이'고, 이렇게 '제 돈을 들여서 사들인 버려진 책'에 새 목숨을 불어넣어 눅은 값으로 사람들한테 나누는 일을 했다. 이제까지 어떤 헌책방도 당신들이 해 온 일을 놓고 '아름다운 기부'를 했다느니 '아름다운 되살림'을 했다느니 내세운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낮은 일'이나 '그 구질구질한 일'이란 쓴소리를 듣고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좋은 책을 찾아가는 좋은 손님'을 생각하는 가운데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예순 해 세월을 헌책방에 바쳐 왔다. 그렇기에 헌책방 일꾼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집에서 안 보는 책이라서 가지고 왔어요' 하면서 내놓는 책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이 안 보는 책이라면 다른 사람은 그 책을 보겠습니까?' 하고 묻기 때문. '헌책방은 사람들이 안 보느라 집에 쌓이는 책을 모아 놓는 데가 아니라, 사람들이 다시 읽을 만한 책을 싼값에 사들여 품값 조금 붙여 싼값으로 다시 파는 일을 하는 곳'인 만큼, '버릴 책은 버리고 버리지 말아야 할 책을 버려야 합니다' 하고 말하기 때문.

 

 나는 예나 이제나 똑같이 생각한다. '아름다운 가게'는 다른 어떤 물품보다도 '헌책'은 다루지 말아야 한다고. 헌책은 헌책방으로 가지고 가라 말해야 하며,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은 우리네 여느 헌책방과 같은 살림새로 꾸리지 않으려 한다면 스스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집에 묵혀 놓거나 안 읽고 내버린 책을 헌책방에 들고 가 '올바르게 값매김을 받아야' 비로소 '책이란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처음에는 만 원을 치르고 산 책이라 해서 헌책방에서 이 책을 천 원이든 이천 원이든 값을 붙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조금도 아니다. 당신이 만 원이 아닌 십만 원을 주고 산 책이라 할지라도, '되읽힐 값어치가 없는 책'이라 한다면 고물상에서 저울로 무게를 달아 폐휴지로 들어가야지, 헌책방 책시렁에 꽂힐 수 없다. 우리들은 우리가 사읽은 '처음에는 새것이었던 책'이 '헌책방에서 사들여 새로운 책손을 기다릴 만한 책'으로 되살아날 만한지 아닌지를 차분하고도 올바르게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네 어느 집에도 '책이 쌓이지 않'게끔 책매무새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처음 책을 사서 읽을 때에도 '우리한테 즐거운 책이란 어떤 책인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고, 이런 일을 한 번 두 번 거듭 느끼는 사이 '헌책방에서 손사래를 치는 책'과 '헌책방에서 반기는 책'을 바라보며 눈썰미를 높이고, 이러한 눈썰미를 갈고닦으면서 책에 깃든 땀방울 하나 살가이 받아먹는 책밭을 가꿀 수 있다. '아름다운 가게'가 스스로 살가운 책밭을 가꾸려는 마음가짐이라면 올바르게 헌책방 일을 붙잡을 노릇이지만, 이런 마음가짐을 꿈에도 품지 않는다면, 부디 욕심 부리지 말라고 한 말씀 올리고 싶다.

 

(094) 새로운 책을 만드는 까닭 : 그동안 세상에 나온 좋거나 훌륭한 책이 참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구태여 새로운 책을 세상에 다시 내놓다. 지난날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좋은 책이 많기는 하지만, 지난날 책은 지난날 형편을 알맞게 살피며 낸 책이고, 오늘 새로 내는 책은 오늘날 형편을 알맞게 살피며 내는 책이기 때문일까. 그래서 앞으로는 앞날을 살피며 또 다른 책이 나올 수밖에 없을까.

 

 나 또한 새로운 책을 꾸준히 장만하여 읽고 또 읽고 새로 읽는 모습을 돌아본다. 그동안 나온 좋거나 훌륭한 책은 '그 책 하나로 모든 일과 이야기를 끝내라'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책을 밑거름으로 삼아 더 아름답고 알맞는 길을 찾고 살피라'는 목소리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좋거나 훌륭한 옛책 하나가 있으면 있을수록 새로운 책은 더더욱 많이 나올 수 있고, 이 새로운 책들을 다시금 밑거름으로 삼으며 우리 스스로를 더욱 가다듬고 갈고닦는 새로운 책이 꾸준히 이어갈 수 있구나 싶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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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책말, #책이야기, #서평, #책, #헌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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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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