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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작은 것은 불편하지 않습니다. 낡은 것도 뭐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오히려 시멘트 독이 빠져서 새 집보다 더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빌라여서 수도꼭지를 틀면 녹물이 마중물마냥 쏟아지지만 아직 살 만합니다. 우리 네 식구는 우리 집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 놀러오는 가족들은 아닌가 봅니다. 불편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주 서방! 다음엔 조금 큰 데로 이사해라." 안타까움이 짙게 배인 장모님 말씀에 "그러지요" 하고 대답은 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저희 집 같은 곳을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부엌 너머가 바로 북한산입니다. 가끔 덤불 사이로 난 통로를 지나가는 고양이와 눈을 마주쳐 설거지하다 놀라기는 하지만, 부엌 창문으로 들어오는 산바람은 가슴까지 뚫어줍니다. 밤에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곳

 

서울 강북구 인수동에 위치한 우리집 큰 방에서는 서울 동북쪽 산줄기인 한북정맥이 시원하게 들어옵니다. 3층에 살지만 저희 집 주변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좋습니다. 

 

저희 동네는 북한산 자연경관지로 묶여 3층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건폐율도 30퍼센트를 넘어선 안 됩니다. 붐비는 4차선 도로까지 내려가도 5층이 넘는 집을 찾기 힘듭니다. 고도를 제한하는 법 때문입니다. 땅이나 건물을 가진 사람들은 이명박 정부 때 빨리 이런 법조문을 풀어주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최근 우리 지역 국회의원이 개최한 지역발전토론회 핵심 주제도 고도제한 해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저 같은 사람들은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부자들이 즐비한 '타운'이 되는 대신, 사람 냄새나는 물씬 풍기고 북적거리는 '동네'로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저희 마을에는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최근 저희 마을에서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우리 마을이 좋습니다. 우리 마을에 살다보면, 여기가 서울인지 지방의 작은 읍내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 어귀는 마을버스 두 대가 겨우 피해갈 만한 골목입니다.

 

조금 더 올라오면 아예 마을버스 한 대만 다닐 수 있을 만큼 길이 좁아집니다. 마을 사람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버스가 안 다니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마음 놓고 다니고 놀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뜻대로 되기 어려운 세상이니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요.

 

살면서 조금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살 수 있는 게 여러 가지로 유익합니다. 집값이 싸서 친구들도 쉽게 이사와 함께 어울려 사는 편이 훨씬 더 좋습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마을에서 어울리면, 유쾌한 일을 많이 벌일 수 있습니다.

 

공유하면 작은 집도 풍족해요

 

무엇보다 '내 것'을 챙기기에 급급한 일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것'을 채워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사실 저희가 작은 집에서도 넉넉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마을 친구들과 함께 사는 덕입니다.

 

아내와 저는 어찌하다 보니 책이 조금 늘었는데, 저희 집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책 때문에, 우리 서재를 만들려고 큰 집으로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마을도서관을 만들었거든요.

 

저희는 지금 당장 읽는 책만 남겨놓고 전부 마을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여러 친구네가 그렇게 기증하니 15평 정도 되는 마을도서관이 꽉 찹니다. 이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갈 수 있답니다.

 

내 것으로 쌓아두는 대신 마을 사람들과 공유하니까, 책으로 상징되는 지식을 사유하려는 욕심도 수그러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집이 쾌적해졌습니다. 제가 제일 좋은 건 책장에 쌓이는 먼지를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게 은근히 일이 되거든요. 며칠 까먹고 있다가 아가들이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아내 구박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먼지를 제때 청소하지 않은 부주의로 저는 아이를 감기 들게 한 '죄인'이 됩니다.

 

공동육아시설을 마련해 아이들도 함께 키웁니다. 아이들은 자기들 걸음으로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은 북한산 자락 숲속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점심을 먹습니다. 이후에는 이모 삼촌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지요. 요즘 큰딸 별(4살)은 친구들과 이름쓰기에 푹 빠져있습니다. 자기 이름은 쓰기 어려워 친구 '지우' 이름을 즐겨 씁니다.

 

저녁도 마을밥상에서 해결

 

최근에는 친구들과 마을밥상을 만들었습니다. 저녁을 각자 집에서 먹지 않고 밥상에서 함께 먹습니다. 식비를 걷어 유기농 매장에서 먹을거리를 사오고, 친구들이 돌아가며 요리사를 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예 다음날 도시락까지 마을밥상에서 싸옵니다. 아침까지 간단하게 먹으니 부엌 살림살이도 크게 줄었습니다. 밥상으로 슬며시 들어오는 욕망을 함께 극복해 갈 수 있어 좋습니다. 게다가 부엌 때문에 큰 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록 아직 이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사를 해야 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주인댁이 들어와 살아야겠다고 합니다. 나가야 할 날짜도 이번 달 안으로 못 박았습니다.

 

갑작스럽다고 말씀드렸지만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나니, 우리도 빨리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댁이 급전이 필요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려는데, 요즘 같은 경기에 그것도 쉽지 않다는 겁니다. 비싼 이자로 그것도 어렵게 대출을 받았는데, 그 날짜가 이달 말일이랍니다.

 

혹시 그 날 지나버리면 대출이 되지 않을까봐 주인 아주머니 노심초사하십니다. 하루에도 두세 번 저에게 전화를 겁니다. 지난 번에는 괜찮은 집이 나왔다며 저희와 함께 가보자고 합니다.

 

경제가 어렵다는데, 다른 동네는 집값이 내려간다는데, 우리 동네 전세값도 내려갈까요? 이사할 시일이 촉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은 없습니다. 넓은 주방과 책장이 놓일 넓은 거실이 있는 집을 구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살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네 식구가 오순도순 살 부비고 살 공간이면 충분하니까요.

 

경제 한파로 너도 나도 살기 힘들다는 요즘, 조금 생각을 바꾸면 없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나눌 수 있어, 공유할 수 있어 살 만한 세상입니다.


태그:#육아일기,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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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에 살면서,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영월한옥협동조합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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