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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자형으로 구부러진 골짜기 풍경
 S자형으로 구부러진 골짜기 풍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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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들은 지룡산만 오르겠습니다. 도중에 내려오는 길 있나요?"
"그럼요, 지룡산을 오른 다음 쌍두봉, 황등산으로 가는 길에 배넘이재에서 왼편 길로 내려가시면 됩니다"

그럼 됐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고 모처럼 여유로운 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북 청도에 있는 지룡산 산행을 위해 어느 산악회를 따라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우리들은 이 산악회에 두 번째 참가한 신출내기 회원들이었다. 산행은 운문면 신원마을에서 시작했다.

잔디가 곱게 자란 묘지지역을 지나자 곧바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오르막길에도 붓꽃 몇 송이가 곱게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데 산악회 등산객들의 발길이 너무 빨랐다. 숨이 턱에 차고 다리에 힘이 들어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잠깐 서서 숨을 돌린 후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늘(22일) 산행은 6시간 코스라고 했다. 그런데 쌍두봉과 황등산을 오르지 않고 지룡산만 올랐다가 도중에서 내려가는 코스는 4시간 코스라고 했으니 시간 여유는 충분할 것 같았다. 기왕에 산악회를 따라 왔으니 우리들만 뒤처져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예쁘게 피어난 붓꽃
 예쁘게 피어난 붓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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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천천히 올라가노라니 여성등산객 두 사람과 후미대장이 뒤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저들과 함께 천천히 올라가도 되려니 하며 뒤돌아 보니 산 아래 펼쳐진 골짜기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S자 형으로 굽이도는 두 개의 골짜기가 모아져 하나의 커다란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절벽 오름길 악마의 울부짖는 듯한 바람소리에 기가 질려 다리에서 쥐가 나다

산 아래 굽이도는 아름다운 골짜기를 바라볼 수 있는 몇 개의 안부를 지나자 지룡산 첫 번째 봉우리를 오르는 절벽지대가 눈앞으로 다가선다. 절벽지대는 보통 5~10여 미터 높이의 오르기 까다로운 바윗길에 밧줄이 걸려 있었다.

밧줄과 바위모서리를 붙잡고 오르는 길이 아슬아슬하다.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도  문제였다. 아직 마른이끼로 뒤덮인 까마득한 바위절벽에 부딪치는 바람소리가 우워엉! 크르렁! 악마의 아우성소리처럼 밧줄에 매달린 일행들을 기가 질리게 한다. 아차하면 바람에 떠밀려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위험을 느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의 절벽 길을 오르자 정상이 나타났다.

첫 번째 봉우리 위에는 커다란 바위 위에 작은 돌무더기 두 개가 쌓여 있는 앞에 '지룡산 658,8m'라고 쓴 작은 표지석에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봉우리에 오른 일행 한 사람이 다리를 만지며 쩔쩔매는 것이 아닌가. 두 다리에 쥐가 난 것이었다.

봉우리를 오르는 절벽 길에서 다리에 너무 많은 힘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그렇잖아도 힘들고 어려운 절벽을 오르는데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와 발을 몇 번인가 헛디딘 것이 그만 다리에 쥐가 나게 된 원인이었다. 곧 일행이 배낭에서 뿌리는 스프레이 물파스를 꺼내 쥐난 다리 부위에 뿌렸다.

거센 바람이 부딪쳐 악마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던 바위벼랑
 거센 바람이 부딪쳐 악마의 울부짖는 소리처럼 들렸던 바위벼랑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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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쥐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상태가 너무 심했던가 보았다. 우리가 쩔쩔매고 있을 때 뒤쫓아 올라온 후미대장이 다가왔다. 그는 곧 배낭에서 작은 침을 꺼내 발가락마다 끝을 찔러 피 한 방울씩을 흘리게 했다. 그때서야 일행의 얼굴에서 고통의 빛이 사라졌다. 쥐난 다리가 풀린 것이다.

가까스로 다리에 쥐가 난 것을 풀고 우리 일행들도 천천히 뒤를 따랐다. 그때 저만큼 앞에서 많이 뒤쳐졌으니 빨리 오라는 말이 들린다. 앞장서서 벌써 가버린 줄 알았던 산악회장이었다. 곧 뒤따라가겠노라는 우리의 말을 듣고 그녀도 곧 시야에서 멀어졌다.

이제 뒤쳐진 사람은 우리 일행 세 명과 다른 세 사람 등 여섯 명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산행에 방해 될 일은 없었다. 우리는 2시간 빠른 코스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능선길을 걸으며 산 아래쪽을 바라보니 골짜기 평지에 자리 잡은 운문사가 아스라하다. 산자락에는 운문사의 부속암자인 내원암과 북대암도 바라보인다.

왜 비구니 사찰은 골짜기 물이 많이 흐르는 평지에 세웠을까?

"제가 산을 참 많이 다니는 편인데 산에 갈 때마다 느낀 건데요 절이나 암자들 중에서 유명한 남자 고승들이 있는 절은 대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반면에, 여승들이 수행하는 절은 골짜기 물이 많은 곳에 자리 잡은 것이 보편적인 것 같아요, 조금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냥 우연인지도 모르지만…."

멀리서 바라본 지룡산 봉우리
 멀리서 바라본 지룡산 봉우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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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대장인 40대 중반의 남성이 불쑥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불교신자인 듯했다. 그러나 우리도 산을 많이 찾는 편이지만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아서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우선 저 아래 골짜기에 바라보이는 운문사가 그렇지요. 저 절은 비구니 사찰이거든요. 그리고 수덕사도 그렇고, 계룡산의 동학사도 그렇고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런데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비구니 사찰은 여성들이 수행하는 곳이어서 평탄한 터를 찾다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닐까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럴듯한 말이었다. 저마다 그럴듯한 이유를 생각해냈지만 정말 왜 그런지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에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운악산 현등사는 산 중턱이잖아요?"
"운악산 현등사도 비구니 사찰이지요? 그런데 그 절이 산 중턱 맞나요? 조금 높은 곳이긴 하지만 역시 물이 많이 흐르는 골짜기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요."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지난해 가을에 찾은 운악산에서 만난 현등사 바로 앞 골짜기엔 정말 많은 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모두 맞거나 틀렸다고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많은 산과 사찰들을 둘러보았지만 그런 쪽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룡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운문사
 지룡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운문사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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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가 우리들 일행 3명이 자꾸 뒤쳐진다. 다리에 쥐가 났던 일행이 아무래도 다리가 불편하여 걸음이 느렸기 때문이다. 능선길 앞으로 상당히 높은 봉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룡산 상봉이었다. 해발 829미터, 상봉에 오르자 7명의 산악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들까지 합류하자 10명이 되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참으로 멋있고 시원하다. 앞쪽으로 높이 솟아 있는 우람한 능선으로 이어진 봉우리는 영남알프스의 주산인 가지산이었다. 오른편의 뾰족한 봉우리는 운문산, 그리고 가지산 왼편에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가 우리와 함께 산행을 시작하여 앞장서 올라간 일행들이 오르고 있는 황등산이었다.

"우와! 저 황등산 봉우리 올라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네요. 거의 골짜기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야 되잖아요?"
"그렇습니다. 저 골짜기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야 하기 때문에 580미터는 올라가야 합니다. 지친 상태로는 상당히 힘든 코스죠, 게다가 굉장히 가파른 오름길이거든요"
"어이쿠! 큰일 날 뻔 했네. 이 팀에 끼었기 망정이지 저쪽 팀에 끼었다간 어떻게 됐겠어?"

나이 들어 보이는 등산객 한 사람이 그쪽 팀으로 따라가지 않은 것이 무척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6시간 코스라지만 오르내림이 심한 산이어서 여간 힘든 산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등산객들을 죽기 살기 팀과 룰루랄라 팀으로 나누다

"왜 산을 그렇게 죽기 살기로 기를 쓰고 올라가지요? 이렇게 룰루랄라 여유로운 산행이 좋은데."

여성 등산객 한 사람이 너무 힘든 산행은 싫다고 한다. 여유롭게 즐기며 산행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함께 산행한 룰루랄라팀
 함께 산행한 룰루랄라팀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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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우리 등산객들이 두 팀으로 나뉘었으니까 각각 이름을 붙여볼까요? 지금 저쪽 황등산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 팀은 '죽기 살기 팀' 여기 남아 중간 능선길을 타고 내려갈 팀은 '룰루랄라 팀' 어때요?"
"우와 좋은 이름이네요. 정말 딱 맞는 이름이에요."

내가 이름을 붙여주자 모두들 좋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 후미그룹 10명에겐 여유롭고 느긋하게 산행을 하며 '요산요수(樂山樂水)' 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담은 '룰루랄라 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자! 그럼 천천히, 안전하고 즐겁게, 그리고 멋진 경치 두루 둘러보며 내려갑시다. 저 아래 폭포가 있는 곳을 거쳐 내려가겠습니다."

이번엔 후미대장이 앞장을 섰다.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길이었다. 조심조심 내려가다가 폭포를 만났다. 그러나 이게 웬일, 높은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폭포는 오랜 가뭄으로 말라 있었고, 겨우 어린아이 오줌줄기 같은 물줄기 하나가 우람한 폭포의 위용을 초라하게 지키고 있었다.

천문사 대웅전과 마당가에 세워놓은 불상
 천문사 대웅전과 마당가에 세워놓은 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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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를 지나자 골짜기 길이었다. 골짜기 하류로 내려오자 물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 하류 한 부분에 천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찰 앞마당에 들어서자 근래 벌인 공사의 흔적이 역력하다. 새로 지은 건물 한 채는 한식집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마당가에는 특이한 모양의 불상 몇 개가 안치되어 있고 경내는 조용하기만 했다. 마당가에는 수많은 옹기항아리들이 즐비한 장독대가 예스럽다. 천불전도 대웅전도 굳게 잠긴 모습이었다. 절집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돌을 깎아 세운 듯한 역시 특이한 모양의 일주문 뒤쪽으로 황등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웅장하다.

버스는 도로가 지나는 마을 길가에 세워져 있었다. 버스에 올라보니 황등산을 올랐던 죽기 살기 팀 등산객 몇 명이 우리들보다 먼저 내려와 있는 것이 아닌가. 놀라운 모습에 일행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정말 대단한 등산실력이었다.

특이한 모양의 천문사 일주문과 뒤로 바라보이는 황등산
 특이한 모양의 천문사 일주문과 뒤로 바라보이는 황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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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을 넣고 비빈 비빔밥과 홍어회 미역국과 막걸리 등 푸짐한 뒤풀이상
 나물을 넣고 비빈 비빔밥과 홍어회 미역국과 막걸리 등 푸짐한 뒤풀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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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죽기 살기 팀들은 실력이 대단하네요."

우리 일행 한 사람이 황등산 등산객에게 농담을 하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처음 듣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팀에서 먼저 내려와 있던 다른 사람이 사정을 말해주자 그때서야 빙긋 웃는다. 음식은 길가에 있는 음식점 '복숭아 꽃 살구꽃'에 차려 놓고 있었다. 장소만 빌린 것이다.

곧 산행 뒤풀이가 이어졌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은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세 종류의 나물무침과 홍어회를 곁들인 저녁이었다. 힘든 산행을 마친 회원들이 나물과 고추장 참기름으로 밥을 비벼 맛있게 먹는다. 더구나 홍어회와 쇠고기 미역국까지 곁들이니 그 맛이 가히 꿀맛이었다.

"오늘 모두 무사히 산행을 마친 여러분들 참 대단하고 멋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황등산을 오른 여러분들도 대단하지만 룰루랄라 산행을 즐긴 여러분들이 더 멋지십니다. 자! 건배합시다!"

푸짐하고 맛있는 저녁에 홍어회를 안주 삼아 마시는 뒤풀이주 한 잔이 모두를 즐겁게 하고 있었다. 마침 음식점 안 한쪽에 풍물놀이 기구들인 징, 장구, 꽹과리가 보인다. 내가 꽹과리를 집어 들고 '진오방진' 한 가락을 모두에게 선사했다. "얼쑤!" 누군가의 추임새가 등산객들의 흥을 돋워주고 있었다.

동산리 처진 소나무
 동산리 처진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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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매전면 동산리에 있는 '처진 소나무'를 잠깐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소나무는 옛날 어느 정승이 지나갈 때 스스로 가지를 숙여 인사하듯 했는데 숙인 그대로 다시 올라가지 않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었다.

높이 14미터에 수령이 2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가지들이 수양버들처럼 밑으로 늘어져 있는 모습이 여긴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유송이라고도 불리는 이 소나무는 이렇게 아주 특이한 모습이어서 천연기념물 295호로 보호받고 있는 소나무였다.


태그:#죽기 살기, #룰루랄라, #이승철, #지룡산, #요산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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