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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으로 칼랸 성원의 푸른 돔이 보인다.
▲ 칼랸 미나레트 뒤쪽으로 칼랸 성원의 푸른 돔이 보인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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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개를 쳐들고 탑을 올려다 보았다. 내 앞에는 칼랸 미나레트(첨탑)가 서있다. '칼랸'은 '크다'라는 뜻이다. 그 이름처럼 이 탑은 정말 크고 높다. 전체 길이가 약 47미터니까 15층 아파트보다 더 높은 것이다.

이 탑은 12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 그 이후에 칭기즈칸의 침공도 견뎌냈고, 부하라를 뒤흔들었던 지진에도 끄덕 없었다. 18-19세기에는 '죽음의 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사형이 확정된 죄수를 자루에 담아서 집행인이 탑의 꼭대기로 끌고 올라간 후에, 그 정상에서 아래로 집어던졌다고 한다. 세상에는 온갖 희한한 방법의 사형수단이 있을 테지만 이 첨탑을 이용한 사형법도 무척 특이한 편에 속할 것이다.

부하라 관광의 백미라면 아마 이 탑 위에 올라가서 부하라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는 것일테다. 호텔에서 주는 아침식사를 먹고 나온 나는 지금 갈등하고 있다. 탑에 올라갈지, 아니면 이발소에 먼저 갈지. 이거야말로 정말 한가로운 여행 도중에 맛볼 수 있는 행복한 고민이다.

잠시 생각하다가 이발부터 하기로 했다. 탑에 오르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이발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햇볕을 받으면서 내 머리털도 무성하게 자라있는 상태다. 나는 구시가지의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문이 활짝 열린, 이발소처럼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한 젊은 남자가 또다른 젊은 남자의 머리털을 다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면서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머리에 대며 가위질하는 시늉을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어설픈 대화보다는 한 차례의 간단한 손짓이 더 많은 효과를 볼 때도 있다. 한쪽에 앉아서 내부를 둘러보니까 마치 오래 전 우리나라의 이발소 같은 모습이다.

전기도 들어오고 헤어드라이어도 있지만, 이 이발소에도 상수도는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먼저 온 손님의 이발이 모두 끝나자, 주인은 밖에 나가서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온다. 손님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면, 주인은 그 물을 부으면서 머리를 감겨주는 것이다.

오랜만에 이발을 하고 첨탑으로 향하다

이발소의 내부 모습
▲ 역사도시 부하라 이발소의 내부 모습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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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 차례다. 시키는대로 반소매 웃옷을 벗고 의자에 앉으니까 그는 넓은 보자기를 내 목에 감아준다. 그리고 어떻게 이발할 거냐고 묻는다. 나는 손짓으로 옆머리와 뒷머리를 깨끗하게 깍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윗머리를 가리키며 말한다.

"츄트(조금), 츄트!"

그렇게 옆과 뒷머리를 밀고, 윗머리도 약간 다듬었다. 비용은 40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이다. 여기서 머리를 감을 거냐고 묻기에 나는 그냥 호텔로 돌아가서 하겠다고 말했다. 이발을 하고 나니까 오래된 숙제를 해결한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는 첨탑으로 향했다. 이제 드디어 부하라를 내려다볼 수 있게 생겼다.

칼랸 미나레트와 성원 앞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모여있다. 첨탑에 올라가려면 별도의 비용으로 4500숨을 내야한다. 이 돈이면 밥을 두끼 먹을 수 있는데. 돈을 건네주면 안내인이 아래층에 위치한 입구의 철문을 열어준다. 내가 들어가면 다시 그 문을 닫는다. 혹시라도 돈 안내고 들어오는 관광객이 있을까봐 이렇게 관리하는 것이다.

첨탑의 내부는 좁고 어둡다.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그 원형의 내부에 꽈배기처럼 꼬아 만든 계단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동안 20일 가량 걸어오느라고 고생한 나의 두 다리는 부하라에 도착해서도 쉬지를 못한다. 이곳에 올 때까지가 수평의 행군이었다면, 이제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일을 해야한다.

계단의 갯수는 총 100개가 조금 넘는다. 하지만 계단 하나의 높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힘들게 느껴진다. 15층 아파트를 걸어서 오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내부가 어둡기 때문에 어려움은 배가 된다. 혹시라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들어온다면 낭패를 볼 것이 틀림없다.

그 옛날 죽음의 탑 구실을 할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루 속에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죄수를 끌고, 이 좁은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그 자체가 고역이었을 테다.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고 아마도 두세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을지 모른다. 무거운 자루를 밀고 당기면서 정상까지 올라온 순간, 그 집행인들은 무사히 올라왔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진짜로 어려운 일은 그때부터 시작일 텐데.

첨탑의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칼랸 성원을 내려다본다. 우측 위쪽으로 아르크 성이 보인다.
▲ 칼랸 미나레트 정상에서 칼랸 성원을 내려다본다. 우측 위쪽으로 아르크 성이 보인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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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본 미리아랍 메드레세(신학교)
▲ 칼랸 미나레트 정상에서 내려다본 미리아랍 메드레세(신학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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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게 걸어서 결국 정상까지 왔다. 꼭대기에 있는 여러 개의 창을 통해서 바라본 부하라 구시가지의 모습은 탁트인 상쾌함으로 다가온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저 멀리 지평선이 보인다. 바로 아래에는 칼랸 성원과 미리아랍 메드레세(신학교)가 있다. 창의 크기는 성인 남자 한 명이 통과할 정도가 된다.

그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로 아래를 내려다 보았더니 아찔해진다. 나한테 고소공포증이 없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여기서 저 아래까지 떨어지려면 고작해야 몇 초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 탑을 처형장소로 선택한 것도 이해가 된다. 떨어지면서 죽음을 맞는 시간은 아주 짧고, 그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올라오는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다.

사형수에게 죽음의 공포를 안겨주기 위해서 이 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정도다. 자루에 담긴 자신을 끌고 계단을 오르던 집행인의 발길이 어느 순간 멈추면, 그 공포는 극대화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창밖으로 자유낙하를 시작하면서 처절한 비명소리도 내뱉었을 것이다.

만일 공개처형이었다면, 모여있는 군중들에게도 효과적으로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다. 세계 어디서나 정복자와 지배자들은 적절한 수준의 공포를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갈 수 있을 테니까.

저 멀리 아르크 성의 매끈한 벽이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높은 건물을 만들려고 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인물들은 바벨탑에 도전했고, 중세의 중앙아시아에서는 경쟁하듯이 첨탑을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제 2롯데월드니 뭐니 해서 수백미터에 이르는 건물들을 구상하고 있다.

바벨탑이야 하늘에 도달하고 싶은 단순무식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지역의 첨탑들은 이곳을 오가는 상인들에게 일종의 등대역할을 했다. 물론 군사적 목적의 감시탑으로도 이용했지만.

사람들이 '높이'를 추구하는 이유는 무얼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은 욕구, 그리고 위로 올라가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크고 높은 건물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우월감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높고 커다란 것에 압도당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런 건축물이 자신의 영역에 있다면,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 또는 노리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경고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를 봐라, 우리한테는 이따만한 건물이 있다, 그러니 우리한테는 그만큼의 힘도 있지 않겠냐?

구시가지에서 생맥주 한잔

아르크 성의 정문
▲ 역사도시 부하라 아르크 성의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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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탑의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오르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여전히 어둡고 계단은 좀처럼 눈에 익지 않는다. 올라오는 다른 외국인들과 여러차례 마주친다. 이 좁은 계단에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서로를 피해서 이동하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다. 작은 휴대용 손전등을 가지고 계단을 비추면서 올라오는 외국인도 있다.

첨탑을 내려온 나는 오후에 호텔에서 빈둥거리다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아까 보아둔 싼 맥주집에 가기 위해서다. 생맥주를 파는 곳인데 500ml 한 잔에 1000숨이라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 보다는 현지인들을 상대로 하는 곳 같다. 허름한 가게 안쪽에 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가 여러개 있다. 꼬치구이가 먹고 싶어서 물어보았다.

"꼬치구이 있어요?"
"지금은 다 팔리고 없어요!"

지금 시간이 오후 4시인데 다 팔리고 없다니? 혹시 다른 요기거리는 없을까 싶어서 물어보았지만 전부 없단다. 한쪽에 앉아있는 현지인들 몇 명은 해바라기씨를 안주삼아 생맥주를 마시고 있다.

나는 다시 오겠다고 말한 후에 그 옆의 시장으로 갔다. 이곳에서 싼 안주를 사서 맥주집에서 먹기 위해서다. 건포도를 파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얼마냐고 했더니 손가락 7개를 펴보이며 1kg이라고 한다. 알고보니 1kg에 7000숨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쇠고기가 1kg에 8000숨 가량하는데 건포도도 그 정도 가격인가?

어쩔 수 없이 나는 저렴한 우즈베키스탄 전통빵을 두개 샀다. 이것도 훌륭한 맥주 안주가 된다. 다시 맥주집으로 들어와서 탁자에 앉자, 한 소년이 내 옆에 바싹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이 집 주인의 아들인 벡조드. 이 소년은 말이 안통하는 데도 날 바라보면서 연신 싱글벙글이다. 내가 맥주를 한잔 다 마시면 더 가져다 주겠다고 손짓을 한다.

주인은 시장에서 작은 소시지를 하나 사오더니 썰어서 나한테 주었다. 소시지 값은 안 받을테니까 편하게 먹으란다. 내일 아침이면 또 정처없이 걸어서 동쪽으로 떠나야 한다. 아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의 이 순간을 즐기는 수밖에. 부하라에서의 휴식 시간이 점점 끝나간다.

생맥주 집의 소년, 벡조드
▲ 부하라 구시가지 생맥주 집의 소년, 벡조드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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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도보여행, #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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