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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사진찍기와 책읽기

 

 사진기를 처음 만져 본 때가 언제인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지만, 아버지가 안 써서 집에서 굴리다니는 값싼 삼성카메라 한 대로 하늘을 떠 가는 구름을 열 몇 장 찍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어리던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오늘 올려다보는 저 멋진 구름을 앞으로는 못 볼 수 있잖아? 사진으로 남겨야겠어.’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자연파괴나 환경파괴를 곧잘 배운데다가, 제가 살던 집 앞은 인천 제2부두요 경인고속도로 들머리였기 때문에 늘 큰 짐차 배기가스를 맡아야 했고, 제일제당 인천공장이 집 바로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공장에서 내보내는 쓰레기물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느꼈으며, 그 쓰레기물이 인천 앞바다를 더럽히는 큰 말썽거리임을 깨닫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어릴 때 생각처럼, 그 어린 날 보던 ‘소나기 부르는 뭉게구름’도, 양털구름도 몽실몽실한 구름도 매지구름도 새털구름도 요즈음에는 다시는 찾아보지 못합니다. 솜사탕 같은 구름도 눈사람 같은 구름도 구경하지 못합니다.

 

 사진을 제대로 배운 때는 1998년입니다. 아직 디지털로 넘어가기 앞서이며, 필름사진이 마지막으로 꽃피우던 때입니다. 이때에 이르러 필름 넣기와 감기와 다루기를 비로소 익혔고, 사진 찍는 매무새와 마음결과 눈높이를 다스렸습니다. 이에 앞서는 사진을 어떤 몸가짐으로 찍어야 하는 줄도 몰랐고, 사진기를 어떤 마음으로 간수해야 하는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사진과 사진기만 몰랐던 몸과 마음만이 아니라, 제 삶에서 제 일감과 제 동무와 제 터전을 어떻게 바라보고 부대껴야 하는가 또한 모르지 않았으랴 싶어요.

 

 2009년을 코앞에 둔 오늘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비롯해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조차 ‘사진’을 알고 있습니다. 손전화 가진 어린이도 많아, 따로 사진 장비 없이도 ‘사진찍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물건이 아니더라도 둘레에서 사진기를 손쉽게 빌려서 ‘사진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찍지 않아도 자기를 찍어대는 어른은 많아, ‘사진기 있는 어른을 보면 사진을 안 찍고 있음에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어디론가 숨는’ 아이도 있습니다.

 

 우리들 마음보다 훌쩍 앞서간다는 물질문명이기에, 사진기라는 기계도 우리가 사진과 사진기를 어떻게 다루거나 즐겨야 좋은가를 깨닫기 앞서 수많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고 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 아이들과 젊은 사람 늙은 사람 가리지 않고 누구나 ‘사진기’를 하나쯤 가지고 있게 된 세상이 된 대한민국에서 사진은 어떻게 가르쳐지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부모님들은, 또 학교 교사들은, 당신 아이나 학생한테 사진을 어떻게 가르치거나 보여주고 있으신가요. 아이 어른 모두한테 주어진 사진기인데, 이 사진기를 슬기롭고 아름답게 쓰는 길을 얼마나 차근차근 일러 주거나 보여주고 있으신지요.

 

 생각해 보면, 아이들보고 ‘책 좀 읽으라’고 하는 어른 가운데 ‘아빠는(엄마는/교사인 나는) 이렇게 책을 즐기지롱!’ 하고 몸소 보여주거나 먼저 살아내는 분은 얼마 안 됩니다.

 

 

ㄴ. 한 번 보고 버립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다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 때문에 골목마을 옥탑에 자리한 우리 집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옆지기와 아기가 걱정이 되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 사는 집으로 옮겨 지내기로 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아파트는 불을 따로 넣지 않아도 집온도가 20도 안팎입니다. 불을 넣어도 방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불 안 넣은 마루와 다른 방은 영 도 밑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우리 집하고 사뭇 견주게 됩니다. 이러니 골목집에 살던 이들도 아파트로 옮겨 살고픈 꿈을 꿀는지 모릅니다만, 골목집도 냉난방 시설을 손질해서 지낼 수 있다면, 굳이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 싶습니다. 달삯 내며 살아가는 이들 스스로 집을 고칠 겨를이란 없습니다만.

 

 인천집 물이 얼어붙을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종로3가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용산에서 내려 동인천 가는 급행을 기다립니다. 손이 시리고 날이 차지만 한손에는 책을 쥐고 한손에는 볼펜을 쥡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빈자리에 끄적끄적 몇 마디 적어 놓는데, 날이 추워서 볼펜이 잘 안 나옵니다.

 

 전철이 들어옵니다. 아침때라 그런지 타는 이가 얼마 없습니다. 빈자리에 띄엄띄엄 공짜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아마, 앞서서 이 전철에 탄 이들이 내리면서 그 자리에 놓아 두었나 봅니다. 얼마 있자니 헌 신문 모으는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지팡이로 선반 위에 놓인 것은 툭툭 쳐서 떨구고, 자리에 놓인 것은 손으로 집어 옆구리에 낍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를 조금 넘긴 때인데, 저 공짜신문은 몇 시쯤 사람들한테 읽히고 이렇게 금세 폐휴지 나라로 가게 될까요.

 

 뒤뚱뒤뚱 걷는 할머니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저 신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신문종이로 쓰여진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뒤잇습니다. 이 신문을 만드느라 땀흘린 기자도 불쌍하고, 사진가, 조판원, 인쇄공, 배달부, 또 지하철역 나들목마다 옷 차려입고 한 장씩 나누어 주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불쌍하다고 느껴집니다. 고작 하루치도 아니요 한 시간치도 아니며 몇 분치 몫으로 쓰이다가 사라져야 하는 요 제법 도톰한 공짜신문들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 땀과 얼마나 많은 자연자원을 여기에 바치고 있는가요. 공짜신문에 고개를 처박는 사람들마저 불쌍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곱고 아름답고 훌륭한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이 공짜신문에 바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신문을 만들고, 나누고, 보고 하는 데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또다른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저냥 시간 때우기에 좋아서 만드는 신문이고 읽는 신문인가요. 그저 날마다 새소식을 돈푼 안 들이고 살펴볼 수 있으니 좋은 신문인가요. 하루도 못 가는 새소식을, 한 시간도 못 가는 새 이야기를, 몇 분 스윽 스치면 또다시 쏟아지는 새소식과 새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받아먹어야 하는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부품과 마찬가지로 내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짜신문처럼, 날마다 산더미같은 쓰레기가 되는 공짜신문처럼, 우리 몸과 마음을.

덧붙이는 글 |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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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책읽기, #책, #사진, #공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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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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