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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싣는 순서>

I. 서울시 공익사업에 피눈물 흘리는 철거민

II. 철거민·원주민 vs SH공사 쟁점사항

Ⅲ. 투병중인 입주민 “암보다 무서운 SH공사”

 

‘용산 참사’를 불러온 뉴타운·재개발,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이 오랫동안 살아온 터전에서 서민들을 내쫓고 있다. 중앙대가 위치하고 있는 흑석동 뉴타운 4개 구역에서는 뉴타운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까지 제기되고, 서울시 곳곳에서 뉴타운 선정 지역의 재개발이 본격화되고 택지개발사업이 한창인 지금, 제2의 용산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SH공사가 공급한 ‘강일 도시개발사업지구 특별공급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고분양가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들은 살인적인 분양가로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다며 울부짖고 있다. 서울시의 개발방식은 공공의 탈을 쓴 민간개발로, 결국 약자가 가장 피해를 보는 구조다. 공정한 게임이 되기 위해서는 세입자나 철거민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만 서민들은 거대 자본과 공권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몇 십 년 살아온 헌 집 빼앗기고, 몇 억 주고 아파트에 입주해야 하는 강일지구 철거민들의 처절한 투쟁 현장을 집중 취재해 봤다.    <기자주>

 

아침마다 눈 뜨는 일이 고역이라고 말하는 박영희(가명·59)씨. 전라도 목포 출신인 박씨는 1984년 남편 직장을 따라 서울 은평구 역촌2동에서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됐다.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자식도 번듯하게 키워 장가도 보내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어느 날, 은평구청에서 박씨의 집터에 도시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노인복지회관을 건립할 것이라는 계획을 알려왔다. 6m 소방도로에 바로 인접해 있고 정원이 있는 50평대 단독주택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박씨는 반대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구청 공무원들과 인근 부동산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 집 팔면 특별분양 받는데 뭐가 걱정이세요.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가 낫죠. 특별분양은 로또 당첨이나 마찬가지인데 뭘 망설이세요” 이 같은 사탕발림이 계속됐다.

 

결국 박씨는 집을 팔고 특별분양을 받기로 하고 전세집을 구해 살면서 강일지구 입주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공사가 지연되면서 2007년 입주 시기는 늦어지고 지난해 SH공사가 발표한 (3.3㎡당) 1000만원이 넘는 높은 분양가를 보고 박씨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박씨가 20년 넘게 살던 집터에는 노인복지관이 들어서 많은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지만 정작 박씨는 턱없이 높은 분양가에 입주가 어렵게 돼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집 마당에 있던 모과나무, 라일락, 감나무 아래서 식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정말 원해서 한 것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내 집을 빼앗긴 셈이 됐습니다. 너무 억울해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깹니다”

 

박씨는 남편과 함께 조용히 노년을 보낼 강일지구 아파트 입주를 기다리던 2007년 어느날 갑상선암 판정을 받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항암치료를 하고 건강을 다시 얻게 됐다. 그런데 강일지구 분양가 문제가 터지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암이 재발해 2008년 11월 재수술을 해야 했다. SH공사가 특별분양가를 공개했던 시점과 맞물린다.

 

“결국 화병이 암을 키운 것 같습니다. 갑상선암이 치료가 잘되고 완치율이 다른 암보다 높지만 이것 역시 암이기 때문에 재발하거나 다른 장기로 퍼질 가능성은 항상 있습니다. 말만 서울시와 SH공사가 공익개발이라고 하지 실상 서민들을 볼모로 해서 이득을 취하는 악덕기업에 불과합니다.”

 

재수술 후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하는 박씨지만 집에만 있을 수 없는 처지다. 분양가 인하를 위한 입주민 집회부터 시작해 국회의원 사무실, 구청, 시청, SH공사 등 안 다니는 곳이 없을 정도로 찾아다니며 서울시와 SH공사의 횡포를 알리고 주민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닌다.

 

“손발이 저리고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옷을 12개나 껴입고 집회현장에 갑니다. 약봉다리를 챙겨들고 다니면서 목청껏 외칩니다. 서민들 좀 살게 해 달라고…. 최근에 강동구 모 국회의원에게 호소를 하러 갔는데 글쎄 하는 말이 ‘나라는 밑지고 장사하냐, 나라도 남겨야 하지. 6평 살던 사람에게 33평 아파트 주면 됐지, 왜 공짜로 들어가려 하느냐’며 평당 1000만원이면 싸다고 합니다. 얼마나 속상하던지….”

 

인터뷰 내내 박씨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설움은 참아내느라 연신 긴 한숨을 내셨다.

 

“제2의 용산 사태가 예고되는 도화선이 되지는 않을지 내심 걱정입니다. 철거민만의 문제가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도 한순간에 공익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강일지구 철거민이나 저처럼 될 수 있습니다”

 

박씨는 지금 외롭게 투쟁하고 있다. 박씨의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라 박씨는 더 없이 힘들다. 하지만 박씨는 오늘 같은 영하의 추운날씨에서 집회 현장으로 나간다. 원칙 없는 고분양가로 서민들 울리고, 죽이는 서울시와 SH공사를 시민들에게 정확하게 알리고 행여라도 본인과 같은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는 소리친다. 암보다 무서운 것이 공익개발이고 서울시와 SH공사라고. 제발 살게만 해달라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동 송파구 주민의 대변지 서울동부신문(www.dongbu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강일지구, #철거민, #강동구,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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