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절반 이상 갚았던  담보 대출원금이  IMF를 맞은 후  두 배 이상의 부채로 남겨진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매달 기초 생활비를 제외하면 이자를 갚을 길이 없어 또 다시 빚을 얻다보니 어느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것이다.

 

현재는 매달 이자를 물어내기도 힘에 부친 터라 원금 상환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런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것이 내 자신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에 기인한다기보다 자본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몇몇 거대 자본가들과 그들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날카롭게 고발한 지식인들의 글 때문이다.

 

<탐욕의 시대>를 쓴 장 지글러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을 박탈한 추악한 자본의 실체, 가난을 대물림 시키며 노예화를 부추기는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 신자유주의로 지칭되는 시장의 논리에 내재된 폭력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고발하고 있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라는 말로 새로운 혁명의 시대가 도래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총 다섯 장으로 구분된 본장에서 인간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 가난을 대물림 시키는 요인들, 에티오피아에 피어난 희망의 불씨,  외채와의 전쟁을 치르는 브라질의 조용한 혁명, 신흥 봉건제후로 수많은 시민들을 노예화하는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신자유주의의 실체에 대해 고발하고 있으며 끝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장 지글러는 8년간 유엔 산하 인권위원회 식량 담당 조사관으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라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남반구, 아프리카, 인도, 몽골의 기아와 빈곤은 거대 자본으로 제국을 꿈꾸는 자본가들과 다국적 기업,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주역들이 만들어 낸 추악한 음모라는 것을 다양한 사례분석과 수치를 통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영양결핍으로 출산 중 사망하는 수십만 명의 산모들, 뇌를 비롯한 신경기관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수백만 명의 신생아들,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수천만 명의 성인 남자들, 이 모두는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어린 시절부터 줄곧 영양 결핍에 시달려온 이들 성인 남녀들은 자손들에게도 빈혈을 비롯한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명을 동반하는 ‘나쁜 피’를  물려주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양 결핍은 특별한 기술적인 지원이나 엄청난 경비를 지출하지 않고서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지구상에서 퇴치 할 수 있다. 제 3세계에서 소비되는 음식물에 서구사회에서 통용되는 똑같은 처방을 적용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제네바에서 내가 사먹는 소금은 스위스에서 현재 시행 중인 법에 따라 요오드가 첨가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구 사회에서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은 이미 오래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서구 산업 국가들에서 시행중인 식품관련법은 모두 엄격하게 식품에 미량 영양소를 첨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북반구 국가에서와는 달리 이와 같은 법률이 남반구 국가에서는 아주 예외적으로만 시행될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보이지 않는 기아’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얼마간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다. 사실 영양 결핍의 피해를 보는 희생자들 대부분의 구매력은 거의 제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속한 나라의 정부들도 자국에서 생산되거나 다른 나라로부터 수입하는 식품에 미량 영양소를 강화하는 정책을 시행할 여력이 없다. 게다가 그럴 의지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국제기구들 역시 지구 차원에서 영양 결핍을 뿌리 뽑기 위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일 자금이 부족하다.

 

아주 적은 비용만 있으면 해결되는 영양 실조나 기아의 문제에 자본가들은 절대 신경을 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 외채를 사용하라고 강요하고 북반구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받아 챙긴다. 대부분 나라가  외채를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표적인 기아와 빈곤 국가인 에티오피아,  브라질, 콩고민주공화국, 나이지리아, 온두라스,  몽골 같은 경우 연간 총생산액에 맞먹는 외채 이자 때문에  경제적 종속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 쉽지 않다.

 

그렇다면 대대손손 경제적 노예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명확한 어조로 단언한다. 추악한 자본의 실체를 깨달았으면 그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의지를 키워나가야 하는데 그 길은 바로 연대이다.

 

높은 곳과 낮은 곳에서는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크기, 두 개의 무게.

인간들은 누구나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살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낮은 곳에 붙들려 있는데, 이는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머물러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살장의 성 요한나 -

 

거대 자본가들은 날마다 거저 황금알을 얻을 수 있는 빈곤국에 군림하는 일과 빈곤국  시민들의  노동력 착취를 위한 덫을 치우려하지 않을 것이다. 빈곤국은 스스로  자각에 의해 노예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의지를 지니지 않는 한 노예의 굴레를 벗을 수 없다.

 

자본과 신자유주의 시장논리, 거머리 같은 다국적 기업의 마수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몸부림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런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희망의 불씨를 피워낼 수 없다.  65억의  지구촌 가족 중, 절반에 가까운 27억이나 되는 지구촌 가족들이 기아와 영양실조,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연대와 투쟁이며, 그 길만이  추악한 자본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통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또 말한다. 쉽게 희망을 말하진 말라고 더불어 쉽사리 좌절하거나 실망할 일은 더욱 아니라고.  왜냐하면  파블로 네루다가 노래했듯이 그들이 비록 꽃을 꺾어 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2008)

이 책의 다른 기사

더보기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태그:#탐욕의 시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