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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풀빵장사 20년째인 김삼순 씨. 그녀의 남다른 선행은 아름답다.
▲ 환한 웃음의 김삼순 씨 올해로 풀빵장사 20년째인 김삼순 씨. 그녀의 남다른 선행은 아름답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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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0년 동안 풀빵 장사 열심히 했지만 남은 게 없습니더. 그래도 인심 하나는 좋다카데예. 어렵게 살아도 남이 배고픈 걸 보면 나는 안 먹어도 남은 거저 줍니더.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예. 아차피 한번 죽는 인생, 내가 안 베풀면 천덕꾸러기 같은 사람들 누가 챙겨주겠습니꺼."

필자가 김삼순(60, 창녕읍 교하리) 씨를 만난 것은 지난 16일이다. 13일 창녕 오일장날 만난지 두 번째다. 김씨는 시장에서 조그만 가게를 세 내어 풀빵 장사를 하고 있다. 벌써 20년째라고 한다. 첫인상이 언제나 찾아도 좋을 만큼 참 푸근한 누님모습이었다.

김씨가 풀빵 장사를 시작한 연유는 이랬다.

"88년이었지예. 그때 유어면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데, 그만 허리를 다쳐 일을 못하고 들어앉았지예, 그런데 하루는 시어머니께서 '니는 이제 허리가 아파서 농사짓기는 다 틀려 버렸으니께 점방(상점)이나 하면서 아이들 공부나 시키면 안 되겠나?' 하시데예. 그래서 시작한 거라예."

맨 왼쪽 사람이 “누나는 풀빵장사 20년이나 했지만 돈은 못벌었어예”라고 말하는 최성국 씨다.
▲ 김삼순 씨가 만나는 사람들 맨 왼쪽 사람이 “누나는 풀빵장사 20년이나 했지만 돈은 못벌었어예”라고 말하는 최성국 씨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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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자녀 둘을 두고 있다. 딸내미는 이미 결혼을 했으나 늦게 얻은 막내는 아직 대학생이다. 무슨 장사를 하면 좋을까. 많은 생각을 하다가 밑천도 그렇게 많이 들어가지 않고, 손놀림만 부지런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찾았는데, 그게 바로 풀빵 장사였다고 한다. 벌써 20년째다. 연방 얘기를 하면서도 김씨는 빵틀에다 반죽을 붓기 바쁘다. 장날 조그만 김씨 가게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 빵틀을 88년도에 대구 칠성시장에서 샀다 아입니꺼. 얼매나 물건이 튼튼한지 지금까지 그 많은 빵을 꾸봤는데도 흠집 하나 난 데가 없어예. 주인을 잘 만난 건지 아무튼 이것 덕분에 밥벌이하며, 아들딸 공부시키고, 여러 사람들로부터 인심까지 후하게 얻은기라예."

88년 대구 칠성시장에서 구입한 빵틀, 20년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20년째 사용하고 있는 빵틀 88년 대구 칠성시장에서 구입한 빵틀, 20년째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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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직접 반죽하고 있는 김삼순씨. 김삼순씨는 풀빵 반죽을 직접 한다. 20년 다져진 손맛이다. (오른쪽) 풀빵 반죽. 잘 개어진 풀빵 반죽. 20년 김삼순씨 노하우가 담겨 있다.
 (왼쪽)직접 반죽하고 있는 김삼순씨. 김삼순씨는 풀빵 반죽을 직접 한다. 20년 다져진 손맛이다. (오른쪽) 풀빵 반죽. 잘 개어진 풀빵 반죽. 20년 김삼순씨 노하우가 담겨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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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연탄화덕에 가무잡잡하게 그을린 빵틀은 그간의 세월을 말해 주는 듯 반질반질하다. 김씨의 풀빵은 요즘 흔히 만나는 '이름 있는 풀빵'과는 달리 순전히 비메이커다. 앙꼬로 들어가는 팥은 물론 밀가루 반죽도 직접 해낸다. 그런데도 갓 구워진 풀빵을 먹어보니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 여간 고소한 게 아니다. 바로 20년 노하우로 다져진 손맛 그 자체다.

"이 손목 한번 보이소. 새벽같이 일어나 반죽한다고 얼매나 주걱을 돌렸으면 손목이 다 부었다 아입니꺼. 이 나이에 아직 관절신경통은 없이 사는데, 손목만큼은 아린 게 가실 날이 없네예. 다른 집에서는 다 된 재료를 사서 굽기만 하면 되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지예. 내 입에 안 들어간다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기라예. 음식은 정성이 들어가야 진맛이 난다 아입니꺼.

비법이 다로 없어예. 반죽에는 소금에다 소오다 조금 넣는 게 전부입니더. 방부제 같은 것은 어디 파는 지도 모릅니더. 이렇게 만들다 보니께 제때 다 팔지 못하면 반죽이 쉬어버려 버린 적인 한두 번이 아니었어예. 냉장고에 보관하면 되지만 그렇게 하면 빵 맛이 변해 버리지예. 그래도 아깝다 생각 않습니더."

20년 노하우로 다져진 손맛

김삼순 씨의 풀빵 비결은 딴데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정성 그 자체다.
▲ 빵틀에 반죽을 붓고 있는 김상순 씨 김삼순 씨의 풀빵 비결은 딴데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정성 그 자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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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순씨 풀빵 비법은 따로 없다. 반죽에 소금에다 소오다 조금 넣는 게 전부다. 그리고 먹을 때 하얀 설탕을 듬뿍 뿌리는 것은 필수다.
▲ 설탕과 풀빵 김상순씨 풀빵 비법은 따로 없다. 반죽에 소금에다 소오다 조금 넣는 게 전부다. 그리고 먹을 때 하얀 설탕을 듬뿍 뿌리는 것은 필수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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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몇몇 사람들이 구워놓은 풀빵을 서너 개씩 집어다가 먹어댄다. 그러고는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내쳐간다. 그러나 김씨는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는다. 굽는 사람 따로 먹는 사람 따로다. 정작 돈을 주고 가는 사람은 없다. 아니, 먹어주는 게 당연하다는 투다. 그런데도 김씨는 연방 풀빵 굽기에만 열심이다.

"아주머니, 풀빵은 많이 굽는 것 같은데 먹고 가는 사람들이 돈을 줄 생각을 안 하네요?"
"상관없어예. 우리 가게에는 오도 가도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옵니더. 돈은 못 벌어도 오는 사람, 배가 고파서 오는 사람한테 요깃거리라도 챙겨주는 거지예."

곁에서 한참을 지켜 서서 풀빵이 익는 족족 먹고 있던 최성국(50, 창녕읍 술정리) 씨가 필자에게 그런 김씨 선행을 자랑하고 들었다.

"누나는예 풀빵장사 경력 20년이나 됩니더. 그란데예 없는 사람들을 잘 도와 주지예. 그래서 불쌍한 사람만 온다 아입니꺼.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방에도 많이 있습니더. 다 돈 한 푼 없고 배고프고 올 데 갈 데 없는 사람들이라 누나 집에 풀빵 먹으로 온 사람들입니더. 꼭 장날이 아니라도 누나는 우리들을 위해서 하루 종일 풀빵을 굽고 있습니더. 그렇지만예 맨날 구워봤자 돈은 못 법니더."             

김상순 씨 풀빵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 풀빵을 권내는 김상순 씨 김상순 씨 풀빵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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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한두 개씩 먹어대는 풀빵, 그 맛이 기막힌다.
▲ 맛있는 풀빵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한두 개씩 먹어대는 풀빵, 그 맛이 기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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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김씨의 친동생도 아니다. 그런데도 마치 피붙이처럼 살갑게 대한다. 방 안을 들여다봤다. 거의 다 몸이 불편하거나 성치 않은 몸이다. 그런데 누구 하나 거리낌 없이 내 집 안방처럼 편안한 모습이다. 방 가운데 당그랗게 놓인 식탁에는 풀빵 접시가 두런두런 놓였다. 그 중 한 사람이 필자에게도 하나 먹어보라며 하얀 설탕을 듬뿍 묻혀 권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는 것 하나도 남을 먼저 생각한다. 그 마음이 아름답다.

"누나는 풀빵장사 20년이나 했지만 돈은 못벌었어예"

"세상에 나쁜 놈이 많아서 기자 양반이 취재를 한다고 얘기할 때 겁이 덜컥났지예. 그렇잖아도 군청에서 위생검사를 나오는 날이면 괜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기가 죽는다 아입니꺼.

처음 가게를 낸 자리가 명덕초등학교 맞은편 지금의 롯데리아 자리였어예. '유어 슈퍼'라고 간판도 내걸었지예. 그래서 지금 내 별명이 유어 슈퍼가 됐지만, 유어 슈퍼하면 창녕 사람들은 다 알아예. 이래저래 살다 보니까 그런저런 사람들을 만났지예. 그냥 이 장사를 하다가 보니께 나도 살기 힘든데 불쌍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보였지예. 한 15년 전쯤 됐지예. 그때가.

그날 따라 날도 차밨습니더. 그런데 학교 앞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더라고예. 그래서 왜 우느냐고 물으니까 학교에 가져갈 준비물을 안 가지고 와서 그런다고 하데예. 할 수 있습니꺼. 문방구에 가서 사서 보냈지예. 그게 남한테 베푼 일이 처음이었어예.

또 우리 집 머슴아 유치원 댕길 때 급식했는데,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간식을 사서 보냈지예. 근데 한 엄마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데예.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급식을 못 챙겨줘서 그런다고 하데예. 우짭니꺼. 아줌마 말이 뒤에 돈을 갚겠다고 통사정을 하기에 요쿠르트랑 핫도그를 사서 보냈지예. 그란데 며칠이 지나도 돈을 안 갖다주데예. 한 주일 지날 쯤에 그 엄마가 보이기에 왜 돈을 안 주느냐고 했더니 없어서 못 준다고 하데예. 그기 두 번째였던기라예."

환한 웃음을 짓는 김삼순 씨, 무척이나 고아한 얼굴이다.
▲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 김삼순 씨 환한 웃음을 짓는 김삼순 씨, 무척이나 고아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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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시장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절친하다. 인심이 후한 까닭이다.
▲ 환한 모습의 김삼순 씨 그녀는 시장에서 만나는 누구와도 절친하다. 인심이 후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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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김씨의 솔솔찮은 선행은 2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껏 단 한번도 드러낸 적이 없다고 한다. 거저 주면 주는 것이지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란다. 이렇듯 유어 슈퍼 아줌마의 남다른 선행은 시장 안에서도 자자하다. 얼핏 스쳐 지나는 사람도 꼭 눈인사를 하고 가는 것만 보아도 여실하다. 김씨가 바로 우리 시대의 천사가 아닐까.

"자꾸 오고가는 사람들 얼굴을 익히니까 장사하는 재미도 있어예. 내가 밥 먹고 사는데 내가 안 보태주면 누가 불쌍한 사람들을 보태주겠습니꺼. 우리 집에는 올 때 갈 때 없는 그런 사람들 밖에 안 옵니더. 크게 잘 살지는 못해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 행복합니더."

그런 김씨. 정작 본인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옷 한번 사 입은 적이 없다고 한다. 딸내미가 입던 것, 남이 주는 옷을 있는 그대로 입는다고 한다. 순간, 콧날이 시큰했다. 내핍생활을 하는 데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김씨의 옷차림은 유명 메이커는 아니어도 평소 엄마를 대하는 따뜻한 느낌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모습이다.

"지는 세상을 악하게 안 삽니더. 내가 조금 더 내면 되는 거지예. 세상에는 잘 난 사람도 많고 잘 사는 사람들도 많지예. 그렇지만 고생하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입니더. 그런데 왜 정치하는 사람들은 맨날 싸워쌌는지 모르겠습니더. 열심히 살아도 모자랄 판에."

김씨는 부모 덕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6.25 전쟁 때 태어나 공부 같은 공부도 해본 적이 없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동생에 넷이나 됐다. 그래서 김씨는 아버지께 '자기는 공부 안 해도 좋으니 동생들만큼은 공부시켜 달라'고 얘기하고는 그때부터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렇듯 지금의 김씨는 모아 놓은 돈은 없으나 가게를 유지하고 사니까 자수성가한 셈이다.

모아 놓은 돈은 없지만 가게를 유지하고 사니까 자수성가한 셈

(위왼쪽) 두부를 팔고 있는 김삼순씨. 지금 김삼순씨는 가게를 늘렸다. 단지 풀빵만 파는 게 아니다. (위오른쪽) 가게 앞에 선 김삼순씨. 김삼순씨는 풀빵 외에도 잡곡을 비롯한 난전을 펼친다. (아래왼쪽) 콩나물을 다듬는 김삼순씨. 김삼순씨 가게에서 풀빵 다음으로 잘 나가는 게 있다면 바로 콩나물이다. (아래오른쪽) 오뎅꼬지를 준비하는 김삼순씨. 오뎅꼬지를 준비하는 김삼순씨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그만큼 정성을 들인다.
 (위왼쪽) 두부를 팔고 있는 김삼순씨. 지금 김삼순씨는 가게를 늘렸다. 단지 풀빵만 파는 게 아니다. (위오른쪽) 가게 앞에 선 김삼순씨. 김삼순씨는 풀빵 외에도 잡곡을 비롯한 난전을 펼친다. (아래왼쪽) 콩나물을 다듬는 김삼순씨. 김삼순씨 가게에서 풀빵 다음으로 잘 나가는 게 있다면 바로 콩나물이다. (아래오른쪽) 오뎅꼬지를 준비하는 김삼순씨. 오뎅꼬지를 준비하는 김삼순씨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그만큼 정성을 들인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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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씨는 달랑 풀빵만 파는 것이 아니다. 어깨 너머로 장사 이력이 생겼다. 잡곡 등속에다 두부와 콩나물, 오뎅과 계란, 막걸리, 강정, 퍽석이(뻥튀기기)를 비롯한 옛날 과자 등을 함께 팔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문을 남기고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평생 벌어 남 퍼주는 일을 먼저 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몫은 늘 작다.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속이 출출했다. 그래서 오뎅꼬지 하나를 청해 먹었다.

근데 이왕 먹고 돈을 내려면 네 개는 먹으라고 한다. 그게 장사수완이라고 하면서. 참, 김씨 가게는 풀빵도 유명하지만 오뎅은 더 유명하다. 왜냐? 다른 집에서는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지만 김씨의 오뎅은 새우젓갈로 간을 하기 때문이다. 삼삼하게 새우젓갈로 간이 된 오뎅, 그 국물이 진국이었다. 따뜻한 국물이 입 안을 살짝 감친다. 김씨는 입가심으로 좌판기 커피 한 잔을 공짜로 권했다. 고향집 엄마 같은 훈훈한 인심이다. 김씨의 남다른 선행은 끝이 없다.

아마 어디를 가도 새우젓갈로 간을 한 오뎅은 김삼순 씨표 뿐일 것이다.
▲ 새우젓갈로 간을 한 오뎅 아마 어디를 가도 새우젓갈로 간을 한 오뎅은 김삼순 씨표 뿐일 것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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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풀빵, #비법, #노하우, #자수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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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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