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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결국 미디어 관련 법안을 6월 중 표결처리하기로 한나라당과 합의했다. 한나라당이 직권상정 요구를 철회하는 대신 민주당은 '처리시기'를 정해 '표결처리'하자는 한나라당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민주당은 작년 12월, 미디어 관련법안과 함께 시민사회가 나서서 온몸으로 막으려 했던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금융 재벌 규제완화 법안들도 처리해주기로 했다. 민주당이 'MB악법' 처리의 정치적 부담을 한나라당과 나누려고 단단히 결심이라도 한 모양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미디어 관련 법안 표결 처리와 관련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한 100일간의 논의과정'을 전제했을 뿐이다. 국민들은 재벌과 조중동에게 방송을 선물하려는 미디어 관련법안과 고삐 풀린 자본을 더 제멋대로 놀게 할 규제완화 법안의 폐기를 원했지, 평화를 가장한 야합을 원한 것이 아니다.

 

'현실정치 한계' 운운하는 민주당

 

이번 합의와 관련,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또다시 좋게 말해 '타협'의 다른 이름일 뿐인 현실정치론을 펼쳤다.

 

"현실정치의 영원한 숙제라고 본다. 현실정치는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하는 곳이 아니니까. 경우에 따라 비판받을 수 있는데, 비판받아도 타협하는 게 현실정치의 한계 아닌가."

 

정 대표는 또한 합의의 가장 큰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악의 입법을 막아야 하고, 국민여론은 존중해야 하고, 나라의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해야 했다. 환율이 1590원까지 간 상황 아닌가."

 

어이없는 동문서답이다. 재벌 방송, 조중동 방송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국민여론을 존중하기보다는 여야가 적당히 타협해서 국회에서 싸우지 말라는 국민여론만 보였다는 것인가.

 

게다가 여기서 경제위기와 환율 이야기는 왜 나오는가.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제 등 이미 너덜거리는 빗장을 재벌에게 활짝 열어주면 경제위기가 극복되는가. 국회에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면 환율이 내려가기라도 하는가. 차라리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를 써라.

 

볼멘소리만 해대는 민주연대

 

한편, 민주연대 공동대표인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3일 미디어 관련법 여야 합의와 관련해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거의 0대 100으로 해줬다"며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삭발, 단식, 의원직 총사퇴 의견이 오히려 점잖은 의원들에게서 표출됐는데 지도부가 이를 협상의 힘으로 왜 활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다"며 "과거 여당에 100% 협조하면서 자기 생존을 해왔던 '민한당'과 다를 바 없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민주당의 원칙 없는 야합의 반복과 나름 개혁적이라는 민주당 내 민주연대의 계속되는 볼멘소리도 이젠 지겨운 수준을 넘어섰다.

 

올해 초에도 여야가 'MB악법'의 처리 시기와 방식에 대해 적당히 타협함으로써 국회 본회의장 점거와 몸싸움이 일단락된 적이 있다. 지난 1월 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세 교섭단체가 합의에 이른 것이다.

 

당시의 합의도 격렬한 몸싸움 뒤의 일이라 허탈감이 좀 더 컸었다. 그리고 직권상정을 통한 강행처리가 저지된 것을 제외한다면 한나라당이 잃은 것은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 것인데, 지난번 합의를 어음에 비유한다면 이번 합의는 백지수표나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존재 이유는 '한나라당 들러리'인가?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4일 '경제-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제 정당-시민사회단체-각계인사 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에서 한 가장 핵심적인 약속도 불과 하루 만에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일이 있다.

 

연석회의에서 발표한 3대 방향의 첫 번째 항목, 10대 대책의 첫 번째 항목이었던 '부자감세 중단' 요구를 한나라당과의 타협이 불가피했다는 변명으로 송두리째 내팽개쳤다.

 

부자증세를 해도 모자랄 판에 부자감세에 손을 들어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자감세는 사회 양극화 심화로 귀결되고 결국 국민에 대한 수탈 강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민주연대는 예산안 합의를 "백기투항"이라고 규정하고 정면으로 지도부를 비판하고 나선 적이 있다. 계속되는 민주연대의 지긋지긋한 당내 비판은 그저 당내 권력투쟁의 도구일 뿐인가. 행동으로 보여준 게 없으니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민주당은 'MB악법'들을 두고 적당히 밀고 당기면서 타협으로 한 발짝씩 다가서왔다. 간간히 몸싸움을 하긴 했으나 그건 그저 '쇼'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에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민주당은 지금 그 존재의 이유 자체를 의심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프로메테우스>, <울산노동뉴스>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여야대표회담, #민주당,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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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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