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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쌀쌀해지고 있고, 머잖아 올겨울 첫눈이 올 테지요. 지난해 눈이 내리던 날 책방 앞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 놓았는데, 언제 돌아보아도 느낌이 좋습니다. 잘 찍은 사진이라기보다,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책방이기에, 누가 이곳에 와도 사진으로 담아내어도 넉넉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헌책방 아벨서점, 겨울날 하루하루 쌀쌀해지고 있고, 머잖아 올겨울 첫눈이 올 테지요. 지난해 눈이 내리던 날 책방 앞 모습을 사진 한 장으로 담아 놓았는데, 언제 돌아보아도 느낌이 좋습니다. 잘 찍은 사진이라기보다, 마음을 푸근하게 해 주는 책방이기에, 누가 이곳에 와도 사진으로 담아내어도 넉넉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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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방 일꾼한테 이야기 듣기

한 일간지의 문화 이야기를 쓰는 기자 한 분이 배다리 헌책방골목으로 찾아옵니다. 주말 지면에 헌책방 기사를 특집으로 다룬다고 하면서. 벌써 여러 곳을 다녀 보았고, 헌책방이 골목으로 이루어진 인천으로도 나들이를 왔다고 합니다. 어느 헌책방을 다니면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인천까지 찾아오는 다리품은 만만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그동안 여러 곳을 찾아다녀 보았다면 굳이 이 동네까지 와 보지 않고도 얼마든지 기사감이 많을 텐데, 무슨 모습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먼길을 전철로 달려오셨을 텐데, 기나긴 전철길에서 책 하나 읽으셨으려나. 예닐곱 군데 줄줄이 이어진 헌책방에 하나하나 들어가 보고 살펴보기는 하셨겠지만, 구경은 하고 책방 일꾼한테 이야기는 들어 보았는지 모르나, 손에 집어든 책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헌책방에 와서 책은 하나도 안 사면서 헌책방 맛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을까?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은 안 먹어 보고 그 중국집이 역사가 어떻게 맛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월미도에 가서 바이킹을 타 보지 않고 월미도 놀이기구가 어떻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 책을 읽어 보지 않고 그 책이 줄거리가 어떻고 느낌이 어떻고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만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책방 잘 안 다녀 보셨지요?”

기자를 이끌고 〈아벨서점〉에 들어갑니다. 책방 아주머니한테 소개를 해 주면서 몇 마디 이야기를 붙이니, 책방 아주머니는 대뜸 묻습니다. ‘책방 안 다녀 본’ 티가 너무 나고, 책방이란 헌책방뿐 아니라 새책방도 잘 안 다녀 본 티가 너무 나기에, 이렇게 책방을 몸으로 겪어 보지 못하고서 헌책방에 취재를 와 본들, 얼마나 속깊이 들여다보면서 기사를 쓰겠느냐는 걱정입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또 도서관이든, 책을 다루는 사람 이야기를 쓰자면, 그리고 책을 다루는 동네 쉼터 이야기를 쓰자면, 이렇게 취재를 하러 다니는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영화 이야기를 쓰는 기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야구 경기 이야기를 쓰는 기자는 어찌해야 할까요. 자기가 어디로 취재를 나가서 무엇을 보려고 하느냐에 따라서 미리 갖추고 알아보고 헤아릴 대목이 다릅니다만, 밑바탕에 깔려 있는 마음자리 하나는 똑같습니다. 그곳에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곳과 하나로 녹아나야 합니다.

“매니아 분들도 고맙지만, 책방이란 길이지요. 사람이 살게 하는 길이지요. 이렇게 (책 하나) 써낸 사람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서 펴낸 품이에요?”
“책장사의 고민이 뭔지 아세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보게 하느냐예요.”
“가진 자는 더 부자 되는데, 책을 아는 사람도 더 부자가 되는데, 모르는 사람은 그냥 빌어먹으면서 ……, 빌어먹는 귀동냥이 얼마나 오래 가겠느냐는 거지요.”
“다들(다른 헌책방들) 참고서와 교과서를 많이 하시는데, 음악이나 예술은 안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 분야가 잘 안 되는 거야. 몇 가지는 나가지만 나머지는 ……. 음악, 저거 ‘긴 책(들어와서 팔리기까지 시간이 길게 걸리는 책)’이에요. 수고값도 안 나와요. 그러나, 그래도 있어야 하고, 음악이 없다면 삭막하지, 책방은 문화공간이에요. 그래서 있어야 한다고. 분야분야 골고루.”
“마음길이 닿는 책들이야. 헌책방이 갖고 있는 문화가 곡선이라고.”
“책을 흐뭇하게 골라가시잖아? 뭔가 한 권을 사 가더라도 달게 사 가시는 분들이 있지요. 내가 여기 서 있는 까닭을 알게 되지요. 책 매니아 분들도 좋은데, 좋은 책이라도 목전에 너무 중점을 둬서, 그냥, 자기 마음 건드리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더라고요. 책방에는 자기를 툭툭 건드리는 책을 만나러 오는 거잖아요. 누구나 자기 지향점이 있기 때문에, 그 지향점을 알고 싶은 거잖아요.”
“아까는 세 살짜리가 말을 또랑또랑 잘해서, ‘아, 여기 책이 많다’ 해서, ‘너 몇 살이야?’ 하니까, ‘네 살’, 그래서 ‘세 살이야 네 살이야?’ 하니까 ‘세 살’ 그러는데.”
“스스로 전문화되지 못하니까 헌책방이 문닫는 거죠.”
“책이 사람들 삶으로 파고들어야 하는데, 요즈음 나오는 책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어요.”
“옛날 책들이 다정다감해요. 이런 책을 찾는 맛에 책방을 못 떠나는 거 같아요.”

책을 손질하는 자리. 새로 들어온 책에 묻은 먼지와 낙서를 지우고, 다친 책을 매만집니다.
▲ 책 손질 자리 책을 손질하는 자리. 새로 들어온 책에 묻은 먼지와 낙서를 지우고, 다친 책을 매만집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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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아주머니는 책손들한테 책값 셈을 해 주고, 바라는 책을 찾아 주는 틈틈이 부지런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취재를 나오는 사람들한테 늘 ‘똑같이’ 입이 아프도록 들려주는 말인데, 지치지 않으면서 똑같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 하나라도 가슴으로 받아안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 많은 기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나마 가슴을 열고 헌책방이라는 곳과 헌책이라는 물건과 무엇보다도 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넋으로 여미어 주기를 바라면서.

 (2) 잠깐 사이 골라집는 책

책방 아주머니와 기자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고는, 저는 슬쩍 빠져나와서 책시렁을 훑습니다. 두 분이 나누는, 아니 아주머니가 거의 혼자 들려주게 되는 이야기를 책 귀퉁이에 손이 아프도록 바삐 옮겨적습니다. 한귀로 흘리면 잊혀지지만, 책 귀퉁이에 적바림해 놓으면 역사가 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한테는 역사가 안 될지 모르지만, 내일을 사는 우리 뒷사람한테는 ‘2008년 10월 어느 날 헌책방 한켠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네?’ 하면서, 제가 보던 책에 제가 남겨 놓은 적바림 몇 글월을 읽으면서 새삼스러워하리라 봅니다.

‘an anthology of verse and prose’라고 하는 《Childhood》(Anness pub,1996)는 시와 그림으로 엮인 책입니다. 아이들이 보내는 삶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쓴 시와 그린 그림이 모였습니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저 스스로 새삼 느껴지는 뭉클함이 있기에 선뜻 집어듭니다.

‘중앙민족대학 조선학연구소’에서 펴내는 낱권책 《조선학》(민족출판사) 1994년치, 1995년치, 1998년치, 1999년치, 이렇게 네 권이 보입니다. 차례를 죽 훑으니 저로서는 그렇게 마음이 끌리는 글은 없습니다. 그러나,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조선학을 하려고 땀흘리는 분들 자취가 고이 배어 있습니다. 이런 땀방울이 우리 땅에서 피와 살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중국조선족이 애써 펴낸 책을 좀더 찬찬히 살피면서 그곳에 사는 분들을 생각으로나마 만나고 싶어서 집어듭니다.

.. 중국 조선족의 한국나들이와 한국인의 중국나들이로부터 시작되여 한국과의 수교가 이루어진후 중국 조선족의 언어환경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과의 교류가 빈번해지자 중국에서 조선어, 다시말하면 ‘한국어’가 중시를 받게 되여 한때는 중국의 한족들가운데서 한국말을 배우는 열풍이 일어나 일대 ‘휘황’을 기록하였다. 이와 더불어 규범화되지 못한 한국언어도 전해와 중국 조선말방송언어의 규범화에 새로운 애로를 조성하였다. 이를테면 방송언어로는 ‘채널’, ‘프로듀서’, ‘피디’, ‘다큐멘터리’, 일반용어로는 ‘쇼핑’, ‘디스카운트’, ‘오픈’, ‘엑스포’ 등 우리 조선어로도 얼마든지 표현할수 있는 말을 기어이 외래어를 써 청취자들은커녕 우리 방송일군들이 외래어사전을 뒤져보고도 리해하기 어려운 많은 청각장애를 조성하였다. 그것도 한국국민들이 쓰고있는 언어라면 별문제 없겠지만, 적지 않은 한국외래어는 한다하는 한국인학자들도 도리질할 정도이다. 그러지 않아도 중국 조선어에 한어의 영향과 사투리 등 사용으로 한어식조선말과 연변식조선말이 적지 않은데, 거기에다 순수한 영어라면 몰라도 규범화되지 못한 한국식영어까지 끼운 한국어가 밀려들어 중국 조선말방송언어의 규범에 많은 애로를 조성하였으며, 불량한 영향을 끼쳤다 ..  (《조선학》(1998) 50∼51쪽)

이희재 님 만화 <간판스타>. 어릴 적에 보았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참에 <간판스타> 첫판을 알게 되었지만, 만화를 아끼는 분들은 진작 이런 책이 있는 줄 아셨을 테지요.
▲ 겉그림 이희재 님 만화 <간판스타>. 어릴 적에 보았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참에 <간판스타> 첫판을 알게 되었지만, 만화를 아끼는 분들은 진작 이런 책이 있는 줄 아셨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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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이희재-간판스타》(예음,1987)가 보입니다. 어, 《간판스타》? 이 만화가 처음에는 이렇게 나왔는가? ‘글논그림밭’에서 펴낸 《간판스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구나. 아니었네. ‘요요코믹스’라는 이름으로 만화책을 줄줄줄 펴내던 ‘예음’에서 ‘레저코믹스’라는 이름으로 ‘19세 이상만 볼 수 있는’ 만화를 펴냈고, 이렇게 펴낸 레저코믹스 가운데 하나로 《간판스타》가 나왔구나. 그런데, 《간판스타》가 열아홉 살 아래, 그러니까 고등학생이나 중학생, 그리고 초등학생한테는 읽힐 수 없도록 막아 놓아야 할 까닭이 있나? 아이들이 못 볼 이야기가 담겨 있나?

《박숙현-일등국민으로 자라는 아이들》(생각하는 백성,1992)이라는 책이 보입니다. 글쓴이는 혼인하기 앞서는 고등학교 교사였고, 〈조선일보〉 기자하고 혼인하고 나서는 남편이 동경특파원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도쿄로 옮겨 가서 키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응, 그런데 책날개에 적힌 소개글, “조선일보 동경특파원 송희영 씨의 아낼, 결혼 전 5년 동안 진성여고 수학 교사로 재직한 바 있고, 현재 도쿄에 거주하며 ……”라는 말이 좀 얄궂습니다. ‘동경’특파원이 ‘도쿄’에 살고 있다니.

.. 아이들의 유치원 생활은 제멋대로다. 공부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모두 노는 데 정신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자기가 찾아서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유치원 교육을 받고 왔던 우리 아이는 너무 자연스럽게 놀리는 교육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자기 스스로 뭔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지 못하고, 그냥 서서 구경꾼 역할만 했다 … 선생님은 아이들을 부르지 않고 찾아다닌다.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 체육관에서 노는 아이들을 돌아다니면서 지도한다 … 등원할 때나 귀가할 때는 반드시 걸어다니라고 말한다. 자전거나 승용차는 이용하지 말라는 얘기다 … 보온도시락은 가지고 다니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온도시락이 없는 가정을 배려한 것. 모든 아이들이 보통 플라스틱, 알루미늄 등 값싼 도시락에 식사를 준비하고 이것을 겨울이면 유치원에서 데워 준다 … 아이들의 복장은 상당히 제한되고 있다. 등원 때 활동복은 상식, ‘더럽혀져도 괜찮은 옷’을 입혀서 보내도록 항상 강조한다. 그리고 용변이나 갈아입기 쉬운 옷을 입히고 신발은 운동화를 신긴다. 비싼 구두에 메이커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는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서울에서 준비해 온 비싼 옷들은 장농만 지키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가 손수 만들어 준 베로 된 가방인데 혼자만 비닐 가방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걸로 바꾸어 주는 번거로움까지 겪었다 ..  (18, 19, 20, 27, 29, 32쪽)

우리는 왜 자꾸 '일등'이라는 숫자놀음에 목을 매달아야 할까요. ㅈ일보 기자 마나님이 쓰신 책이기는 해도, 이런 숫자에 목 매다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먼 남남일지라도 숨이 턱턱 막히며 안쓰럽습니다.
▲ 겉그림 우리는 왜 자꾸 '일등'이라는 숫자놀음에 목을 매달아야 할까요. ㅈ일보 기자 마나님이 쓰신 책이기는 해도, 이런 숫자에 목 매다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 먼 남남일지라도 숨이 턱턱 막히며 안쓰럽습니다.
ⓒ 생각하는 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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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치원과 일본 유치원이 너무 크게 다르다면서, 여러모로 배울 대목이 많다고 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책을 읽다가 자주 덮습니다. 어쩐지, ‘배운다’고 하는 느낌보다 ‘일본은 이상한 나라야. 한국이 얼마나 살기 좋아’ 하는 느낌이 짙게 듭니다. 글쓴이네 아이들이 한국에서 입던 옷은 일본 아이들한테는 ‘파티복’이었다고 합니다. 글쓴이네 아이는 한국에서처럼 ‘일본 아이들이 보기에는 파티복처럼 보이는 아주 예쁘장한 옷’을 입지 못한다며 투덜투덜거린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놓고 글쓴이는 아무런 마음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일본은 아주 수수한 나라’라고 느낀다고 이야기를 푸는 듯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뭘 그리 구질구질하게 살아. 한 번 왔다가 떠나는 삶인데, 있을 때 마음껏 누리고 즐겨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쓰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더구나 책이 나온 때가 1992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돈이고 이름이고 힘이고 있는 집에서 살던 사람들 씀씀이는 모두 이러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아이한테 우유와 청량음료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다 먹이고, 손으로 지어서 입히거나 쓰게 하는 옷이나 물건이 없으니, 이런 데에 마음을 쓸 넉넉함이란 없을지 모릅니다.

.. “엄마, 다른 엄마들은 다 자전거를 탈 줄 아는데, 왜 엄마는 못 타?” 옆집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면 그 뒤에 타겠다고 보채는 우리 둘째. 가끔씩 태워 주면 너무 신나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래도 항상 아쉬운지 엄마도 빨리 자전거를 배워 많이 태워 달라고 조른다. 결국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활의 불편함 때문에 자전거를 타게 됐다. 일본 가정에서 주부에게나 아이들에게 필수품 중의 하나가 자전거다. 물론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한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에 버려진 자전거를 비롯하여 세워진 자전거가 너무 많아 통행이 불편할 정도다. 자전거 주차장을 만드는 아파트가 점점 늘고 있고 ..  (143쪽)

나이는 들었어도 철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우기는 많이 배웠어도 버릇이 잘못 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르고 깊이 헤아리는 마음씨 없는 사람한테, ‘당신은 깊이 생각하지 못해서 안 돼!’ 하고 다그치거나, ‘어쩜 당신은 너르게 볼 줄 몰라?’ 하고 따져서는 안 됩니다. 모르는 일이 잘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면서 그릇 사는 사람이 잘못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스스로 깨닫도록 찬찬히 도와주면서 이끌어야 합니다. 한국에서 자가용 몰고 다니면서 걱정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뽐내기까지 할 수 있었을 터전이었겠지만, 일본에서는 자가용을 몰고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면 따가운 눈총을 받도록 달라진 터전에서, 글쓴이는 아직 어리석음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활의 불편함” 때문에라도 자전거를 타기로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조금도 “일등 국민으로 자라”지 않는데, 이런 여러 모습을 보면서 《일등 국민으로 자라는 아이들》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고 있으니, 또 이런 책이 꽤나 사랑을 받으며 팔렸으니, 글쓴이가 얕게 보는 눈이 사람들한테 적잖이 퍼지거나 스며들었으리라 봅니다. 이 책에 나오듯 일본 아이들이 받는 가르침은 “일등 국민”이 아닌 “참 사람이 되도록” 일깨우고 손길을 내미는 가르침입니다.

‘리틀칼리지/유치원학습백과’라는 이름으로 나온 전집 가운데 짝을 잃고 하나 흩어져 있는 그림책 《아름다운 세모》(동서문화사,1985)를 마지막으로 집어들면서 책 구경을 마칩니다.

헌책방과 함께하는 오래된 벗, 사다리.
▲ 사다리 헌책방과 함께하는 오래된 벗, 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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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헌책방은 평등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헌책방에 갑니다. 새로 나오는 책을 꾸준히 찾아서 읽는 가운데, 판이 끊어져서 찾아볼 길이 없는 책을 만나러 헌책방을 틈나는 대로 찾아가서 이 책 저 책 들추어 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자기가 모르는 이야기를 건드려 주는 책을 달갑게 받아들입니다. 반갑게 맞이합니다. 익히 아는 이야기를 뻔한 겉발림으로 부풀리거나 자랑하듯 떠벌이는 껍데기 책에는 손사래를 칩니다. 투박하더라도 사랑과 믿음을 담아 놓은 책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책이 좀 낡든 껍데기가 너덜너덜 떨어지든 크게 마음쓰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종잇장을 사들이는 일이 아니라, 종이에 새겨진 줄거리를 읽고 줄거리에 스민 가슴팍을 껴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베스트셀러 순위표’에 눈길이 안 갑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 눈길은 팔림새가 아니라 마음새입니다. 책에 담긴 마음이 아름다웁냐 아니냐를 헤아리지, 많이 팔린 책이냐 아니냐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책 소식이니까 잠깐 들춰보기는 하여도, 이런 등수매김은 책읽기하고 가장 동떨어져 있는 일입니다. 책을 읽어서 등수를 높이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자기 마음이 남들보다 높거나 거룩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 많이 읽은 일은 자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책을 십만 권을 읽었든 이십만 권을 읽었든, 그렇게 읽었다 하여도 세상살이를 하면서 아름다움을 나누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임을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책 열 권 백 권 겨우 읽었다 하여도, 세상살이를 아름다이 부대끼고 어우르고 있다면, 이보다 훌륭하게 곰삭인 책읽기가 없다고 느끼는 우리들, 책벌레입니다.

이리하여,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헌책방 앞에서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헌책방은 모든 책을 골고루 꽂아서 골고루 팔아 주기 때문입니다. 고름, 곧 평등함으로 책을 꽂아 놓아서 우리 스스로 찾아보도록 해 주는 헌책방입니다. 책방 일꾼 스스로 알뜰히 가려내고 추려낸 다음 고르게 꽂아 놓고 있으니, 책 좋아하는 이들은 차분히 둘러보며 책바다에 빠져서 더 깊이 보게 되는 헌책방입니다. 새책방에서도 파는 책은 조금 눅은 값으로 사서 읽을 수 있으니 고마운 헌책방입니다. 판이 끊어진 데다가 도서관에서 갖추어 놓지 않은 책은 다리품 팔기에 따라서 만날 수 있으니 반가운 헌책방입니다. 더 나은 책을 찾는 책벌레가 아니요, 자기가 살아가는 대로 만나는 책을 읽는 책벌레이기 때문에, 책벌레들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만나는 책은 ‘낚시질로 건지는 월척’이 아닙니다. ‘우연’도 아닙니다. 오로지 ‘인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움입니다.

새로 들여온 책을 손질한 다음에는, 책방 큰아주머니가 책밑에 연필로 책값을 매겨 놓습니다. 그런 다음 알맞는 자리에 꽂습니다.
▲ 책 갈무리 새로 들여온 책을 손질한 다음에는, 책방 큰아주머니가 책밑에 연필로 책값을 매겨 놓습니다. 그런 다음 알맞는 자리에 꽂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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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방도 모든 책을 평등하게 다루는 곳으로 일구어 간다면 더없이 아름다워서, 일부러 그곳을 찾으려고 먼걸음을 하게 됩니다. 도서관도 모든 책을 평등하게 간수하면서 보듬는 곳으로 발돋움한다면 그지없이 아름다워서, 그 도서관이 깃든 동네 사람이 아니라도 부러 거기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 인천 배다리 〈아벨서점〉 / 032) 766-9523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헌책방, #아벨서점, #책읽기, #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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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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