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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파격적인 금리 1%포인트 인하 결정을 내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사진은 지난 10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때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이 총재.
 11일 파격적인 금리 1%포인트 인하 결정을 내린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사진은 지난 10월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때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이 총재.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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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은 발권력(돈을 찍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할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고, 당장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대가는 반드시 모든 국민이 치러야 합니다."

11일 오전 11시께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 모습을 비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1시간여 전에 '기준금리 1%포인트 인하'라는 충격적 정책을 내놓은 그의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 경제상황과 중앙은행의 대응책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이성태 총재는 "현재 (국내 금융시장은) 일종의 금융 비상상태의 경계선에 와있다"면서 "금융 비상사태는 (중앙은행)법상에 '심각한 통화신용 수축기'에 해당할 수 있고, 이 때는 여러 비상수단을 쓸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가 언급한 '비상수단'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뜻한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미국처럼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부실 기업이나 은행의 주식이나 채권을 직접 사들이는 방법을 써야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원칙론자' 이성태의 고민, "지금 금융비상사태의 경계선에 와 있다"

이 총재는 미국 중앙은행 조치에 대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통상적으로 중앙은행이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미 FRB는 비상상태의 경계선을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이어서 "우리나라는 아직 경계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비상수단을 동원할지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서 부실 기업이나 은행을 직접 살리는 방안이 당장 쉬운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미래에 넘쳐나는 자금으로 인한 각종 경제적 악영향은 국민 모두가 부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정부가 재정을 통해서 하려면 세금을 거두거나 국채를 조달해야 하고, 이것은 예산에 포함돼서 국회 의결을 받아야 한다"면서 "하지만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그런 번거로운 절차도 없고 당장 따로 재원을 마련해야 할 부담도 없어서, 편하고 쉬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 그 대가는 나중에 모든 국민이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면서 "물가도 오르고, 자산가격 상승과 수입 증가에 따라 국제수지가 나빠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언급은, 국내 금융상황이 비상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맞지만, 한국은행이 당장 미국처럼 돈을 찍어서 부실 기업인수에 직접 나서는 일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다.

최근 두달새 기준 금리를 2.25%포인트까지 파격적으로 내리거나, 환매조건부채권 매입을 은행에서 증권사까지 확대하는 등 한국은행이 취할 수 있는 간접적 개입을 최대한 하겠다는 것이다.

파격적인 금리 1% 포인트 인하 속 경제전망은 '암울'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앞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11월 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앞서 잠시 생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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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총재를 비롯해 한은의 고민은 여전하다. 경기 침체 속도가 너무 가파르고, 향후 경제전망 역시 너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11일 한은 금통위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1%포인트 금리 인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금통위 결정이 난 후, 민간경제연구소의 거시경제담당 연구원은 "그동안 한은 태도를 봤을때 이번 금리인하 결정은 한 마디로 파격"이라며 "그만큼 현재의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내년 전망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의미 아닌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이 총재도 이날 기자들에게 "최근 2~3개월 사이에 국내 경기가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면서 "기업의 설비투자와 (가계) 소비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고 지난 가을까지 꾸준히 증가했던 수출도 11월에 예상보다 빠르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경제 전망에 대해서도, "세계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기간에 대한 전망은 6개월부터 2년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면서 "우리 경제도 상당기간 아주 낮은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를 파격적으로 내린 배경에 대해서도, "경기가 급속히 나빠질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더 기다린 후 금리를 몇 번 나눠 가는 것(인하하는 것)은 좋은 정책이 아니다"면서 "그에 맞는 과감한 정책을 펼친다는 차원에서 두달에 걸쳐 2.25% 포인트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추가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받은 이 총재는 "정책 당국자로서 (금리인하) 가능성을 닫아두는 발언을 할 수 없지 않느냐"라고 되물으면서, "과연 어느 정도의 기준금리가 적절하느냐는 각 나라의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턱대고 남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더욱 나빠진다고 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에 대해 항상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은 열려 있다"면서 "기준금리 외에 금융시장 안정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앞으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의 시중금리와의 격차 등을 감안할 때 한은이 다시 금리를 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점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그:#이성태,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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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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