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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간식코너도 이젠 무심코 지나친다.
 휴게소 간식코너도 이젠 무심코 지나친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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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가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로 들어서는데 멀리서도 부산한 움직임이 한눈에 보였다. 휴게소 오른쪽 쉼터, 사각으로 배치된 벤치를 몽땅 차지한 나들이객들은 한창 신나게 식사 중이었다. 한 20명쯤, 아니 그 이상은 되는 거 같다.

커다란 들통엔 국이 들었는지 스티로폼 일회용 그릇이 들고나고, 비닐로 감싼 네모난 종이 박스 옆에는 호일 접시가 연신 드나든다. 그뿐 아니다. 소주병과 술잔도 주거니 받거니, 일행들 모두 흥이 난 모습이다. 우리는 구경꾼이 되어 차를 세우고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많은 인원의 식사를 챙겨오다니, 참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감탄하면서.

우리네 식사에 챙겨야 할 게 좀 많은가. 그걸 다 어떻게 준비해 왔을까. 참 놀랍고도 대단하다. 아예 주방을 하나 들어다 놓은 것 같다. 좀 심하다 싶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불황인 것이다.

새벽같이 집을 나서자면 아침밥을 먹고 나오기 힘들었을 거고 그 많은 인원이 아침까지 사먹으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테니, 이러쿵저러쿵 의논한 끝에 직접 장만해 가면 돈도 덜 들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을 거란 계산을 했을 것이다.

사실 그러고 싶은 심정은 우리에게도 있었다. 다만 음식을 만들고 짐을 싸고 하는 일이 번거로워 그냥 집에서 간단하게라도 먹고 나오는 게 낫겠다 싶어 그리한 것이지.

"다음 주에는 나주에 가자, 한 2박 3일루다."

그 말을 꺼낸 지 한 달 만에 진짜 나주로 여행을 떠난 길이었다. 말은 꺼내 놓고도 주말이 다가오면 남편은 은근슬쩍 말을 돌렸다. 거리가 너무 멀어 힘들다거나, 시야가 좋지 않다거나, 하는 괜한 핑계를 대면서. 말은 그렇게 하지만 속사정은 다른 데에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여행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것. 직업이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안 갈 수는 없는데 아무래도 먼 거리는 쉽게 결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주 여행을 떠나니, 남들은 신나겠다며 부러워하지만, 또 우리 자신도 길을 나서면 어린애가 된 것처럼 신나지만, 점점 늘어가는 여행비는 적잖은 부담이다.

예전에는 여행에 따른 비용이야 사람이 다니면 부차적으로 붙는 세금 같은 거니, 항상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다녔다. 하지만 어느 날 휘발유 값이 치솟기 시작하더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황이 닥쳤다. 자연히 생활비도 더 드는데다 여행비 또한 만만치 않게 올라버렸으니 우리에게도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이건 단순히 상점에서 파는 물건값만 오른 게 아니었다. 고속도로 통행료는 기본인데, 그 비싼 민자 고속도로는 하나 둘 늘어났고, 입장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사람이 많이 붐비는 문화재에는 입장료에 주차비까지 따로 받는 곳이 늘어났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고속도로가 한산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여행비에서 줄일 부분은 별로 없다. 맛집 정보가 필요하니 맛집은 꼭 방문해 먹어 봐야 하고, 그렇다고 휘발유를 줄여 쓸 수도 없고, 숙박비를 더 저렴하게 할 방법도 없다. 더러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찜질방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아무 데서나 잠이 오지 않는 예민한 성격인지라 다음 날 피곤할 생각을 하면 도저히 내키지가 않는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내 간식이 되어주었던 것은 휴게소에서 파는 호도과자였다. 처음 들르는 휴게소에서 2천원짜리 호도과자 한 봉지를 사고 500ml짜리 물도 한 병 산다. 그리고 휴게소에 설 때마다 먹고 싶은 과자도 편의점에서 구입해 먹었다. 저녁은 조금 이르더라도 휴게소에서 때웠다. 여행으로 지친 상태인데 저녁 준비까지 하기가 번거로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다. 여행 떠날 준비를 미리미리 해 놓는다. 간식으로는 귤이나 과자를…. 마트에 갔다가 알뜰과일이라며 모아놓은 귤을 사오고 스낵류도 기획 상품으로 나온 것을 적당히 골라서 사다 놓는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힐 때, 또 졸음이 온다고 느낄 때 먹는 심심풀이 간식들이다.

여행 준비물이 늘었다. 그래야 비용이 덜 들어가니까...
 여행 준비물이 늘었다. 그래야 비용이 덜 들어가니까...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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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커피도 준비해가기 시작했다. 보온병을 끓는 물로 한 번 헹구어 내고 끓는 물을 가득 채워가면 여간해서 물이 식지 않는다. 거기에다 커피 믹스 몇 개와 컵, 티스푼까지 챙겨 가면 차 안에서도 알뜰하게 커피타임를 즐길 수 있다. 이 방법은 휴게소 커피가 500원 오른 후부터 시작되었다.

소소한 거였지만 휴게소에서라도 지갑을 열지 않으면 그만큼 절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물 한 병도 집에서 직접 챙겨 나온다. 간식은 집에서 미리 챙겨가고 저녁은 늦더라도 집에 와서 먹으니 휴게소에서 물건을 살 일은 아예 없어졌다.

'휴게소'에서는 쓰레기통과 화장실만 쓰는 얌체 고객이 되었다.
 '휴게소'에서는 쓰레기통과 화장실만 쓰는 얌체 고객이 되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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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휴게소에 들어가면 차에서 생긴 쓰레기는 몽땅 갖고 내려서 휴게소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화장실로 간다. 거기에다 날씨가 춥기라도 하면 휴게소 안 온풍기 앞에 서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있다가 나오기도 한다.

휴게소에는 미안한 일이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는 어쩔 수가 없다. 우리뿐만 아니라 요즘 부쩍 도시락 가방을 든 나들이객들이 늘어났다. 차곡차곡 쟁여진 찬합을 들고 쉼터를 찾는 사람들도 있고 빵과 과일이 든 바구니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이제 나름의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불황이지만 폼나게 견뎌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휴게소에는 영 미안한 일이지만….

덧붙이는 글 | '불황이 □□□에 미치는 영향' 응모글



태그:#고속도로 휴게소, #여행,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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