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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24일 오전 11시 34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84.83으로 표시되고 있다.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24일 오전 11시 34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84.83으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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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얼마나 많은 증권사 직원들이 자살할지 무척 두렵다."

코스피지수 1000포인트가 무너진 지난 24일, 많은 증권사 노동조합이 가입해 있는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사무금융연맹)의 한 간부는 한숨을 푹 쉬며 이같이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 "죽고 싶다" "미치겠다"며 전화를 해오는 증권사 직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간부의 말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일 연이은 주가 폭락에 고민하던 교보증권의 한 주임이 목숨을 끊었고, 22일 미래에셋생명의 한 지점장 역시 숨진 채 발견됐다.

문제는 앞으로다. 심리적 저항선인 주가 1000포인트 선이 무너진 지금,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더 커져 주가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질 수도 있다. 지금보다 더 가혹해진 시장 상황에서, 많은 증권사 직원들이 최악의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주가 폭락 속에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한숨만 쉬고 있던 증권사 직원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들었다.

"날 신뢰했던 고객들에 대한 미안함, 견디기 힘들다"

증권사 객장 모습(자료사진).
 증권사 객장 모습(자료사진).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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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 전화가 많이 온다. '전문가인 증권사 직원이 이런 상황까지 방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지기도 하고 '그러고 앉아서 월급 받느냐'고도 한다. 쌍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증권사 지점에 다니는 K 부지점장의 말이다. 요즘 욕설을 포함한 각종 항의 전화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고객 처지에서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고 담담히 말했다.

자신의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실망시킬 때가 가장 힘들다고 K 부지점장은 말했다. 그는 "나도 주식 투자를 하는데, 내 돈 잃는 건 참을 수 있다"면서도 "친구·친척 또는 저를 매우 신뢰했던 고객들에 대한 미안함을 견디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 고객 이야기를 들려줬다.

"꽤 큰돈을 투자했던 한 할아버지가 주가가 조금씩 빠지던 지난 7월 초에 찾아왔다. 저점이라는 생각에 가지고 있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수익률이 -30%가 됐다. 하지만 어제 날 찾아와, 믿고 맡겼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고객의 투자자금이 여윳돈이 아니라면, 투자를 권했던 증권사 직원은 더욱 더 큰 심적 고통을 겪게 된다. 전세자금, 결혼자금을 몽땅 잃고 엉엉 울고 있는 고객 앞에서 증권사 직원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K 부지점장도 "패닉 상태에서 고객이 내게 '이제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묻지만 나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나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깨지게 되면, 그때부터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밝혔다.

몇몇 증권사 직원들은 고객의 돈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다시 투자를 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대세 하락장에서 그러한 권유는 비극으로 끝나기 일쑤다. 다음은 사무금융연맹으로 들어온 한 증권사 직원의 사연이다.

"며칠 전 주가가 엄청나게 빠져 고객 돈이 엄청 깨졌다. 조금이나마 만회하려 다음날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한 후 그 돈으로 단타매매에 나섰다. 하지만 주가는 떨어졌고, 하루 만에 -25% 수익률이 났다. 조금이나마 만회하려고 했는데…. 죽고 싶다."

임박한 증권사 구조조정... "두렵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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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잃은 것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고객과 분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증권사 직원에게 커다란 심적 고통이다. "알아서 해 달라"는 고객의 요구에 의해 또는 증권사 직원들의 과도한 의욕으로 인해, 임의매매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증권사 직원이 고객의 허락 없이 주식을 사고 파는 임의매매는 요즘 많이 사라졌다. 고객과 한 전화 통화는 모두 녹취가 되고, 객장에서는 증빙 자료를 남긴다. 하지만 영업 여건상 임의매매가 사라질 수 없다고 증권사 직원들은 토로한다.

K 부지점장은 "인근의 한 증권사에서는 손실 보전 각서를 쓴 경우도 있었다. 구두로 합의했다가 고객이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도 있지만, 임의매매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수료를 많이 챙겨오는 직원에게 성과를 지급하는 회사의 성과급 체계에 있다"고 밝혔다.

사무금융연맹의 한 간부는 "증권사들 사이의 과당 경쟁으로 인한 무리한 약정고 설정으로 증권회사 직원들은 주식 시장에 대해 낙관적으로 설명하는 등 투자를 권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도의적 또는 법적 책임에 홀로 노출되고 있고, 불법 매매에 대한 유혹도 떨칠 수 없다"고 전했다.

이러한 책임에서 자유로운 증권사 직원들의 앞에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현재 4만8천여 명인 증권업계 종사자 중에서 1만 명 이상이 해고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고 밝혔다.

한 증권사 영업지원팀장은 "업계에선 2005년부터 장이 좋을 때 많은 직원을 뽑았기 때문에 구조조정도 대폭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면서 "우리 회사는 아직 감원 계획은 없지만, 직원들 스스로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반대매매 통한 깡통계좌 속출... 모두 공멸할 수도

현재까진 고객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한 일부 고객과 증권사 직원의 자살로 이어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증권사를 무너뜨리고 모든 이를 공멸하게 만들 수도 있는 뇌관이 조용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예탁증권담보대출과 신용융자다.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주식이나 펀드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예탁증권담보대출은 4조6582억 원에 달하고, 일정한 보증금을 받고 주식거래 결제를 위한 매매대금을 빌려주는 신용융자는 1조8737억 원에 이른다(2008년 10월 23일 기준).

현재까지 증권사는 반대매매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했다. 반대매매란 고객에게 돈을 대출해준 증권사에서 주가가 폭락할 때 고객의 주식을 강제로 팔아 대출 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뜻한다.

반대매매는 곧 투자자의 손실로 이어진다. 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 주식마저 강제 처분되는 탓에 투자자는 대출금은 물론 담보까지 모두 날리게 된다. 한마디로 주식 거래 계좌가 '깡통'이 된다는 뜻이다. 올해 10월의 경우 지난 23일까지 2871억 원의 반대매매가 이뤄졌다.

하지만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면, 주식을 사는 사람이 없어 반대매매가 이뤄지지 못한다. 이 경우, 거래가 줄어 수수료 수입이 적어진 증권사가 고객에게 빌려준 돈을 떼이면서 증권업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K 부지점장은 "아직 터지지 않았지만 예탁증권담보대출과 신용융자 문제가 터지면 다 무너진다"며 "IMF 때도 살아남았는데, 금융 구조가 바뀌면 나한테 어떤 영향을 줄 지 알 수 없다, 너무나 불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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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주가 폭락, #증권사 직원 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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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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