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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망각' 없다면 어떤 삶일까? 행복한 삶은 아닐 것이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있을 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는 말처럼 망각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편 중 하나다. 하지만 어떤 경험은 망각보다는 '기억'으로 영원히 자리하는 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100여 일간 켜졌던 ‘촛불’은 망각이 아니라 '기억'해야 할 우리의 경험이다. 이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영원한 기억으로 되살리기 위한 책이 나왔다.

 

<한겨레> 사진부 기자들이 찍은 10만 컷 사진 중 가려뽑고 봅은 115컷과 촛불시민으로 함께 했던 11명이 자신이 경험한 촛불 영원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펴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다.

 

책은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직후의 경북 경주 근교 우시장의 한적한 풍경으로 시작하여 7월 12일 밤 비오는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가족의 활짝 피어난 웃음으로 맺음하하면서 전조 ․ 파도 ․ 직접 ․ 폭발 ․ 광장 ․ 민심 ․ 진화 ․ 역진 ․ 공명 ․ 계속으로 나누어 각 국면을 한 사람씩 써 내려갔다. 책상과 머리에서 나온 사진과 글들이 아니기에 사진 한 장, 글 한 편을 읽어가면서 우리는 지난 해 그 뜨거웠던 경험을 망각이 아니라 기억으로 다시 부활시키는 경험을 한다. 

 

또한 115 컷 사진뿐만 아니라 107쪽-110쪽 박재동 화백의 촛불집회 현장 스케치와 캐리커처는 집회 기간 내내 넘쳐났던 촛불소녀와 시민, 386과 유모차 부대의 창조적 유희, 생명권을 되찾기 위한 저항을 사진과 다른 시선으로 기억하게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없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이다. 신이 만든 창조질서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권까지 짓밟았던 축산자본과 대한민국 정치권력은 '어둠'이었다. 인간 생명권까지 짓밟아버린 축산자본과 정치권력에 저항했던 촛불은 '빛'이었다.

 

하지만 촛불 발화 원인은 축산 자본과 이명박 정권의 생명권 파괴 이전에 영어 몰입교육과 강부자 내각 파동, 출범 초기 각종 규제완화 조처와 학교자율화, 대운하 논란 따위를 거치며 누적된 시민사회의 불만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라는 '스파크'를 만나면서 '주류 시스템이 가하는 폭력'에 대한 저항으로 발화되었다고 글쓴이들은 적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만 생명권 파괴가 아니라 영어몰입교육과 대운하 같은 모두가 인간 기본권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이었음을 주목한 것이다. 그렇다. 촛불 배후는 ‘이명박 정권’이었다. 자신들이 배후이자, 원인이면서 그들은 배후세력 운운했다. 10대 소녀들로 시작된 촛불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와 아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운동화’ 신고 뛰었던 386세대, 나이 지극힌 어르신까지 모았다

 

윤형근(사단법인 한살림 상무)은 “이들이 가진 ‘생명의 위기에 대한 본능’과 ‘우정과 환대. 돌봄의 감수성’은 일정 시점까지 촛불집회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생명의 위기에 대한 본능으로 시작된 촛불은 드디어 파도가 되어 울렁대기 시작했다. 촛불소녀들은 기존 집회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 의견을 표출했다.

 

그들은 '되고 송'을 불렀고, '뻔한 코스'가 아닌 발길 닫는 곳으로 갔다. "나는 안 찍었어!"를 외쳤으며, 일산 하는 한 고3 여학생은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나라 걱정으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하면서 촛불을 들었다.

 

퇴계로를 막으면 서울역으로 돌아가면 되는 촛불시민들을 향하여 결국 경찰은 "운동권보다 무서운 놈들이 나타났다!"는 탄식을 자아냈다.

 

고3학생이 수능보다는 나라 걱정을 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 명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촛불은 헌법 1조를 무시한, 인간 생명권과 기본권을 저버려 어둠이 되어버린 청와대로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소통'을 원했지만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불통'해버렸다. 왜 이명박 정권은 차벽과 명박산성으로 불통해버렸을까? 박영선(참여연대기획위원장)은 "어쩌면 국민의 건강권이나 행복추구권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촛불시민들에게는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가 보루였으나, 이 보루는 오만한 대통령과 무지막지한 검경에 의해 모두 파괴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미국산 쇠고기와 영어몰입교육, 이름만 바뀐 4대강 정비 사업과 함께 용산철거민참사에서도 어김없이 파괴되고 있다. 파괴되어 가고 있는 인간 기본권 보루를 촛불이 과연 살릴 수 있을까?

 

희망은 있다. 이유는 지난해 촛불은 신진욱(중앙대 교수) 말처럼 "촛불의 힘은 시민들 간 이음, 나눔, 모임에서 생겨났다. 인구 1,200만의 세계적 메트로폴리스 서울에서 시민들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성별과 연령, 직업과 계층을 달리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행동했으며, 또한 모두를 위해 각장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헌신했"기 때문이다.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인민을 폭도와 불법폭력집단으로 매도하면서 명박산성과 거대한 차벽으로 막았지만 시민들은 하나 된 공동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생명과 민주주의 소중함이라는 큰 메시지를 던졌으나 2008년 촛불은 현실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못했다. 그 반증이 재벌방송과 조중동방송, 금산분리완화, 2%를 위한 감세 정책와 용산철거민참사 같은 비극이다.

 

여기 우리 과제가 있다. 촛불은 계속 말해야 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바로 우리, 국민으로터 나온다.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똑바로 국정을 운영하라!"는 외침을 끝임없이 보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 지음 | 한겨레 사진부 사진 | 한겨레출판사 | 13,000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 2008 촛불의 기록

한홍구 지음, 박재동 그림, 김현진 외 글, 한겨레 사진부 사진, 참여사회연구소 외, 한겨레출판(2008)


태그:#촛불시민, #민주주의, #생명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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