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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거실은 서재다.
▲ 나의 거실서재 우리집 거실은 서재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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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를 막바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연초 크게 욕심내지 않았는데도 아쉬운 점이 많다. 훌쩍 지나쳐버린 세월이 아까운 것일까. 나잇살이 들어감에 분명한 것은 하루 빛이 너무 짧다. 소중한 것들을 쉽게 놓치고 살았다. 짐짓 이별하는 아픔에 두려워서였을까. 눈을 감으니 잡다한 일들이 스쳐 지난다. 애린이 깊어진다. 헛헛한 마음을 가누며 찬물 한 잔을 들이키니 정신이 말짱해진다.

서재를 훑어본다. 손때 묻은 책들에게서 해묵은 책 향기가 솔솔 난다. 또 한해를 살면서 마음 뿌듯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바로 ‘끝없는 책읽기’다. 사실 난 치명적인 책읽기 중독자다. 단 하루라도 책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안달이 나고 몸살이 난다.

나는 치명적인 책읽기 중독자다

어쩌면 어렸을 때 치유되지 않은 상처 때문이다. 단지 왼손잡이에다 농사일을 거들지 못하는 놈이 책만 읽는다고 심하게 핍박을 받았다. 심지어 읽던 책을 빼앗아 곧바로 부엌아궁이에 불살라진적도 있었다. 평생을 농투성이로 살았던 아버지는 내게 폭군이었다.

누구나 유년기에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가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유년기 그 아픈 기억들이 지천명을 앞둔 지금에도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홀대 탓이었을까. 지난 30여 년 동안 나는 1만여 권을 책을 불렸고, 시나브로 그 책들을 섭렵했다. 다독이라기보다는 남독(濫讀)을 했다. 칠첩 반상기를 다소곳이 받아든 아씨의 식사가 정독이라면 난 상놈처럼 양푼이다 갖은 반찬을 넣고 비벼먹는 비빔밥, 난독(亂讀)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숱한 책을 읽었다. 난독과 잡식이었다.
▲ 내가 읽은 책들 지난 30년 동안 숱한 책을 읽었다. 난독과 잡식이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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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과 문학회 관련 책들이다.
▲ 서재에 꽂힌 책들 시집과 문학회 관련 책들이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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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나는 날마다 책을 읽는다. 어떤 책을 솎음하듯 읽고, 삼고 데치듯 버무리듯 읽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때론 맛난 생선을 발라먹듯이 살점하나 남기지 않고 온전히 발라가며 읽곤 한다. 간혹 장아찌를 담듯 번번이고 간에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는다. 야채를 짭조름하게 무치듯 조물조물 읽는다. 맛깔 나는 음식은 씹을수록 그 맛이 더하듯이 좋은 책은 데데하게 읽을수록 마음이 개운해진다. 그게 책읽기의 묘미다.

책은 데데하게 읽을수록 마음이 개운해진다

지금껏 수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전집류는 읽은 게 없다. 거의 다 단행본이다. 왜냐? 존재의미를 질질 끌거나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늘어놓는 책은 식상타. 또한 베스트셀러도 상종하지 않는다. 소위 그런 책들은 대개가 영양가가 없다. 물론 이런 생각은 나 개적인 고정관념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을 애써 뜯어고칠 의향은 없다. 그게 나만의 독서 편력인 걸 어찌할 도리가 없다.

단행본 책들은 주로 수필(에세이)와 소설 관련 책들이다.
▲ 즐겨 읽는 단행본 책들 단행본 책들은 주로 수필(에세이)와 소설 관련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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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같지만 그동안 책 읽은 꼴값도 했다. 무수한 글을 쓰고, 두 권의 수필집도 냈다. 그렇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고지식한 탓인지 내용이 불비했던지 간에 두루 읽히지 못했다. 상관하지 않는다. 그동안 내 삶이 솔직담백하지 못했다는 혹평이었다고 받아들일 수밖에. 허나, 기분은 좋다. 내 알토란같은 생각들이 사고의 결정이 오롯이 묻어 있는 글들을 보면 그래도 세상을 열심히 살았구나하는 일종의 자만심을 갖게 하는 분신이니까.

독서는 완전한 즐거움이다

숱한 여흥거리야 많지만 독서는 완전한 즐거움이다. 때문에 지극한 즐거움은 책 읽는 것 이상이 없고, 지극히 필요한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이상이 없다. 이 또한 지나친 아집일까. 책은 읽는 사람에게 우정을 나누어 줄 뿐만 아니라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다. 또 책은 충고와 기쁨을 나누어 주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위안을 주며, 사랑을 주며, 지혜를 준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엄청난 즐거움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애써 책 읽어라’는 것을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난 수필을 즐겨 읽는다. 솔직담백한 글들이기 때문이다.
▲ 수필(에세이) 난 수필을 즐겨 읽는다. 솔직담백한 글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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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괘서(牛角掛書)’라는 말이 있다. 소뿔에 책을 건다는 말이다. 수(隋)나라 양양에 이밀(李密)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가능하다면 모든 시간을 책을 읽는 데 쓰려고 애썼다.

어느 날 그는 집안의 일로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가는 도중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어떻게 하면 책을 읽으며 갈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던 그는 갯버들을 뜯어서 안장을 엮어서 소등 위에 얹은 다음 일고 있던 책을 소의 뿔 위에 걸었다.

덕택에 그는 아주 편안하게 소를 타고 가며, 한 손으로는 책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삐를 잡으며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방 안에서 책을 읽는 것과 별 다름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열심히 읽는 그의 모습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소 등에 앉은 조각을 보는 것과 같았다.

책을 읽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처럼 열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즐거움 속에는 노력과 집념과 목표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독서를 잘 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 손발이 저절로 춤추는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 그것은 고기잡이 때 소쿠리를 잊고 도끼 사냥 때 덫을 잊는 것과 같다.

거실 서재와 또다른 나의 독서공간인 서재다. 여기서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한다.
▲ 나의 서재 거실 서재와 또다른 나의 독서공간인 서재다. 여기서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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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잘 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 손발이 저절로 춤추는 경지에 다다라야

독서란 그 책을 쓴 사람과의 대화이다. 특히 고전을 읽을 때는 옛사람과 시공간을 초월해서 돈독하게 만난다. 그게 독서의 보람이자 기쁨이다. 때문에 단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을 쓴 사람의 정신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단순한 몰입의 정도여서는 안 된다. 홀딱 빠져 들어야 한다.

철학자 니체가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언어학을 연구하고 있을 때, 우연히 들어간 어느 서점에서 그는 한 권의 책을 펴들고 시간을 잊은 듯 그 책 속에 빠져들었다. 이후 그는 14일 동안 침식을 잊고 그 책만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스승으로 하여 자기의 철학을 발전시켰다고 한다. 그 책은 바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집념의 세계>였다.

서재가 깔끔치 못하다. 난독의 결과물이다.
▲ 나의 손때가 묻은 책들 서재가 깔끔치 못하다. 난독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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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제에는 책들과 수재 클레식 기타, FM2사진기가 함께 있다.
▲ 책과 수재 클레식키타, 그리고 FM2사진기 서제에는 책들과 수재 클레식 기타, FM2사진기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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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는 물욕적인 것에는 남다른 집착을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쉽게 놓치는 게 많다. 자연을 알고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자연과 인간을 접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보다도 빠른 지름길은 책과의 만남이다. 책 속에는 그만큼 오랜 인류의 온갖 사색과 체험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 못지않게 책을 사랑했던 처칠은 책을 가까이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설령 당신이 갖고 있는 서적의 전부를 읽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손에 들고 다녀라. 다시 말해서 쓰다듬고 들여 보다가 아무 데고 닥치는 대로 펴서 눈에 뜨인 최초의 문장부터 읽어 보라.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그 책을 책장에 꽂아 두고 설사 책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를 이해를 못 하더라도 적어도 그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가를 계획을 세워서 정리해 보라. 책을 당신의 친구로 삼으라. 어떻든 당신의 친지가 되도록 노력은 하라.”

시간은, 삶은, 우리들을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누군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너무 미루지 않아야 한다. 독서에 대한 갈증도 마찬가지다. 지혜의 샘은 책 사이로 흐른다. 그것을 놓치지 않아야한다. 책은 이 순간에도 기적을 행한다. 부단히 사람을 깨우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명심하고 책만 읽는 바보다.            


태그:#독서, #서재, #남독,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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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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