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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당선 직후, "오바마와 이명박 정부의 비전은 닮은꼴"이라고 한 청와대 발표가 화제가 되고 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최고의 코미디'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는 정책과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이 과연 같을까? '통합의 리더십'과 '고소영 리더십'이 닮은 것일까? 냉전 되돌리기와 대화 무드를 조성하는 대북정책이 같은 방향일까? 이런 물음들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답변을 찾아나섰다. '이명박 vs 오바마' 기획 연재는 개인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비교다. 또한 그 무엇보다 '사실 관계'를 냉정히 살펴보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건설적인' 제안이기도 하다. <편집자말>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가 승리하자 정부·여당은 그야말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오바마와 MB는 같은 철학을 갖고 있으며 닮은꼴"이라고 우기고 있다. 오바마가 들으면 명예훼손으로 소송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발언이 오바마 개인에게는 모욕이고, 한미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니 삼갔으면 한다.

 

한나라당은 더 가관이다. 자신들의 대표 상품인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의 부당성을 감추기 위해 "오바마 후보의 해법처럼 IMF 등 국제기구도 경제활성화를 위한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권고하고 있다"며 오바마 조세 정책의 본질이 감세 정책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

 

오바마의 선거 공약에 중산층과 서민들을 위한 세제 혜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양념에 불과하며 본질은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정책'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오바마의 조세 정책을 감세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된장찌개에 양념으로 고추 몇 개가 들어갔다고 해서 이를 된장찌개가 아니라 '고추찌개'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조세 정책]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 vs. 부자를 위한 감세

 

미국의 개인 소득세율은 6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상위 2구간의 소득세율을 현행 33%와 35%에서 각각 36%와 39.6%로 인상하는 것이 오바마 조세 정책의 핵심이다. '상위 5%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어 나머지 95%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는 오바마 구상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한편 2000년 기준으로 미국의 계층별 소득세 납부 비중을 보면, 상위 5%가 전체 소득세의 56.47%를 납부하고 있으며, 상위 50%가 96.09%를 납부하고 있다('주요국의 조세제도-미국편', 조세연구원). 2000년 현재, 상위 5%의 소득세 납부 비중은 5년 전인 1995년 48.9%에 비해 무려 6%포인트 이상 증가하였다. 이러한 추세라면 2008년 현재 상위 5%의 소득세 납부 비중은 60%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상위 5% 계층이 상위 2개 구간의 세율을 적용받는다고 했을 때 각각 9.1%(상위 2구간)와 13.1%(상위 1구간)의 소득세 증가 효과가 있으니, 상위 5% 계층에 대한 증세로 인해 전체적인 소득세수 증가분은 7%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전체 조세 수입 중 개인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로 가장 크기 때문에 이로 인한 세수 증가 규모 역시 매우 클 것이다.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로 인한 세수 증가분의 일부는 세제 혜택으로, 나머지는 재정 지출을 통해 중산층과 서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중산층과 서민에 대한 세제 혜택을 보면, 연소득 8100달러 이하 저소득자에 소득 금액 6.2% 공제, 주택대출이자에 대한 공제, 연소득 5만 달러 이하인 고령자(65세 이상) 소득세 면제, 자녀를 3명 이상 둔 가정에 대한 공제율 인상, 근로소득세액 공제(EITC 확대) 등이 주 내용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2000년 현재 상위 50%가 소득세의 96.09%를 납부하고 있으니 저소득자에게 감세 혜택을 주어보았자 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또한, 연소득 5만 달러 이하인 고령자, 3명 이상 자녀를 둔 가정 등도 대상자가 제한되어 있어 실질적인 감세 규모는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근로소득세액공제(EITC) 확대가 더욱 큰 감세 규모가 될 수가 있다. 그런데, EITC는 본질적으로 감세 혜택이라기보다 보조금 지금에 가깝다.

 

EITC는 일명 '부(네거티브)의 소득세'라고 불리는데, 이는 소득이 일정 규모 이하인 저소득자에 대하여는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주는 제도이다. 예를 들어, 연소득 1000만 원 이하인 근로자에 대하여 10%의 EITC를 적용한다고 했을 때, 연소득이 800만 원인 사람은 80만 원을, 900만원인 사람은 90만 원을 국세청으로부터 받는 제도이다.

 

감세는 원래 내야 할 세금을 깎아주는 것을 의미하므로, EITC는 엄밀히 말하면 감세가 아니라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 같은 일종의 공적 부조 제도이다. 다만 돈을 주는 기관이 사회보험청이 아니라 국세청이라는 점만 다를 따름이다.

 

이상에서 보았을 때, 한나라당이 상위 5%에게 절반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는 소득세 감세, 상위 0.3%의 대기업에 70%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감세, 상위 2%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종부세 감세, 상위 0.7%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상속세 감세 등과 같은 부자를 위한 감세 정책을 펴놓고도 오바마의 조세 정책과 은근히 동격으로 두는 것은 MB를 오바마와 동격으로 두는 것 이상으로 황당한 일이다.

 

[재정 지출] 의료보장 확대하자 vs. 건설만이 살길이다

 

게다가 재정지출의 방향을 보면, 오바마 정책과 MB 정책의 차이는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바마가 재정 지출에서 가장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의료보장 확대이다. 아동의료보험은 강제 가입하도록 하고 저소득자의 무료 의료 혜택을 강화하는 것이 주요 정책 내용이다. 또한,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로 사회보험의 적자를 보전하겠다고도 한다.

 

반면, MB의 재정지출은 한마디로 '건설만이 살길'이다. 며칠 전에 발표된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재정지출 11조 원 중 절반이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입된다. 그것도 모자라 대운하 공약이 다시 거론되고 있으며, 한일해저터널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건설로 불황기를 극복한 예가 없다. 1929년 대공황을 극복한 뉴딜 정책의 본질적인 내용은 토목공사가 아니라 사회복지정책이다. 당시의 공공 발주 공사는 취로 구호 사업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으며, 1935년에 마련된 사회보장법이 뉴딜 정책의 가장 큰 성과로 꼽히고 있다. 건설업체와 땅 주인에게 먼저 돈을 풀어 주고 그 떡고물이 아래로 내려가기를 바라는 지금의 '삽질 경제' 철학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정리하면, 오바마의 재정 정책 핵심은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와 서민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이고, MB의 재정 정책 핵심은 '부자를 위한 감세와 건설을 위한 재정 지출 확대, 서민에게는 떡고물'이다.

 

이게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자와 남자도 구분하지 못하는 수준의 변별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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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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