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화해 무드가 무르익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78) 전 소비에트 연방 대통령은 지난 20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부통령과 비공개 회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24일과 25일(현지시간) 이틀에 걸쳐 워싱턴 근교, 북버지니아에 위치한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1989년 :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론회를 열었다.
조지 메이슨 대학에 찾아온 고르바초프
1989년은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후 동유럽 및 소비에트 연방의 개방과 나아가서는 사회주의 권력의 붕괴를 가져온 중대한 역사적 시점이다. 물론 이 배경에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은 당시 일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통해, 소비에트 연방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민주주의(정치비판 허용과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40 여년의 냉전 시대를 종식시키고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한 셈이다. 1990년의 노벨 평화상은 그의 업적에 대한 세계의 답변이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은 인류의 가장 큰 정치적 실험이자 하나의 대안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는 점에서 전 세계 진보운동의 침체를 수반하기도 하였다.
고르바초프는 "그 당시 전 세계의 평화구축과 질서재편의 좋은 기회가 주어졌으나 미국의 (냉전) 승리 콤플렉스와 우월감으로 인해 그 기회가 계획했던 대로 적용되지 못했다"고 그 동안 미국이 보인 태도를 비판했다. 미국이 '아메리칸 엠파이어'를 건설하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미국이 이라크전을 벌이는 데 유엔의 승인도 필요 없었으며, 젊은 부시는 이라크전을 마치 케이크 먹듯이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그 결과 계속적인 군비경쟁과 핵무기 확산(북한, 이란 등), 나아가 '국제관계의 군사화'가 팽배하게 되었다고 고르바초프는 분석했다.
특히 고르바초프는 "세계 평화는 우선 함께 서로 이야기를 듣고 이해·존중함으로써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서 최근 오바마 대통령과 만남을 의미 있게 평가하였다. 이어서 그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매우 젊고 똑똑하며 진지한 대통령과 함께 긴장 상태의 국제 관계와 전 지구적 경제 위기를 잘 극복할 것이며, 이는 다른 모든 나라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세계의 허파 아마존과 시베리아 보존 중요"
고르바초프는 특히 전 세계가 직면한 몇 가지의 도전(안보와 테러리즘, 빈곤과 퇴행 등) 중에서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문제가 가장 시급하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기후 변화의 문제에는 아마존과 시베리아와 같은 세계의 허파를 잘 보존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가 (미국의 탈퇴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에는 별로 중요치 않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다르다"면서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이 전면에 내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 정세 변화 속에서 중요한 지위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인도, 러시아와 더불어 미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또한 국제 사회의 협력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두 번에 걸쳐 환경문제는 제1의 문제, 최우선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환경이 정치의 주요 화두로 등장한 것은 물론 오래되었지만, 이제 이것은 대세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내세우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세 가지 과제(클린 에너지, 의료보험, 교육)에서도 환경 문제는 가장 우선적이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인 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 대처와 대체 연료 개발은 '저탄소 녹생성장'과 같은 수상한 구호로 치장한 새로운 돈벌이나 정치적 주도권 확보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고르비는 마치 환경운동가처럼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제 20년 전 세계가 그에게 수여한 노벨 평화상에 그가 답해야 할 때다.
과거를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질문에 그는 낭만적이게도 "20대 초반에 아내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한 것"이라는 답했다. 그가 지니고 있는 순수함만큼, 그의 새로운 도전이 전 지구적 위기의 극복에 보탬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상민 기자는 조지 메이슨 대학 박사과정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