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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시 동쪽 외곽 산에 세워져 있는 예수상. 높이가 무려 27m나 된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세운 것으로 '27m'의 높이는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를 상징한다.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시 동쪽 외곽 산에 세워져 있는 예수상. 높이가 무려 27m나 된다.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세운 것으로 '27m'의 높이는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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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동티모르를 굽어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거대한 단 위에 온화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는 예수.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예수상은 정말 거대했다. 높이가 27m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발리를 출발한 비행기가 딜리 공항에 도착한 것은 10월 6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우리나라와 동티모르는 시차가 전혀 없다. 발리는 1시간 차이.

비행기에는 외국인들만 가득 했다. 발리 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를 기다리면서 카메룬 국적의 한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유엔에서 일한다고 했다. 근무지는 수아이. 헬기를 타면 30분 내에 갈 수 있다는 수아이를 우리는 자동차로 7시간이나 걸려서 갔다. 동티모르의 열악한 도로 사정 덕분이었다.

동티모르의 입국세는 1인당 30달러. 발리가 1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제법 비싸다고 할 수 있겠다.

딜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딜리에 도착하자마자 예수상을 보러 갔다. 예수상은 1976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강제 편입한 기념으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본따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은 높이가 34m라고 하니 거기에는 못 미친다.

세월보다 빨리 삭아내린 딜리의 예수상

'27m' 예수상은 딜리시 해변 쪽으로 가면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27m' 예수상은 딜리시 해변 쪽으로 가면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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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도로를 따라 십여 분을 달리다보면 산길이 나타난다. 고불고불하고 경사가 급한 산길을 따라 다시 십여 분을 올라가니 예수상이 보인다. 예수상까지 가는 길은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계단을 세어보니 730개쯤 된다. 예수상 가는 길에는 계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동판들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의 고난이 단계별로 새겨져 있는 동판이다. 이 동판들은 콘크리트 지붕으로 보호되고 있었고, 그림 위에는 설명이 쓰여 있다. 천주교 신자라면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면서 볼 만하겠다. 그림이 12개라던가. 몇 개인지 세다가 숫자를 놓쳤다.

오랜 세월 동안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동티모르는 국민의 98%가 가톨릭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동티모르에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성당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은 딜리 시내에 있다. 우리가 묵었던 엘리자베스 호텔에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동판의 마지막 그림은 당연히 예수의 부활을 주제로 했다. 그 그림을 지나쳐 예수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두 자루의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거대한 예수상이 전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참 슬프다. 예수는 초연한 모습으로 두 팔을 벌리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버티고 서 있건만 그를 받치고 있는 단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세 개의 거대한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 지구 모양의 둥근 단이 있다. 둥근 단을 딛고 예수가 서 있다.

벽돌로 고르게 만든 바닥은 일부가 붕괴되어 있었고, 받침대에 붙은 타일은 일부가 떨어져나갔고 일부는 부서져 버렸다. 예수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둥근 단의 페인트 빛깔은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퇴락해 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사람의 손길이 머무르지 않는 것들은 이상하게 세월보다 빠르게 삭아 내린다. 예수상이 바로 그랬다.

좀 더 세월이 흐르면 예수상이 그를 받치고 있는 단 아래로 푹 꺼져 버릴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예수상 아래서 만난 할아버지와 아이들. 아이들은 모두 맑고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성격도 구김살 없이 밝았다.
 예수상 아래서 만난 할아버지와 아이들. 아이들은 모두 맑고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성격도 구김살 없이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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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크고 맑으며 구김살 하나 없는 아이들

낡고 초라하고 빛바랜 예수상의 모습은 동티모르의 현재를 말없이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한 나라의 수도이건만 곳곳에 부서지거나 낡은 건물이 방치되어 있는 딜리. 내전의 흔적이리라. 검은 매연을 뿜으면서 달리는 버스나 자동차도 낡고 더러웠다.

일부 깨끗하고 번쩍이는 자동차들이 있기는 했다. 그것들의 옆구리에는 예외없이 'UN'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낡고 초라한 예수상이지만 찾는 사람들이 있긴 있었다. 긴 계단을 운동복 차림으로 숨을 헉헉거리면서 달려 오르거나 내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엔 경찰이라고 했다.

그들 사이에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와 함께 온 어린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조경국 기자가 이들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동티모르에서 만난 아이들은 하나같이 눈이 크고 맑고 예뻤다. 땟국이 흐르거나 콧물을 질질 흘리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표정만은 구김살 하나 없이 밝았다.

예수상을 둘러보고 딜리로 돌아오는 길에 해변가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딜리 시내 외곽의 해변을 따라 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타이 식당도 베트남 식당도 이곳에 있단다. 주 고객은 아무래도 유엔 경찰과 외국인들이라고 했다. 동티모르인들이 이용하는 식당보다는 값이 비싸다고 했다.

보통 1인당 5달러에서 10달러 사이. 동티모르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비싼 금액이다. 동티모르 보통 사람들의 한 달 임금이 150달러 내외라고 하니까. 동티모르에서는 미국 달러를 사용한다.

빅토리아 식당의 아이들. 왼쪽부터 아톰, 아모리, 안드레. 손님이 생선을 고르면 아이들이 이렇게 손질해서 주방에 넘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6년제)에 가지만 방과후엔 집안 일을 돕는다.
 빅토리아 식당의 아이들. 왼쪽부터 아톰, 아모리, 안드레. 손님이 생선을 고르면 아이들이 이렇게 손질해서 주방에 넘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등학교(6년제)에 가지만 방과후엔 집안 일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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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을 장작불에 굽고 있다. 동티모르에선 생선을 이렇게 장작불에 굽거나 쪄서 요리한다.
 생선을 장작불에 굽고 있다. 동티모르에선 생선을 이렇게 장작불에 굽거나 쪄서 요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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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4마리의 눈빛을 외면하지 못하다

우리가 간 식당은 이름이 빅토리아였다. 이곳에는 생선을 구울 수 있는 큼지막한 화덕이 있다. 화덕에서는 불이 붙은 장작이 벌겋게 타고 있었다. 얼음과 생선이 함께 담긴 아이스박스에서 생선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비늘을 벗기고 굽는다. 생선 굽는 냄새가 해변가로 퍼져 나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제법 규모가 큰 이 식당에도 어린아이들이 많다. 물론 손님이 아니다. 이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아이들이라고 한다. 생선 비늘을 벗기는 사람은 십대 후반의 소년으로 보인다. 그 옆에 어린 아이 둘이 구경을 하면서 연신 사진촬영을 하는 우리를 지켜보며 생글거리면서 웃는다. 옷차림은 더럽고 남루하지만 미소 하나만은 천만불짜리다.

사진기 앞에서 활짝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 주는 건 일종의 서비스인 것 같다.

주위가 툭 트인 해변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동물들이다. 산간지방이나 바다에서 뚝 떨어진 곳에 사는 개들은 먹을 것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비쩍 말랐지만 해변가 식당에서 사는 개들은 잘 먹어 잔등에 기름이 자르르 흐른다. 죄다 식당 손님들 덕분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잘 먹어야 윤기가 나지 않나.

식사를 하기 전에 옆 테이블 밑에서 늘어지게 자던 고양이 두 마리를 보았다. 그런데 식사를 시작하고 나니 눈을 말똥말똥 하게 뜬 고양이가 네 마리로 늘어나 우리 식탁 바로 아래에 턱을 받치고 앉았다. 고양이뿐만 아니다. 개 두 마리도 식탁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끙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식탁 위만 쳐다보고 있다.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야 그들을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덜 뜯어먹은 생선을 이들을 향해 던져줄 밖에.

식당 지붕 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식당 주변을 어슬렁대는 동물들이 많다. 고양이뿐 아니라 개, 돼지까지 등장하기도.
 식당 지붕 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식당 주변을 어슬렁대는 동물들이 많다. 고양이뿐 아니라 개, 돼지까지 등장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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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가 식당에 배고픈 돼지 출몰

이 날 우리가 주문한 것은 생선구이 세 마리, 볶음밥, '깐콩'이라는 야채볶음, '미골랭'이라 불리는 쌀국수의 일종이었다. 미골랭은 라면을 삶아서 참기름에 무친 것 같은 맛이 났다.

음식양은 엄청나게 많았다. 볶음밥은 1인분이 2인분 이상의 양이었으니까. 음식은 입맛에 맞았다.

식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이 어두워졌다. 해변이라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하지만 시원한 바람은 불지 않아 끈적한 느낌이 오래 남는다.

그런데, 갑자기 어둠을 뚫고 짐승 한 마리가 식당에 나타났다. 검은 돼지였다. 하긴 하얀 색이라도 어둠이 짙게 깔린 해변에서는 검은 색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돼지도 방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돼지들이 해변가 식당에 나타나는 건 이 나라에서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네 발 달린 짐승이 먹을 것이 있다면 어딘들 못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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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0월 5일부터 15일까지 10박 11일동안 동티모르를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태그:#동티모르, #딜리, #예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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