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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행(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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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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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전체 식구가 20여 명인데 정말 저희에게는 소중한 돈입니다.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저희 전체 식구가 굉장한 고생을 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니, 제발 돌려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답변 좀 부탁드립니다."

대전에 소재한 컴퓨터시스템 납품업체 '타임시스템'의 최광일 이사가 최근 각종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올린 글 중 일부다. 최광일 이사는 "2년 전 저희 직원의 실수로 이름이 비슷한 회사로 물품 대금(3000만 원)을 잘못 송금했다"며 "(돈이 입금된) 국민은행에서는 자신들의 압류통장에 들어온 돈이라면서 안 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타임시스템은 현재 잘못 입금된 돈을 받기 위해 국민은행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이 사연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일제히 국민은행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나라'니, '국민'이니, '민족'이니, 아무나 이런 말 못쓰게 하자. 국민은행은 딴국민은행으로 즉시 개명하라." (이경석)
"국민을 위한 은행이 아닌 국민을 등치는 은행이로구나. 국민은행에서 초등은행으로 바뀌어야겠네~." (박무성)
"김연아, 박태환 마케팅으로 올려놓은 이미지 이런 식으로 추락시키다니, 광고 찍은 비용이 아깝다." (변지영) 
"직원분 어떻게 해요. 아, 그분 심정 얼마나 미칠까요." (최정인)      

그러나 국민은행의 태도는 확고하다. "실수라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에 법원에 소송이 제기된 만큼 법원의 결정대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직원 실수로 잘못 입금... 국민은행 "오입금이라는 판단 어려워"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타임시스템은 지난 2007년 3월 19일 물품대금 2828만1000원을 A기업의 통장에 잘못 보냈다. 원래는 B기업에 보낼 예정이었으나 영업사원과 경리직원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실수로 비슷한 이름의 A기업 통장에 입금했다. A기업과 B기업의 이름은 앞부분 네 글자가 똑같은데, 영업사원이 앞부분 네 글자만 일러주는 바람에 경리직원이 혼동한 것이다.

다음날 B기업으로부터 "입금이 되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실수를 확인한 타임시스템은 곧바로 국민은행 측에 돈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A기업의 통장은 20억 원 이상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해 국민은행에 의해 1년 넘게 압류가 돼 있었던 것이다. 국민은행은 "입금된 돈을 우리 채무와 상계하겠다"며 돌려주길 거부했다.

타임시스템은 이틀 뒤 법원에 A기업 통장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했고, 같은 해 6월 가압류 확정 판결을 받아냈다. '제3채무자인 은행은 입금된 돈을 사용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다음달 국민은행은 "일단 돈이 A기업 통장으로 들어오면 그 돈의 주인은 A기업으로 바뀌는 것이고, A기업의 채권자인 은행은 그 돈을 가져갈 권리가 있다"며 통장에 있던 돈을 빼갔다.

타임시스템은 다시 같은 금액의 물품대금이 명시돼 있는 B기업과의 거래 견적서 등을 국민은행에 제시했다. 견적서에는 2860만 원이 명시돼 있지만, 대금을 조금 깎아 2828만1000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타임시스템은 "견적서 내용의 사실 여부는 B기업에 물어보면 금방 확인된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B기업이 아니라 A기업 책임자를 데려와서 오입금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타임시스템은 A기업 책임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이미 1년 전에 부도처리가 된 회사 임직원이나 관계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번번이 국민은행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타임시스템은 결국 지난해 8월 이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다. 국민은행은 "사안이 애매하다"면서도 여전히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런 경우는 송금자와 예금주, 은행 3자가 모여서 따져보고 잘못 입금됐다고 판단되면 해결될 문제인데, 지금으로서는 예금주가 없는 것 아니냐"며 "그럼 은행에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나중에 예금주가 나타나서 돌려준 것에 대해 항의하면 뭐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국민은행 측은 '고객의 입장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은 대출금이 미납됐을 경우 예금주가 '내 돈 아니다'고 주장하기 전에는 대출금을 빼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연체 이자가 늘어나서 오히려 예금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기본 입장은 오입금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의 공정한 판결에 따르겠다는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은행 측은 법원의 중재조차 거부한 상태다. 지난 25일 법원의 판사는 양측을 불러 '오입금이 맞는 것 같은데, 양측이 절반씩 양보하는 게 어떠냐'고 조정에 나섰지만, 국민은행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2007년 12월의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잘못 입금된 돈을 모두 가져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법원은 원고 C사가 "계좌번호를 착각해 잘못 송금한 돈을 돌려달라"며 D은행을 상대로 낸 오입금 반환청구 소송에서 "입금의 효력은 유효하며, 은행이 송금의뢰인에게 돈을 돌려줄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타임시스템이 실제 물품 대금을 지급하려했던 B기업과의 세금계산서(사진 위). 타임시스템이 잘못 입금한 통장내역서.(사진 아래)
 타임시스템이 실제 물품 대금을 지급하려했던 B기업과의 세금계산서(사진 위). 타임시스템이 잘못 입금한 통장내역서.(사진 아래)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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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직원 한 달 월급과 맞먹는 큰돈인데..."

때문에 타임시스템은 이번 소송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 입금된 돈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자세다. 직원 수 2만6000명, 작년 당기순익 1조5000억 원의 국민은행에게 3000만 원은 '껌값'일지 모르나, 직원 20명의 중소기업에게는 '거액'이라는 것이다.  

최광일 이사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연간 매출 40억∼50억 원, 연간 순이익 4억∼5억 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에 3000만 원은 일반 직원 한 명의 연봉보다 많고, 전체 직원의 한 달 월급과도 맞먹는다"면서 "회사 전체 식구가 굉장한 고생을 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누리꾼들이 실수를 한 여직원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데, 실수 한 번 했다고 자르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며 "국민은행도 직원 실수로 (고객 통장에) 잘못 입금시켜놓고 돈 돌려받아가면서, 우리한테는 그렇게 모질게 할 수 있느냐"고 토로했다.

"국민은행이 저희 회사와 한 번도 거래를 하지 않은 은행이었다면 또 모르겠다. 초창기부터 주거래 은행이었기 때문에 더 억울하다. 만일 우리 회사가 중소기업이 아니라 중견기업으로서 은행에 몇 백 억씩 두고 운영했던 회사라면 국민은행이 그랬겠나? 지금 와서 보면 그동안 돈 많이 못 번 게 너무 억울하다."

타임시스템은 소송을 진행하면서 주거래 은행을 국민은행에서 다른 은행으로 옮기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최 이사는 "인터넷을 통해 저희 사정을 알린 뒤, '은행들로부터 같은 일을 당했다'는 내용의 전화가 여러 곳에서 걸려왔다"며 "주거래 은행을 옮긴다 해도 은행에 대한 불신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태그:#국민은행, #타임시스템, #송금 실수, #중소기업, #오입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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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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