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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6일 오후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와 [한국민권연구소]를 비롯한 서울의 3-4개 통일운동 단체들이 연합해 주최한 북한 바로 알기 세미나에서 논문을 발표했다. 두 단체의 대표로 세미나 사회를 보았던 김승교 변호사에게 저녁식사 자리에서 농담 한 마디 건넸다. 요즘 공안당국이 발악을 하는 것 같은데 혹시 내가 붙잡혀가면 변론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나 같은 사람도 끌려갈 걱정을 하느냐며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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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다음날 오전 충격적 뉴스를 접했다. 새벽에 두 단체와 관련된 사무실 및 그를 비롯한 간부들 집 등 20여곳에 국정원 직원들과 경찰들이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이고 간부 6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 연행해 갔다는 내용이었다. 나에게 무료변론을 해줄 변호사는 출석요구서를 받았고, 나를 세미나 발제자로 초청하고 싶다며 전화하고 이메일을 보냈던 정책위원장은 끌려갔다. 세미나 직후 나를 인터뷰했던 [6.15TV] 방송국도 압수수색을 당했다고 한다.

 

  바짝 쫄지 않을 수 없다. 그 전날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TV 인터뷰에서 한 말을 떠올려보았다. 이른바 '친북 빨갱이'로 꼬투리 잡힐만한 대목이 없는지 검토해본 것이다. 평화와 통일을 목표 삼아 공부하고 운동하면서 국가보안법 때문에 양심을 속이거나 소신을 꺾을 수는 없다고 큰소리치면서도, 감옥에 가는 게 두려워 이렇게 글쓰기와 말하기에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심약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쓴웃음을 짓게 된다.

 

  정말 몹쓸 정권이다.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개인의 자유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 그리고 표현의 자유 등을 이토록 옥죈다는 말인가. 온 사회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어 정부 정책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을 숨죽이게 만들겠다는 의도일텐데, 탄압이 지나치면 폭발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이 정권은 모를까.

 

  이런 터에 나온 국가정보원 고위간부의 발언엔 소름이 끼친다. [남북공동선언 실천연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항의하기 위해 국정원을 방문한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국정원 차장은 "친북좌익 세력 척결 없인 선진국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을 적대시하며 북한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면 투철한 안보의식을 지닌 애국인사로 대접하고,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주장하면 '이적행위'를 저지르는 '친북좌익 세력'으로 간주하는 이명박 정권의 냉전적 인식을 잘 드러내주는 말인데, 그가 지향하는 '선진국'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일까?

 

  좋다. 국민의 정신이 아무리 불구가 되어도 밥 한 숟갈 더 먹는 나라가 선진국이라 치자. 마침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살릴 것 같다는 이유로 당선되었다. 그런데 남북관계야 어찌 되든 초고층빌딩 몇 개 세우며 땅 파고 운하를 만들기만 하면 경제가 성장할까? 북한과 대결을 일삼으며 긴장을 초래해도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질까? 북한을 몰아붙여 휴전선 근처에서 총소리가 나게 하고 핵실험이나 미사일발사라도 하도록 부추기면 외국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을까? 남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져야 긴장이 풀리고, 안정이 되어야 정치발전과 경제성장이 어우러지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남북 관계의 개선 없이는 경제성장도 어려울 것이란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남북평화재단 소식지 남이랑북이랑 10월호에도 게재됩니다.


#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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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남이랑북이랑 더불어살기위한 통일운동 대표 평화통일 문제,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한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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