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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비가 마음까지 적셔주네."

 

비속을 달리니, 우울한 마음을 씻어준다. 내리는 빗방울이 땅을 적셔주는가 했더니, 그 것뿐이 아니었다. 그 속을 달리고 있다 보니, 시나브로 나 자신도 흠뻑 적셔지고 있었다. 물론 빗방울은 자동차의 차창을 내리치고 있었지만, 유리창을 투과하여 깊은 곳 심연까지 배어들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미움이 빗물에 흐물흐물해진다.

 

목적을 정할 수 없었다. 아니 감정이 앞서다보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부정하는 힘이 워낙 강해서 생각의 질서를 잡을 수 없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이 되었는지, 순서를 찾을 수 없었다. 혼돈으로 넘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달릴 수밖에 없었다. 달릴 수 있었기에 진정시킬 수가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시야에 풍광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떨어지는 빗방울 이외에는 다른 것은 인지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달리다보니, 의식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게 되니, 순서가 생긴다. 처음과 다음이 이어지게 되니, 감정 뒤에 숨어 있던 이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비 내리는 내장사.

 내장사로 향하는 도로에는 단풍 가로수가 가지런히 서 있다. 색깔은 퇴색되었지만 지난 가을의 아름다움에 대한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계절이 바뀐다고 하여 가슴에 각인되어 있는 내장사의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비가 내리고 있는 단풍나무들이 그렇게 우뚝할 수가 없다.

 

  내장사가 내려다보이는 산상 도로에는 하얀 눈이 남아 있었다. 눈 위에 단풍잎이 떨어져 있어 애찬하다. 눈 위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낙엽들이 나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유한하고 모든 것이 공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미움이 앞설 때에는 그 격정으로 인해 그런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나를 본다.

 

  내가 나를 볼 수 있게 되니, 진정이 된다.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앞서고 있었다. 그렇게 처분하고서 뻔뻔스럽게 웃고 있던 얼굴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감정 같아서는 멱살잡이를 하고서 통쾌하게 패주고 싶었다. 그러나 하얀 눈 위에 떨어져 있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그 것 또한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떨어지는 빗방울은 말하고 있었다. 잘못은 세상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틀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에 미움이 커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미움의 대상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 전에 나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 동안 나 자신이 잘못 보았다는 결론에 도달하니, 모든 것이 허탈해진다. 비우면 깨끗해지고 비우면 투명해진다고 하였던가? 맑디맑은 마음이 되기 우해서는 비우면 되는 일이라고 하였던가? 용서는 할 수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겠다.

 

차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였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낙엽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나를 가로 막고 있는 벽 두 개를 허물어야 비로소 참 세상을 볼 수 있다. 바깥에 드러난 벽을 허무는 것뿐만 아니라 내 안을 가두고 있는 단단한 안의 벽까지 부수는 무기가 사랑이다. 참 나를 찾게 해준 눈 위의 낙엽을 마음에 새긴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내장사에서 직접 촬영


태그:#비, #내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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