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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와 사회분위기도 너무 썰렁한 요즘이다. 시절이 하수상해서일까? 한동안 잊고 살았던 안치환의 노래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가 자꾸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노래와 함께 연전에 젊은 나이로 작고한 노동자 시인 박영근의 시 한 수도 떠오른다. 안치환의 노래가사도 이 시가 원형이다.

 

부르네 물억새마다 엉키던

아우의 피들 무심히 씻겨간

빈 나루터, 물이 풀려도

찢어진 무명베 곁에서 봄은 멀고

기다림은 철없이 꽃으로나 피는지

주저앉아 우는 누이들

옷고름 풀고 이름을 부르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어널널 상사뒤

어여뒤여 상사뒤

  <중략>

만나겠네. 엉겅퀴 몹쓸 땅에

살아서 가다가 가다가

허기 들면 솔잎 씹다가

쌓이는 들잠 죽창으로 찌르다가

네가 묶인 곳, 아우야

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

가겠네, 다시

만나겠네.

 

세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들 중에서 소나무만큼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나무가 있을까? 그 소나무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정겨운 소나무가 있다. 높고 험한 산 바위벼랑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서서 몇 십 몇 백 년을 살아왔음직한 노송을 만났을 때다. 그 중에서도 줄기는 붉고 가지들은 청청 휘어진 적송들이 더욱 그렇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산림청에서 10년마다 실시하는 '우리국민의 삼림에 대한 의식조사'에서도 30년 동안 가장 좋아하는 나무의 자리를 지켜온 나무가 바로 소나무다.

 

소나무는 한동안 솔잎혹파리와 재선충이라는 고약한 해충 때문에 시련을 겪어 왔지만 바닷가의 모래밭이나 바위절벽, 산비탈의 넓은 바위 가운데 작은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모습까지, 아주 생명력이 강한 나무다.

 

겨울철의 혹독한 추위와 매서운 바닷바람도 잘 견뎌내며 푸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는 그래서 모진 역사의 시련을 견디며 오늘에 이른 우리 민족정신과도 많이 닮은 나무다. 그래서일까? 우리 민족은 너나없이 소나무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런 정서 때문인지 요즘은 관상수로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다.

 

이 소나무를 '솔'이라며 한자로는 송(松)으로 쓴다. 이 송(松)자를 쓰게 된 것은 옛날 중국 진시황의 전설에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진시황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커다란 소나무가 서있어서 그 나무 밑에서 소나기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시황은 소나무를 고맙게 여겨 작위를 내리고 목공(木公)이라고 불렀는데 이 목공 두 글자를 합친 것이 바로 소나무 송(松)자인 것이다. 옛 중국의 사가 사마천도 사기에 송백을 백목지장이라 기록한 걸 보면 소나무는 고대 중국인들도 좋아했던가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소나무를 우리 한민족만큼 좋아하는 종족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민족에게 소나무는 특별한 나무고 정겨운 나무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산이나 바닷가뿐만 아니라 가로수나 정원수로도 각광을 받고, 무덤이 있는 산소에도 가장 많이 심는 나무다.

 

어디 그뿐이랴, 솔잎은 송편을 찔 때 애용되고, 아직 어린 솔방울은 술을 담글 때 사용된다. 소나무 꽃인 송화 가루는 다식용으로 그만이다. 불타버린 남대문을 복원하는데 쓰이는 목재도 소나무다. 남대문 복원용으로 "어명이오!"하고 제사를 지낸 후 베어오는 나무가 바로 강원도 삼척의 준경묘 일대의 금강송이다.

 

그리고 요즘이야 다른 목재를 많이 사용한다지만 옛날에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넣어 땅에 묻던 관도 대부분 소나무를 사용했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소나무는 살아있을 때나 죽어서나 항상 가까이 있던 나무였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소나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 할제 독야청청 하리라.

 

지조를 지키다가 참혹한 고문 끝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성삼문의 시구에 나오는 절개의 상징 나무도 낙락장송 소나무다. 그는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의 끈질긴 회유를 물리치고,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가 죽은 사육신의 대표적인 인물이 아니던가.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 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등산과 여행길에서 만났던 소나무들의 사진을 보며 흥얼거리는 안치환의 노래가 오늘 따라 유난스레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나무야, #썰렁한 분위기, #안치환, #이승철, #솔아 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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