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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B급 좌파

- 글쓴이 : 김규항

- 펴낸곳 : 야간비행 (2001.7.9.)

- 판이 끊어짐

 

 

 인터넷 새책방 ‘알라딘’에서 김규항 님이 쓴 《B급 좌파》를 찾아보면, 자그마치 예순아홉 꼭지에 이르는 느낌글이 붙어 있고, 판매지수는 10,603에 이릅니다. 판이 끊어진 지 제법 된 책임에도 판매지수가 이토록 높다는 대목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렇게 많이 찾고 사고 읽고 나누는 책이 왜 ‘다른 출판사에서라도 다시 나오지’ 못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다시 나오지 못하는 어떤 까닭이 있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세상을 아직 잘 모르는 젊은 넋들한테 ‘세상을 읽는 눈길 하나’를 살며시 보여주는 책 하나를 만날 수 없는 일은 크나큰 아픔이자 아쉬움입니다.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우리 나라가 전국 곳곳에 도서관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가운데, 시골에는 도서관을 찾아볼 길이 없으며, 학교 도서관이라고 해 보아야 책 몇 권 들여놓지 않을 뿐더러, 시험공부에 바빠 학교 도서관은 거의 드나들 수 없음을 헤아린다면, 새책방이 판이 끊어진 책은 그예 ‘숨을 거둔’ 셈입니다. 더는 만날 수 없고, 다시는 읽을 수 없으며, 그예 입맛만 다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새책방에서 찾을 길이 없고, 도서관에서 갖추어 주고 있지 않다면, 우리한테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다만, 나날이 헌책방이 줄어드는데다가, 시골에는 헌책방이 없습니다. 큰 도시에서도 헌책방 숫자가 주는 한편, 작은 도시에서도 헌책방은 씨가 말라 갑니다.

 

 그래도 헌책방은 꿋꿋하게 살아남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당차게 살아남을 헌책방이 꽤 있습니다. 바로 이곳, 헌책방은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을 넉넉한 품으로 받아안으며, 문을 닫은 새책방이나 출판사에서 흘러나오는 책을 고이 껴안습니다. 여기에다가, 먼저 사서 읽었던 분들이 기꺼이 내놓아 ‘다른 이가 볼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

 

.. 파시즘은 어디에 있는가. 파시즘은 이른바 5ㆍ6공 인사나 《한국논단》 같은 극우집단에만 남아 있는가. 천만에, 파시즘은 우리 안에도 남아 있다. 파시스트 치하에서 몇 십 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파시스트와 닮아 갔고, 파시즘은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다 ..  (37쪽)

 

 2009년 새해를 맞이하고 하루가 지난 1월 2일 낮, 서울 불광동에 자리한 헌책방으로 나들이를 갑니다. 새해 첫날은 일산 옆지기 부모님 댁에서 보내고, 오늘은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헌책방을 들러 봅니다.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내려 연산시장을 가로질러 불광동 언덕길로 올라갑니다. 버스로 갈아타고 갈 수 있으나, 굳이 걸어서 갑니다. 걷는 길에는 바로 코앞에 인왕산이 올려다보입니다. 나중에 서울에서 살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다시 한 번 살 일이 생긴다면, 인왕산 자락에 작은 방 하나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잣거리 가깝고 헌책방으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데에 살림집이자 일터가 있으면 그지없이 즐겁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불광동 헌책방으로 가는 제법 넓은 거님길에는 자동차가 줄줄이 서 있습니다. 사람 걷는 자리를 임자 없는 차가 널찍하게 차지합니다. 아니, 임자는 있는데, 차임자는 얌체처럼 이곳에 세워 놓고 어디론가 볼일을 보러 갔을 테지요. 차를 세울 데가 마땅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타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야 하건만, 아니면 차를 세울 마땅한 데를 찾아서 세운 다음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가야 하건만, 차임자들은 꼭 볼일 볼 자리 가까운 데에 차를 대놓습니다.

 

 

.. 하지만 나는 좌익도 인텔리도 되지 못했다. 좌익인 듯할 뿐 좌익이 아니며 인텔리인 듯할 뿐 인텔리가 아니다. 글만 쓰면 파시스트를 저주하고 중산층을 까고 지식인을 비꼬고 근로대중을 한없이 지지하지만, 그 글은 방구석에 앉아 세상을 재단하는 부도덕을 깔고 있다 ..  (67쪽)

 

 온나라 어디를 가도 경찰은 많지만, 무단불법주차를 하는 자동차를 따끔하게 다스리는 일은 보기 어렵습니다(경찰은 촛불집회를 막는 데에 너무 바빠서 이런 일은 거들떠볼 겨를이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자동차한테는 그지없이 너그러운 우리 사회입니다. 어쩌면, 이제는 거의 모든 집마다 자동차가 한 대씩은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당신도 당신 차를 끌고 나오면 나처럼 아무 데나 대놓아야 하지 않어?’ 하고 생각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부지런히 걸어서 헌책방 앞에 닿습니다. 불광동 헌책방은 날이 쌀쌀해지면, 책방 앞에 붕어빵 굽는 틀과 어묵꼬치 끓이는 틀을 마련해 놓습니다. 책방으로 책을 보러 오는 손님은 많지 않아도, 붕어빵과 어묵꼬치 즐기려는 사람은 언제나 붐빕니다.

 

 밖에서 붕어빵 굽는 아주머니한테 꿉벅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에서 책방 갈무리를 하는 아저씨한테도 꿉벅 인사를 한 다음 책꽂이를 둘러봅니다. 겉을 비닐코팅 하지 않아서 다치기 쉬운 책 《B급 좌파》가 눈에 뜨입니다. 오, 이 녀석이 있네. 우리 처제한테 읽으라고 선물을 해 줄까? 이제 중학생이 되는 처제한테, 아니면 스물일곱이 되는 처제한테 선물을 해 볼까?

 

.. 대한민국 국민들이 재벌들에게 보이는 적개심이란 실은 한 뼘이라도 재벌에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의 비굴한 표현일 뿐일지도 모른다. 온 나라에 재벌에 대한 원성이 차고 넘쳐도 정작 재벌들은 한치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그 원성이란 재벌들이 실제로 부딪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속에선 도무지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  (87∼88쪽)

 

 

 책이 아주 깨끗합니다. 설마 새책이 들어왔을 리는 없고, 책더미에서 살살 끄집어내어 겉그림부터 차근차근 살펴봅니다. 겉종이 안쪽에 이 책을 사서 읽은 이가 몇 마디 끄적인 말이 보입니다. 2001년에 사서 읽으며 적어 놓은 말인데, 이런저런 푸념을 하다가 끝에 “그래도 이놈의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가 보입니다.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라. 그래, 이놈 세상, 나도 참말로 무너졌으면 하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제 밥그릇만 챙기는 세상이라면, 이렇게 사람이 사람을 푸대접하는 세상이라면, 이렇게 돈한테 모든 목숨붙이가 잡아먹히는 세상이라면, 남김없이 허물어지고 없어질 때가 나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나는 요즈음도 세상이 싹 사라지기를 바라는가. 글쎄, 사람들 씁쓸한 모습을 볼 때면 ‘사람은 참 안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들 반가운 모습을 볼 때면 ‘그래도 이렇게 좋은 사람도 많은데’ 하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자연 삶터가 망가지는 일이 안타깝습니다. 사람 때문에 뭇 목숨붙이가 다치고 죽고 아파하고 괴로운 일이 슬픕니다. 사람이 사람을 따돌리거나 푸대접하는 일도 밉고 못마땅하지만, 사람이 뭇 짐승과 뭇 푸나무를 못살게 굴면서 죽여 없애는 짓이 더없이 밉고 못마땅합니다.

 

.. 사회는 지식인에게 등대의 역할, 이정표의 역할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기억하는 지식인은 그리 많지 않다. 지식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상한 삶과 세상의 존경과 명예가, 제가 나면서부터 똑똑하고 잘나서 얻은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그들은 ‘지식인 세계’를 형성하고 그들끼리만 소통 가능한 암호 언어(그들이 ‘지적 대화’라고 부르는)로 그들의 서푼짜리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  (123쪽)

 

 밑줄 하나, 낙서 하나,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딱 한 군데 살짝 다친 데가 보이지만 책을 참 깔끔하게 잘 읽고 내놓아 주었다고 느낍니다. 이 녀석을 누군가한테 선물하면서 ‘헌책방에서 샀어요’하고 말해 주어도 ‘새책 같은데?’ 하고 말하지 않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망설입니다. 나는 집에 한 권 있는데, 선물을 한다면서 꼭 새로 하나 더 사서 선물해 주어야 할까 하고. 제가 본 책은, 집에 있는 책은 하도 밑줄 긋고 곳곳에 쪽글을 끄적여 놓아서 지저분한데, 그런 지저분한 책을 건네면서 읽으라고 할 때가 나을지, 이렇게 반듯하고 말끔한 헌책을 하나 새로 장만해서 선물해 줄 때가 나을지 망설여집니다.

 

 한참 책을 넘기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이 녀석은 처음 놓여 있던 자리에 내려놓습니다. 책이 막 나오던 2001년뿐 아니라 요즈음도 새책방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면 헌책방에서 장만하여 선물해도 괜찮을 테지만, 판이 끊어져서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된 책이라면 아직 이 책을 모르는 이들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이 책을 알아보고 사들여 읽어 주면 한결 낫지 않을까 싶어서. 비록 꽤 낡아버린 내 책이기는 해도, 손때 묻히며 읽은 책을 처제들한테 넘겨주면서 읽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돌고 도는 책이니 나부터 돌려서 읽고, 앞에서 한 사람이 거쳐간 책을 다른 이가 찬찬히 살피면서 여러모로 새롭게 받아들이면서 또다른 눈길을 익힐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

 

.. 그에 반해 그 신문의 문화면은 ‘〈조선일보〉라는 극우조직’을 중화하는 임무를 띤다. 문화와 학술로 포장된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담론들은 그 신문에 어떤 위협도 주지 않지만, 수많은 좌파나 자유주의 성향의 지식인들이 ‘자유롭게’ 기고하는 신문은 그저 건전한 보수 신문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신문의 소품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오늘날 근대성을 가진 나라라면 지식인이 극우신문에 기고하는 일만으로도 사회적 스캔들이 된다는 상식쯤은 갖길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신문이 극우신문이라는 의견이 아직은 충분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현실을 인정한다 ..  (140쪽)

 

 

 책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책쟁이나 책즐김이나, 책 하나가 만들어지려면 수많은 나무가 베어지고 물과 기름과 사람품이 들어가야 하는 줄을 압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많은 자원을 들여서 엮은 책을 딱 한 번 읽고 나서는 그냥 모셔 둔다든지 폐휴지로 버린다든지 하는 일이 너무 잦습니다. 집에 쟁여 놓고 여러 번 거듭 읽어 준다면야 고마운 노릇이고, 먼 뒷날 태어날 딸아들한테 물려준다든지, 동네 도서관을 스스로 열어서 책을 나눈다면 반가운 노릇입니다만, 그저 짐더미처럼 쌓아만 둔다면, 애써 만들어진 책이 몹시 아깝지 않느냐 싶어요. 모셔 두는 책으로 두려 했다면, 처음부터 도서관이나 이웃한테 빌려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비록 우리 나라 도서관에서 모든 책을 골고루 갖추어 주고 있지 않다지만.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머리속에 가두려는 책인지, 잠깐 동안 시간을 때우며 재미있게 놀고자 하는 책인지, 사람들 앞에서 지식을 뽐내려고 하는 책인지, 돈벌이에 도움이 되도록 쓰는 책인지 생각해 봅니다. 마음을 살찌우고자 하는 책인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하는 책인지, 넋이나 얼이 넉넉해지고자 하는 책인지, 슬기를 튼튼히 북돋우려는 책인지 생각해 봅니다. 나한테만 좋으면 되는 책인지, 나와 이웃 모두한테 좋으면 되는 책인지, 나한테는 안 좋아도 이웃한테 좋으면 되는 책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저는 판이 끊어진 책 하나를 앞에 놓고서 안타까워하지만, 우리 터전에서 판이 끊어진 책은 《B급 좌파》만이 아닙니다. 판이 끊어진 책은 숱하게 많습니다. 판이 끊어진 책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책이 나와서 새책방 책꽂이를 새롭게 꾸밀 수 있고, ‘판이 끊어진 책을 일찌감치 사서 읽은’ 사람들한테는 ‘새롭게 꽂힌 책을 좀더 많이 살펴볼 수 있’어야 흐뭇하게 여기게 마련입니다. 새책방뿐 아니라 헌책방에서도, ‘아직 모르거나 알아채지 못한 새로운 책’을 만나려고 하지,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사서 읽는 일이란 없습니다. 흘러간 책은 흘러가는 세월에 따라서 자취를 감추어 주어야, 새로 태어날 책이 새 목숨을 받은 기쁨을 알뜰살뜰 누리면서 우리 앞에 선보여질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노자》가 읽힐 수 없고, 언제까지나 ‘시튼’만 읽힐 수 없으며, 언제까지나 ‘황순원’만 읽어야 하겠습니까. 옛사람 열매를 맛나게 받아먹은 새사람들이 새 열매를 소담스레 맺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삶과 사람과 땅을 담아내고 보여주는 새로운 책이 꾸준히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세상과 나라와 겨레를 찬찬히 꿰뚫어보는 새로운 책이 잇달아 나와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눈과 입과 귀를 환하게 틔워 줄 새로운 책이 자꾸자꾸 나와야 합니다.

 

.. 분명한 것은 ‘우리’의 도량이 ‘저들’의 도량보다 적자면 세상을 바꾸려는 우리의 꿈은 이루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개의 ‘우리’가 유독 자신에 대한 비판에 도량을 갖지 못하고 대개의 ‘저들’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까지 도량을 보일 수 있다면 우리가 저들을 이길 가망성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싸움은 절대선인 사람들과 절대악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성찰이 가능한 사람들과 자기성찰이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  (160쪽)

 

 그러면, 《B급 좌파》를 새책방 책시렁에서 끄집어내린 우리들은 얼마나 세상을 환하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우리들 눈길은 얼마나 넓고 깊게 펼쳐져 있을까요. 우리들 눈높이는 얼마나 고르게 퍼져 나가고 있을까요. 우리들 눈매는 얼마나 따뜻함과 푸근함으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 친절이야말로 의사가 의사일 첫 번째 조건이다 ..  (218쪽)

 

 헌책방 문을 나섭니다. 전철을 타고 돌고 돌아 인천집으로 돌아옵니다. 도서관 책꽂이에서 《B급 좌파》를 찾아내어 펼쳐 봅니다. 언손을 호호 불어 녹이며 책장을 넘깁니다. 이 책을 처음 읽던 2004년 어느 날, 전철에서 있었던 일을 끄적여 놓은 글이 보입니다. ‘아이가 내 발을 밟았다. 나는 가만히 서서 내 발을 밟은 아이를 내려다본다. 아이 어머니가 말한다. “야, 이기○, 발 밟지 말고 서 있어.” 아이는 아무 말 없고, 자기가 누구 발을 밟았는가도 쳐다보지 않는다. 아이 어머니는 발 밟힌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말도 않는다. 이 아이는 무얼 배우며 자라나? 이 아이 어머니는 무얼 가르치고 보여주려나?(2004.7.29.)’

 

 사람들은 스스로 ‘A급’이 되고자 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노라면 웬만한 이들은 ‘B급’도 ‘C급’도 아닌 ‘D급’이나 ‘E급’밖에 안 되지 않느냐 싶습니다. 어쩌면, 어떤 급으로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같은 날, 책 한쪽에 이런 글도 끄적여 놓았습니다. ‘〈조선일보〉를 읽으며 비판할 꺼리를 찾을 시간에, 강준만 교수가 쓴 언론비평과 언론비판을 읽는 게 우리에게나, 우리 언론에게나, 또 〈조선일보〉에게조차도 도움이 된다.(2004.7.29.)’

 

 잘못된 일을 잘못이라 말하고, 잘못한 사람한테 잘못을 깨달으라고 말하는 일도 틀림없이 할 만한 일이며, 하는 보람이 있으며,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르는 적잖은 이들은 스스로 잘못을 못 느낍니다. 잘못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아주 잘하고 있다고 여기기까지 합니다. 괜히 둘레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히거나 못살게 굴거나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읽는 한 사람으로서, 새책방이나 헌책방 나들이를 하다 보면, 참 쓸개빠진 책과 참말 돈밝히는 책과 참으로 엉터리 책이 자주 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쓸개빠지고 돈밝히고 엉터리인 책을 까밝히거나 꾸짖거나 들추어내다 보면, 정작 제 마음을 살찌우면서 아름다이 밝혀 주는 책하고 멀어지게 됩니다. 잘못하는 이를 깨우치는 눈을 틔울는지 모르나, ‘그러면 잘하는 길이란 무엇인데?’라는 물음에는 머뭇머뭇하게 됩니다. 잘못을 꾸짖는 이야기에 마음을 쏟는 만큼 제 매무새는 날카로워지거나 뾰족해집니다. 그렇다고 어지러운 세상에 아주 등돌리면서 살아갈 수 없는 노릇이지만, 자그마한 곳에서라도 저 스스로 옳고 바르게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옳고 바르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엮어야 하지 않느냐고, 옳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이야기 담은 책을 알아내고 읽고 삭이고 나누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조갑제 기자를 비판하려고 조갑제 님 책을 샅샅이 훑는 일도 보람이 있을 테지만, 그동안에 송건호 님이나 리영희 님 책을 꼼꼼히 읽고 곰삭이는 일이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ㅈ일보 김대중 주필 글을 샅샅이 살피며 비판하는 칼날을 세워도 뜻이 있을 터이나, 그럴 바에 정약용 님과 박제가 님 글을 꼼꼼히 읽고 되새기는 일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 ‘구사대’라는 말을 모르는 30대 여자와 40대 남자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나는 당혹스럽다. 나는 ‘교양’에 대해 생각한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 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 따위라는 생각은 봉건적이다. 그것은 결국엔 맨얼굴이 될 유한계급의 사회적인 메이크업일 뿐이다.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  (62∼63쪽)

 

 비판은 어김없이 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교양’을 쌓지 않으면서 하는 비판은 입으로만 펼치는 비판으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좋은 책을 부지런히 찾아서 읽으면 좋겠지요. 다만, 우리 스스로 ‘교양’이 될 책을 왜 읽는지를 헤아리지 못하면서 읽기만 하는 ‘교양’이라면, 또한 어떻게 펼칠지 가늠하지 못하는 채 머리에 쌓아두기만 하는 ‘교양’이라면, 머리통은 굵어지겠지만 우리 손으로 우리 세상을 아름다이 가꾸는 일이란 이루지 못하지 않을까 근심이 됩니다.

 

 대단히 많은 책이 새로 나오면서도, ‘책이 안 읽힌다’고 하는 요즈음입니다. 그래도 무척 많은 책이 꾸준히 팔리고 있는데, 어떤 책이 팔리고 어떤 책이 읽히며 어떤 책이 곰삭여지는지 궁금합니다. 껍데기로는 ‘A급’이고 알맹이는 ‘C급’ 새끼발가락 때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책이 넘치고 있지 않은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A급’을 받아먹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정작 우리 머리와 몸에는 ‘D급’ 겨드랑이털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책이 스며들지 않나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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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야간비행(2001)


태그:#절판, #헌책방, #김규항, #책읽기,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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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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