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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설탕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에 설탕 품귀 현상이 일어나 강서구에 있는 한 대형 마트의 설탕 코너가 텅 비어 있다. (이 사진은 엄지뉴스 #5505로 전송된 핸드폰 사진입니다.)
 지난 8일 설탕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에 설탕 품귀 현상이 일어나 강서구에 있는 한 대형 마트의 설탕 코너가 텅 비어 있다. (이 사진은 엄지뉴스 #5505로 전송된 핸드폰 사진입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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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격 인상은 원가절감으로 가격상승 요인을 버텨내다 한계상황에 부딪쳐 단행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환율 고공행진으로 인한 생존의 문제다."

지난 6일 CJ제일제당은 설탕 출고가를 15.8%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15% 가격을 올린 후, 4개월 만에 재인상이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대형마트 곳곳에서는 '설탕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고,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설탕을 원재료로 하는 가공식품의 물가인상 요인이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CJ제일제당은 환율상승으로 지난 3·4분기 세전손실이 343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4·4분기에도 650억원의 손실을 초래했다며 이번 가격 인상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5일 후인 지난 11일, CJ제일제당이 설탕가격 인상을 유예키로 전격 결정했다. CJ제일제당은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선 데다, 불황으로 인한 서민경제의 어려움을 감안, 고통분담 차원에서 이 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CJ제일제당 스스로도 가격인상 유예 결정을 발표하면서 "최근 환율 급등으로 인해 원가부담이 가중되고 대규모 환차손과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등으로 수익성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대체 지난 닷새 동안 CJ제일제당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설탕값 인상 유예 결정한 진짜 이유는?

밀가루와 원당 등 원자재 거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CJ제일제당에게 환율 급등은 치명적이다. 지난해 11월 설탕값 인상 당시에도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바짝 다가서면서 원가 부담에 따른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박창민 CJ제일제당 과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당가와 환율이 제조원가의 80%를 차지하는데 최근 원당가격의 상승과 환율 급등으로 인해서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인상 결정의 배경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CJ제일제당이 설탕값 인상에 나섰다가 5일 만에 이를 전격 철회한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설탕에 대한 '사재기' 열풍과 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지자 인상 방침을 유보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실제 신세계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이 설탕 출고가를 인상하겠다고 밝힌 지난 6일 이후 설탕 매출이 이전에 비해 3배 이상 뛰었다. 특히 이마트의 경우 주말이었던 지난 7~8일 이틀 동안에만 2억원어치의 설탕을 판매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30% 매출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쌀 때 미리 사두자는 소비자들의 '사재기' 열풍이 그만큼 뜨거웠다는 반증이다. 이 때문에 몇몇 점포에서는 설탕이 일시 동나는 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열근 CJ제일제당 홍보부장은 "사재기 열풍은 이번 가격 인상 유예 결정에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설탕값 인상을 막기 위해 세제혜택 등 정부의 반대급부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일단 물가를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에서 CJ제일제당 측에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사실이다.

이종화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12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주말 CJ제일제당 측에 가격 인상을 당분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환율 상승세가 곧 한풀 꺾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설탕값 인상방침 발표 직후 설탕 수요가 폭증했고,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진정되고 있는 만큼 가격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설득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종화 과장은 "CJ제일제당뿐만 아니라 설탕업체들이 가격을 올리려고 할 때마다 인상 자제를 요청해 왔다"며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비해 연초 각 부처별로 할당 관세 신청을 받는 것 외에는 특별히 개별 기업에 세제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말했다.

이열근 부장도 "정부 측의 지원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면서 "만약 지원책이 나온다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열근 부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12일 "서민생활과 밀접한 업종의 시장지배력 남용 및 담합에 의한 부당한 가격 인상에 대해 집중 감시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우리 회사가 아닌 2차 가공업체가 대상"이라고 일축했다.

이 부장은 이어 "이번 인상 유예 결정은 김진수 사장이 평소에 생각한 것을 밝힌 것"이라며 "경영상으로는 가격 올리는 것이 맞지만, 식품업계 대표기업으로서 다른 기업보다 사회적인 책임을 더 느끼는 차원에서 고민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진수 사장의 '달콤한 유혹'... 언제까지 유효?

사실 가격 인상 결정이 회사 차원에서 준비됐다면 인상 유예 결정은 김진수 사장의 단독 결정이었다. 김진수 사장이 지난 11일 행사장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인상 유예 결정을 밝힐 때까지 회사 내부에서는 관련 내용을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회사 임원들마저 언론보도를 통해 인상 유예 결정을 알게 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식품은 농림수산식품부 소관이지만, 설탕만큼은 지식경제부 소관이다. 그만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관련업계 1위인 CJ제일제당의 설탕 가격 결정력은 막강하다. 삼양사도 설탕 출고가격 인상 방침을 세우고 인상 폭과 시기를 검토하다가, CJ제일제당의 인상 유예 결정 이후 방향을 전환했다.

문제는 김진수 사장이 단독으로 결정한 인상 유예 방침이 얼마나 오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설탕값 인상 유보로 향후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원가부담을 계속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환율상승으로 인해 그동안 약 2000억원의 환차손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열근 부장도 "계속 안 올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환율 변동 추이를 치켜보겠다는 것"이라며 "회사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곧 인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 경제상황을 고려해 고통분담 차원에서 결정했다"는 김진수 사장의 '달콤한 유혹'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CJ제일제당, #설탕값, #김진수 사장, #사재기, #환율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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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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