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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예수전〉
▲ 책겉그림 김규항의 〈예수전〉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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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예수는 자신의 뜻을 받들 책 한권도 남기지 않았다. 단지 그를 추종하는 집단이 '예수의 전기'를 펴냈을 뿐이다. 신약성경의 4복음서인 마태오·마르코·루가·요한복음서가 그것이다. 그것이 예수의 행적을 바르게 뒤좇도록 해 주는 이로움도 있지만, 한쪽에 치우치거나 외고집 예수를 만드는 어색함도 있다.

'예수의 전기'가 주는 이로움은 참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다양한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것이 부한 자들로부터 자발적 가난을 이끌어 내기도 하고, 힘없는 군중들에게 비폭력무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젖먹이 아이들이 독사와 장난쳐도 물지 않는 살갑고도 가슴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김규항이 마르코 복음서를 통해 묵상하고 쓴 <예수전>도 그렇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위해 일생을 다한 예수에게서, 가난과 폭압의 굴레에서 숨 막혀 사는 유대인민과 같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할 수 있도록, 부자와 기득권층에 속하는 유대 지도층과 같은 인사들이 자발적인 가난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 변화의 지평을 열어나간 것을 일깨워 준다.

총 16장으로 구성돼 있는 마르코 복음서에는 예수의 출생이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도 없이, 그저 복된 소식의 길을 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혈연이나 지연이나 학연 따위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모두가 흐뭇해 할 수 있는 복된 소식으로 포문을 연 것이다.

그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 이후 승천 때까지, 모든 활동의 중심은 하나님 나라의 운동에 있었다. 하나님 나라는 외고집 보수 분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죽어가는 저 세상만이 아니다. 현실 세계의 나라와 영토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나라는 한낱 개미에게도 생존의 존중이 주어지듯, 이 땅 모든 사람에게 참된 주권과 인권과 평화가 임하는 나라다.

그렇지만 유대는 로마의 지배속국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유대 인민들은 로마와 결탁한 유대 지도층 인사들의 권모술수로 더 고통스런 지옥을 보내야 했다. 더욱이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사제들이 권력과 부에 놀아나고 있었으니, 그들의 등쌀에 하층민들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중심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펼친 것이다. 그것이 그 당시에 기존지배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위협의 대상이었기에,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형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부활을 통해서 그가 추구한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그리고 지금껏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입증해 준다.

김규항이 묵상하고 새김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지배와 억압의 포로 같은 굴레에서 해방을 맛보는 나라, 인간이하로 취급받는 짐승 같은 삶에서 참된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 제도적인 자본주의의 피해로 인해 부자와 가난한 자가 끝까지 지속되는 세상이 아니라 그 틀을 허물어트릴 수 있는 나라, 어린 아이들에서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어지러움을 위해 함께 아파하고 토론할 수 있는 그런 나라다.

"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런 외형적 성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두 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하나는 외형적 성장과 운동의 정체성의 훼손이 비례하는 경향이다. 또 하나는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기존의 사회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운동의 껍데기는 커졌지만 정작 운동의 알맹이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 비대한 운동 조직이 사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운동 조직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62쪽)

탄성을 자아내는 깨달음이다. 예수가 추구한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운동들이 모두 외형적인 성장에만 눈먼다면 정체성과 함께 많은 모순을 안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의 운동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그 지평을 활짝 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늘 정체성과 목적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안과 밖을 스스로 경계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예수전

김규항 지음, 돌베개(2009)


태그:#김규항, #하나님 나라의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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