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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지역문화유산 중 최고를 인정받고 있는 송악 외암마을의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이 같은 지역 내 여론에 아산시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추진의 현실화가 점쳐지고 있다.

 

지난 4일 송악면에서 열린 시민과의 대화에 나선 강희복 시장도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아산시 관계자는 “섣부르게 얘기할 수 없지만 외암마을의 가치를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얘기했으나 자세하게 거론하지는 않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국내·외 관광객이 크게 증가되며, 이에 따라 고용 기회와 수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으로 지역의 계획과 관리를 향상시킬 수도 있다. 또한 지역 및 국가의 자부심을 고취·보호를 위한 책임감을 형성한다.

 

아울러 세계유산기금으로부터 기술적, 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문화민족과 문화국가라는 민족적, 국가적 자부심을 고취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2007년 7월 기준 전세계적으로 660건의 문화유산이 등재돼 있으며, 한국의 경우에는 △석굴암·불국사(1995) △해인사 장경판전(1995) △종묘(1995) △창덕궁(1997) △수원화성(1997) △고창·화순·강화 고인돌유적(2000) △경주 역사유적지구(2000) 7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은 현재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앞두고 잠정목록에 올라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대상은?

 

선정 기준은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 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할 것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 내에서 건축, 기념물 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독특하거나, 지극히 희귀하거나, 혹은 아주 오래된 것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중요하고 전통적인 건축양식, 건설방식 또는 인간주거의 특징적인 사례로서 자연에 의해 파괴되기 쉽거나 역행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혹은 경제적 변혁의 영향으로 상처 받기 쉬운 것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성이 현저한 사상이나 신념, 사진이나 인물과 가장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유네스코가 하며, 등재 신청서 작성 학술용역은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이코모스 한국위원회가 주관한다.

 

등록절차는 세계유산 등록신청을 위한 사전예비단계로 문화재위원회의 현지조사 등을 거쳐 잠정목록을 선정한 뒤 이를 유네스코에 제출한다.

 

매년 2월1일까지 제출해야 하며, 접수처는 세계유산위원회 사무국이다. 제출서류는 신청서(영문) 및 부속자료(사진, 슬라이드, VTR) 다.

 

제출 다음해 2월 1차 평가를 하며, 유네스코의 자문기구인 국제자연보존연맹과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 전문가를 해당국가에 파견, 현지 조사 후 평가서를 작성한다.

 

2차 검토는 매년 4월에 하며, 세계유산위원회 집행이사회 회의에서 1차 평가결과를 토대로 등록대상 검토 후 세계유산위원회에 가부를 결정 권고한다.

 

최종 심의·결정은 제출한 당해 6월 중에 하며, 세계유산위원회 정기총회에서 등록여부 최종 심의·결정, 공표한다.

 

외암마을은 어떤 곳?

 

외암마을은 아산시 송악면에 소재하고 있으며, 2000년 1월7일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됐다. 지정면적은 20만7847㎡(6만2870여 평)다.

 

농가 38가구, 비농가 26가구 등 총 64가구에 177명이 거주하고 있다. 밭은 13ha, 논은 40ha로, 호당 경지면적은 0.6ha다.

 

한옥기와 57, 초가 128, 돌기와 2, 양와 11, 기타 30채 등 총 228채의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

 

500여 년 전부터 강씨, 목씨 등이 정착해 부락을 형성했고, 400여 년 전 예안 이씨 일가가 이주했으며,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이간 선생이 마을의 이름인 ‘외암(巍巖)’을 자신의 호로 사용했으며, 그 뒤 어음(語音)이 같은 외암(外岩)리로 불리워졌다.

 

외암 이간 선생은 조선숙종 3년(1677년)에 외암마을에서 태어나 충청도관찰사를 지냈으며 1707년 강당리에 관선제를 건립하고 유학을 강론했으며, 현재 외암문집 목판 307매가 전해온다.

 

충청지방 고유 격식인 반가의 고택과 초가, 돌담, 정원이 보존되고 있으며, 다량의 민구(民具)와 민속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아산 지역신문인 <아산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외암마을, #송악, #아산,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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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충남 아산 지역신문인 <아산톱뉴스>에서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뉴스를 다루는 분야는 정치, 행정, 사회, 문화 등이다. 이외에도 필요에 따라 다른 분야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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