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이와 왕위 이날 쑤위는 왕위의 권총을 빼앗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위는 울면서 총을 돌려달라고 하다 거절당하자 스트리킹을 시도한다.

▲ 쑤이와 왕위 이날 쑤위는 왕위의 권총을 빼앗고,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위는 울면서 총을 돌려달라고 하다 거절당하자 스트리킹을 시도한다. ⓒ 스폰지


중국 변두리에서 김치를 팔며 생계를 꾸려가는 조선족 여인을 그린 <망종>이란 문제작으로 2005년 이후 국제영화 무대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재중동포 장률 감독의 <중경>이 오는 6일 관객들과 만난다.

방황하며 타락해가는 중경인들

장 감독의 네 번째 영화 <중경>의 배경은 스모그 때문에 늘 뿌옇고 탁해 보이는 거대도시 중경(重慶)이다. 인구수 3000만 명으로 단일 도시로는 전 세계에서 최고다.

쑤이(궈커위 분)는 북경어를 가르치며 살아가는 사설학원 교사다. 숨 막힐 듯한 권태가 이어지던 어느 날 쑤이는 아버지가 매춘 여성과 관계하다가 당국에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 사건을 담당한 북방 출신의 경찰 왕위(허궈펑 분)는 쑤이의 아버지를 풀어주는 대신에 사적으로 쑤이와 만난 뒤 육체를 요구한다. 

쑤이는 차츰 그런 왕위에게 자학적인 애착을 갖게 되지만, 왕위의 눈에 쑤이는 도시의 번화가에서 방황하는 수많은 여자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어느 날 밤, 왕위가 있는 모텔로 찾아간 쑤이는 거기서 다른 여자와 애처롭고 힘들게 교접하려는 장면을 목격한다.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그 자리를 빠져나온 쑤이는 길거리에서 기타를 치며 구걸하는, 생전 말 한 번 나눠 본 적 없는 남자에게 달려들어 성행위를 억지로 시도한다. 거지 사내의 어린 딸이 곤히 잠자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고통의 마비제로서의 섹스

쑤이의 아버지는 돈으로 창녀를 사고, 왕위는 재활용 쓰레기를 수집해 번 돈으로 거리의 매춘녀와 무정한 관계를 맺는 쑤이 아버지의 범죄를 은폐해주는 조건으로 쑤이의 육체를 유린한다. 쑤이는 왕위에 대한 배신감과 자신에 대한 혐오감에 성생활용품점을 들락거리고 일면식도 없는 거지에게 교접을 강요한다. 성을 매개로 쓸쓸한 악연의 고리의 매듭이 짜이는 것이다.

이러한 성적 관계에서 타인은 수단으로 전락하는데, <중경>에서는 그것이 물론 향유로서의 쾌락을 뜻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어쩌지 못하는 심적인 고통을 망각해볼 요량으로 타인의 육체, 더 정확히 말하면 생식기에 집착할 뿐이다. 이에 비한다면 페이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오는 성인 남녀의 일시적인 불장난이나 바람피우는 모습은 오히려 건강해 보일 지경이다.

<중경>에는 상대를 향한 사랑과 호의의 넘침으로서의 섹스가 없다. 섹스는 순간적인 망각의 폭발을 갈망할 뿐 생활의 근본적인 활력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중경에서 암담한 현실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사람들은 섹스라도 하지 않고서는 미칠 것 같은 자신을 가눌 길이 없다. 섹스는 구걸이나 적선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스모그가 잔뜩 낀 하늘 아래서 매일 오염된 공기를 마시듯 중경의 도시인들은 섹스를 통해 고통의 망각을 쥐어짜낸다.

<중경>, 이미 도래한 디스토피아

쑤이와 아버지와의 식사 장면 "아버지는 또 부끄러운 짓을 했고, 나는 갈수록 더러워져 가"

▲ 쑤이와 아버지와의 식사 장면 "아버지는 또 부끄러운 짓을 했고, 나는 갈수록 더러워져 가" ⓒ 스폰지


쑤이나 왕위는 마음에 단단히 병이 든 도시인의 초상이다. 왕위는 권총을 잃어버린 순간 그동안 지탱해오던 삶의 지지대를 잃어버린 듯 바보처럼 눈물을 흘린다. 쑤이가 자신은 권총 따위에는 관심 없다고 말하며 떠나버리자 성인용 인형을 부여안고 춤을 추다가 왕위는 백주대낮에 알몸으로 거리를 걷는다. 왕위의 미래는 정신병원에서 고문에 가까운 치료를 거치며 재구성될 것이다.

쑤이의 아버지는 쑤이가 북경어로 말하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중경 토박이 쑤이가 일상생활에서도 북경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영어를 가르치는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만 쓰는 행위와 유사하다. 그러나 쑤이의 아버지는 딸의 마음이 고향 중경을 거부한 채 유령처럼 정처 없이 겉돌고 있음은 모른다. 

쑤이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바로 그 곳에서 뿌리 뽑힌 삶을 살고 있다는 박탈감 때문에 고통을 겪는 젊은 여자다. 중경은 하루가 다르게 무섭게 변모하고 있다. 1970년대 한국의 개발 상황과 흡사한 일이 이 시각 중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쑤이가 사는 동네도 곧 철거된다. 쑤이는 자신이 동의한 적도 마음속에서 바란 적도 없는 도시 개발의 여파 속에서 점점 마음도 몸도 설 자리를 잃어간다. 자신의 피부와 연결된 환경이 자신의 뜻과 무관한 힘들에 의해서 파괴되면서 변해가고 있음을 속절없이 지켜볼 뿐이다.

언제나 도시의 건설자들은 더 좋은 미래, 더 많은 행복이 도래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프로파간다와 현실은 전혀 다른 것이다. 선전과 홍보 -탐욕과 명예에 주박 된 엘리트들이 기획하는 망상의 조직화-가 화려하고 강력해지면 질수록 개인의 삶은 피폐해지고 공허해진다. 도시 개발이 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떠들어대는 소리들은 실제 도시민들의 체험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있다면 가상적인 만족감뿐이다. 소비의 무소부재 한 쾌락을 떠벌리는 이데올로그들이 보장한 그 행복을 느끼며 사는 도시인은 하나도 없다.

장률 감독은 궁극적으로 성적으로 타락한 주인공들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공간인 중경의 의미를 묻고 있다. 콘크리트로 높아지고 태양빛을 반사하는 강화유리처럼 빛나는 거대도시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사서 소유할 수 있는 곳,  당신이 소용될 때만 잠시 가치를 부여 받는 곳, 그리고 언제든지 용도 폐기될 수 있는 곳. 조직적인 착취가 일상이 된 곳. 장률 감독은 <중경>을 통해 이미 도래한 디스토피아를 묘사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11월6일 개봉/스폰지 배급
중경 장률 감독 이리 허궈펑 궈커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