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퀴즈프로에 열광하던 때가 있었다. 딱 영화 속 자말의 나이대였던 것 같다. 유쾌하고 깔끔한 진행으로 퀴즈쇼를 더욱 빛냈던 임성훈 아저씨와 함께 <생방송 퀴즈가 좋다>는 그렇게 일요일 오후 나와 우리 가족을 TV앞에 모이게 했다. 방송을 보며 초반 몇 문제들을 맞히자 '나도 한번 저기 나가봐'하는 오만 방자한 생각을 하며 '퀴즈의 달인'을 꿈꾸던 그때! 아 좋은 시절이었다 라고 하기엔 내가 아직도 어리구나.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이렇게 나의 어린시절 추억을 끄집어 내며 내 옆구리를 콕 찌른 영화다.

 

 비카스 스와루프의 『Q&A』를 원작으로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소재 자체의 흥미로움과 더불어 추리플롯과 같은 리듬감 있는 극의 전개방식으로 관객을 들었다놨다 한다. 여기에 인도 출신 작곡가인 A.R 라흐만이 만들어낸 음악은  관객들의 흥을 돋구며 영화를 완성시킨다.

 

 영화는 인도의 인기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에서 최고 상금을 차지한 18세 소년 자말을 의심하면서 부터 시작한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빈민가 출신에 차 심부름꾼인 자말이 어떻게 최종 문제까지 맞히며 어마어마한 상금을 획득할 수 있었냐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그러나 자말을 이러한 궁지에 몰고 간 것은 한 개인이며 이것은 확대되어 남 잘 되기를 배아파하는 다수의 사람들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다수는 이미 부와 명예를 획득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자말의 진실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맞춘 문제들의 정답을 어떻게 알 수 있었는지. 그가 천재라서? 아니면 천운을 가진 행운아라서? 영화는 자말의 진실을 현재와 과거 어린시절을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그의 7살, 13살, 그리고 현재가 되기까지 인도 뭄바이 슬럼독에서 겪어왔던 일들을.

 

 영화는 자말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서 인도의 과거와 현재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노력한다. 쓰레기 더미속에서 생필품을 찾는 모습, 그 곳에서 해맑게 뛰어노는 아이들, 종교문제로 인한 살인, 어른들의 밥벌이를 위해 희생양이 된 아이들, 세계의 중심을 향해 발전하고 있는 인도의 진짜 모습들. 대니 보일 감독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인도의 '그대로'를 보여주려 한다.

 

 이렇게 자말의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관객들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운명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운명의 중심에는 어린시절부터 이어져 온 자말과 라띠까의 사랑이 있다. 과거와 현재와의 교차가 끝이 나고 현재의 상황만이 지속되면서 관객은 이제 누구나 자말을 응원하며, 자말의 운명을 확신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이루길 바란다. 그것은 영화 속에서 자말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같은 마음이다. 자말은 그렇게 모든 이의 희망으로 그 상징성을 띠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희망을 주고 신나게 막을 내리지만 한 편으로 아쉬움을 남기는 면도 없지 않다. 자말이 한 사람의 밀고로 어이없으리 만큼 심한고초를 당하는 상황은 다소 흡입력이 떨어졌고, 자말과 살림(자말의 형), 라띠까에 얽힌 이야기는 조폭을 소재로한 한편의 인도판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킨다. 인도가 배경이고 인도 배우들이 주인공이지만, 할리우드적 구성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건 뭐 마지막에 뒷통수치는 거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대니보일의 영상감각은 충분히 느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니 더이상 고민하지 말고 극장으로 가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www.cyworld.com/whdkwhdk119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9.03.27 17:31 ⓒ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http://www.cyworld.com/whdkwhdk119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백만장자 퀴즈쇼 대니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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