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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상을 받고 누룽지 삶은 구수한 숭늉을 한 그릇 비우고 나니, 아내가 하다만 설거지거리가 눈에 들어 옵니다. 시험 기간이라 바쁜 마음이지만 소매를 걷고 설거지를 했습니다.

경남 하동 시골 마을에서 매실 농사를 지으며 민박업을 하고 있는 제 집에는 무시로 손님들이 찾아듭니다. 손님들의 밥상을 차리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은 참 즐겁지만, 설거지 할 때는 힘이 든다는 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은 후로, 설거지는 주로 제가 합니다. 그 시간에 아내는 손님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하지요. 남편이 설거지를 해 줘서 기분이 좋아진 아내한테 불쑥 한 마디 했습니다.

"여보, 나 5만원만 줘."

설거지를 할 때는 분명 대가성이 아니었는데, 타이밍 때문에 영락없이 대가성 설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이 요즘 체육대회 준비한다고 고생인데, 음료수라도 사 마시라고 줘야 겠어. 아들 생각이 나서 그래."

아들 생각이 나서 그런다는 말에 아내는 두 말 않고 돈을 건넵니다. 거기에 늦깎이 대학생이 된 남편의 용돈까지 얹어줍니다.

늦깎이 대학생 남편 "여보, 나 돈 5만원만"

아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채근을 하던지 덜렁 올해 새내기 대학생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의 예술대학 전경입니다.
 아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채근을 하던지 덜렁 올해 새내기 대학생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의 예술대학 전경입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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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들이 대학교에 입학을 하자 아내는 내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졸랐습니다. 아들이 고3일 때, 격려 차원에서 '아빠도 준비해서 대학교에 갈게'하고 약속을 하긴 했지만, 나이 쉰 살에 공부라니…. 그러기엔 아내가 떠맡아야 할 짐이 너무 큰 것 같아 망설여졌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채근을 하든지 덜컥 올해부터 새내기 대학생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겹칩니다만,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가 신나고 즐겁습니다. 그러나 과연 아내도 그럴까요. 민박업을 하며 차나 된장을 파는 뻔한 시골살이로, 대학생 둘을 뒷바라지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 탓에 나이 오십에 공부를 하는 게 기분 좋은 일이지만 어디 가서 맘 놓고 자랑도 못합니다. 혹 듣는 사람이 마누라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사람이라고 오해라도 할까봐, 요즘 같은 불경기에 대학 졸업해서 취직할 것도 아니면서 호사스럽게 학교 다닌다 자랑한다고 흉이라도 볼까봐 염려스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배움을 '취직을 위해서'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너른 들판에 풀어 놓으니, 자식같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학교 생활이 모두 공부라고 스스로 위안 삼아 봅니다. 

맘은 기뻤지만, 뻔한 시골살이에 대학생 둘이라니

일주일에 두세번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할 생각입니다
▲ 자전거 일주일에 두세번은 자전거를 타고 통학할 생각입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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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어려운 살림이지만 마음만이라도 힘이 돼 주고 싶어 모든 경제권을 아내에게 넘겼습니다. 돈 버는 일은 함께 거들겠지만, 크고 작은 돈 쓰는 일은 내가 졸업할 때까지 아내가 주관해서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싶어서입니다.

현금인출기에 카드만 넣으면 돈이 나오지만 학교에 입학을 하고부터는 아내한테 "나 돈 좀 줘" 하고 어리광 부리는 재미에 자주 손을 벌립니다. 그래봐야 점심값과 교재값이지만, 주고 받을 때마다 서로 재미있어 합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집에서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왔습니다. 차로 50분이 걸리는 거리인데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걸리는지 탐색을 한 셈이지요. 다행히 자전거가 다니기 좋은 지름길을 찾은 탓에 두시간쯤 걸렸습니다.

평소 자주 타던 자전거라서 두 시간 거리를 왕복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사진도 찍고 건강도 챙길 요량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자전거로 통학을 할 생각입니다.

기름값이라도 아껴 아내의 짐을 덜어주고 싶고 것도 있지만, 오래 농사일을 해 오던 몸이 학교에 앉아 공부만 하려니, 운동량이 모자라는 탓도 있습니다.

4년 채우고 싶은데...칡즙 장사라도 해서 등록금 보태볼까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칡즙장사입니다
▲ 칡즙 장사 제가 마음에 두고 있는 칡즙장사입니다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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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목요일, 시 창작학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 하셨습니다.

"류시화 시인 알지요? 그 시인이 시를 써서 유명해 지기 전에 뭘 했는지 아세요? 길거리에서 솜사탕 장사를 했어요. 솜사탕을 팔면서 사람을 만나고 손님이 없으면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 시를 썼어요. 여러분도 그런 마음으로 시를 쓰는 겁니다. 머리로만 시를 쓰려고 하지말고 가슴으로 쓰도록 하세요. 우리 사는 삶은 모두 시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에서는 "옳지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아내의 짐을 덜어 주려고 휴일이나 방학 기간에는 어디 목 좋은 곳에서 길거리 장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교수님의 이 말이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부터 학교를 오가는 길에 장사할 만한 곳을 눈 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풍광도 좋고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는 곳에서 무슨 장사를 할까 궁리를 하는 걸 보니, 아내한테 마음의 빚을 단단히 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게 공부를 하라고 권유를 한 사람이 아내입니다. 미적거리는 내게 "떡 장사를 해서라도 학비를 대 준다"며 등을 떠민 사람입니다. '떡장사' 한다던 아내는 된장 만드는 일을 시작해서 약속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짐을 아내한테만 지울 수는 없는 일, 요즘 흔히 말하는 '투잡'을 하더라도 짐을 나누어 져야지요. 그래서 생각한 게 칡즙 장사입니다.

본디 살림을 아껴서 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닌 뒤부터는 산으로 들로 다니며 봄나물들을 뜯고, 두부까지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서 밥상에 올립니다. 남편 공부하라고 등을 떠민 탓에 힘들어도 내색을 않는가 싶어 저녁이면 팔다리를 주물러 주지만 미안한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대학생들은 '반값 등록금' 요구하면 삭발하는데

소 한 마리만 팔아도 한 학기 등록금이 된 때가 있었지요
▲ 소 소 한 마리만 팔아도 한 학기 등록금이 된 때가 있었지요
ⓒ 공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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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집에 왔다 가는 아들한테 용돈을 주니 "어머니, 여름방학에는 아르바이트 할게요"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사립대학이라 일년에 천만원 가까이 등록금을 내야 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아들도 부담이 되는 모양입니다. 돈 걱정하지 않고 맘껏 공부할 나이에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안쓰럽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때가 된 것 같아 반갑고 기쁘기도 합니다.

'반값 등록금 공약'을 실천하라고 학생들이 청와대 앞에서 단체로 삭발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자식을 대학에 보낸 부모 입장에서 기사를 읽으니 가슴이 더 아픕니다. 그 친구들이 곱게 기른 머리를 자르는 그 시각, 그 또래 다른 학우들은 주유소나 편의점, 또는 식당에서 부모님의 짐을 덜기 위해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소 한 마리, 귤나무 몇 그루만 있어도 자식 대학 보내던 시절이 다시 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반값 등록금"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 학생들이 마음놓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교육풍토를 만들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태그:#반값등록금, #칡즙장사, #솜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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